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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고라니가 하는 말
서덕석사람들은 참 이상도 하지
그냥 두어도 도망가지 않을
땅을
네 땅 내 땅으로 나누어 금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철조망까지
둘러치고
그걸로도 모자라 지뢰라는
쇠붙이를 묻어 놓아
매먼한 우리 친구들이 죽고
다치게 만들었지
저렇게 눈에 쌍심지를 키고
밤낮 총을 겨누고서 지키는
게 대체 뭔지
어떻게 생긴 것들인지
궁금하기만 하네
남쪽 북쪽 군인들이 총 들고
지키는 것이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라면
좀 좋아
하지만 철조망 근처엔
풀하나 자라지 못하도록
빡빡 맨땅으로 만들어 놓은
걸보면
그것도 아니거든
봄 날 소담하게 싹을 내미는
칡넝쿨, 도라지, 취나물,
엉컹퀴들은
총까지 들고 지켜주지 않아도
잘 자라잖아
한 줌의 햇볕과 적당한 빗물만
있으면
먹거리 나물과 새싹들은 쑥쑥
자라나
저 따위 철조망을 뒤덮고 말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건
아마도 무시무시한 괴물일거야
듣기로는 괴물 이름이 ‘체제’와
‘이념’이라는데
우리들 고라니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철조망을 두르고 총과 대포로
지키려고
안간힘 다 쓰는 인간들이란
정말 미련하다 그렇지?
‘체제’니 ‘이념’이 정말 좋은 거라면
우리네 고돌이 고순이들이 맛있는
새싹을 보면
친구들을 불러 사이좋게 뜯어 먹고
그러다가 가끔은 사랑하는 짝도
찾듯이
그렇게 나누어 가져야 진짜 좋은
것 아니여
빼앗길까, 상처날까 노심초사하며
지켜 주어야만 하는 허약한
‘체제’와 ‘이념’이라면
빨리 사라져 주는 것이 훨씬 낫지
어제께는 듣던 중 반가운 방송도
들리데
금을 긋고 철조망 둘러친 지 70년
만에
양쪽 대장들이 판문점서 만나게
된다고
만나면 제일 먼저 이곳의 철조망
들과
지뢰부터 걷어 내 주면 정말
고맙지라
철조망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
는 고돌이 고순이들도
남쪽 북쪽으로 마음껏 오가며
뛰 놀게 시리
헛깨비 같은 ‘체제’와 ‘이념’ 따위
는 아무래도 좋아
배를 채울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어디로든 막히지 않고 오갈 수만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낙원이지 뭐야,
난 북쪽 백두산까지 한 달음에
뛰어 가고
너는 남쪽 한라산까지 헤엄쳐
건너 갈 수 있는
그런 날이 곧 오긴 하겠지?
어, 저기 봐
정은이와 재인이가
손잡고 걸어 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