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View Article

나도 진짜 내 얘기 아님

한동우 | 2008.10.22 21:17 | 조회 1271
몇 년 전이다.
부산에서 학회가 있었다. 오랫만에 바닷가에 갔으니 어찌 그냥 올라올 수 있겠는가. 바닷물에 커다란 족적하나 남기지는 못해도 추억거리 하나는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첫날, 함께 갔던 어떤 선생이 자기 생일이라며 광안리 어디어디 횟집으로 모이란다. 광안리라고는 정말 십수년만에 가보는 거였는데, 이건 완전히 별천지였다.(지금은 별별별천지가 되었더라~~). 휘황찬란한 불빛에 10층건물이 통째로 횟집인 건물에, 넘실대는 파도에, 흥청대는 인간들에... 아뭏든 그날 할일 없었던 떨거지들은 모두 그 집으로 모였다. 부어라 마셔라.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인간 생일파티에 오래 앉아있기에는 간만에 만난 선배 후배들과 풀어야 할 회포가 너무 컸다. 슬그머니 꽁무니부터 일어나서는 밖으로 나왔다.

광안리. 축복있으라.
온통 포장마차에 선술집에... 우린 밤이 짧음을 저주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에, 그날 처음 만나는 인간에...건성건성 통성명까지 해가면서 되는 얘기 안되는 얘기 주고 받으며, 싸우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인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목이 마르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온통 캄캄한 어딘지 모를 방에 누워 있던 것이었다. 눈도 잘 떠지지 않는데다가, 이건 너무 새카매서 사방 구분이 되질 않았다. 겨우 일어나서 더듬더듬 벽을 따라 가다보니 스위치가 잡힌다. 눌렀다.

"오 마이..." 사내 녀석 네명이 호텔인지 여관인지 방안에 널려 있었다.

이건 자는게 아니라 그냥 널려 있는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놓인 주전자 물을 마시고는 다시 잘까 하다가 학회 생각이 났다. 맞다. 난 둘째 날 아침에 논문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아침 일곱시... 그럼 그렇지. 나의 이 성실함이여,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 각성의 지식인이여... 용케도 일어났구나. 목욕탕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널부러져 있는 인간들을 달래가며 깨워 함께 나왔다. 그랬더니. 이건 또 뭐야. 분명히 어제 광안리에 있었는데, 여긴 해운대 뒷골목 어딘가의 모텔이다. 에라 모르겠다. 상큼하게 부는 봄바람을 맞으며 유유히 해장국집을 찾아가 뜨거운 국물로 속을 달래고 택시를 탔다. 네명의 사내가 함께.

"부산대학교로 쫌 가입시더..."
"부산대학교라꼬요?"
"네. 부산대학교요."
"거기 쫌 막힐껀데..."
"그래도 가요. 많이 막힙니까? 아홉시까지만 가면 되는데요."
"아홉시요? 쫌 막힐껀데... 함 가봅시데이..."

터널도 지나고 고가도로도 지나면서 부산시내 구경 잘 하며 학회가 열리고 있는 부산대학교에 도착했다. 아홉시가 조금 넘었다.
아침 첫 세션이 아홉시 반이니까 커피 한잔 마시고 숨 돌리고 들어가면 되겠네... 하며 들어선 건물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적막이 흐르는 건물... 이건 뭐지...평소같으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서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야 할 로비는 너무나 조용했던 것이다. 안내대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요?"
"다들 들어가셨는데요. "
"들어가요? 어딜요?"
"아홉시에 학회시작해서 모두들 들어가셨어요."

허거덕. 그러고 보니, 우리말고도 늦은 사람 몇몇이 헐레벌떡 방을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나야말로 큰일난 것이었다. 나는 첫번째 발푠데. 내가 발표해야 할 방을 찾아 갔다. 굳게 닫힌 문을 살그머니 열었는데, 이런 젠장 문이 강의실 앞쪽에 있어서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들어가는 걸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다른 사람이 발표를 시작했고, 나는 강의실 앞에 청중쪽을 향해 놓여있는 발표자 자리에 - 내 이름이 떡하니 씌여있는 명패뒤로 - 앉았다. 발표시간이 되어도 내가 나타나지 않자 사회자는 다음 발표자에게 발표를 먼저 하도록 조정을 해놓았던 것이다. 이윽고 첫번째 발표자의 발표가 끝났다. 사회자가 내게 말한다.

"ooo선생 늦게 오셨으니까 대신 제일 마지막에 발표하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가뜩이나 어제 광란의 밤을 보내느라고 속도 않좋았는데, 시간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두번째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방을 나왔다. 로비에서 물을 좀 마시면서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온 네 명 중 한명이 어느 방에서 나오더니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나와서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다시 들어가고 하는 것이다... 나는 물어보았다.

"형님, 왜 이렇게 왔다갔다 해요. 그냥 이리로 와서 좀 앉아요."

............

"야...죽겠다...나 지금 발표하다가 말고 나와서 토하고 다시 들어가는 중이야...어...억....큭..."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696개(26/35페이지)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핵이 안전할까요?(김익중교수)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340 2012.10.05 13:00
공지 고기교회 창립 40주년 축시 [2] 박경장 14704 2006.05.29 09:54
공지 공방 이름 한 표 주세요^^ 사진 첨부파일 [4] 하늘기차 15835 2008.07.01 16:07
공지 고기리 밤토실어린이도서관 개관 선언서-소망의 메시지 [2] 빈들녁 13446 2006.04.23 07:57
192 [일반] 최후의 보석함 [2] 짧은다리 1363 2008.11.13 11:26
191 [일반] 세월을 탓할 수 밖에,,, [1] 짧은다리 1162 2008.11.12 16:54
190 [일반] 젊은날의 초상화 짧은다리 1189 2008.11.12 16:16
189 [일반] 고기교회에 가기는 글렀다,,, [3] 짧은다리 1172 2008.11.11 11:22
188 [일반] 강물은 누구의 눈물일까... 첨부파일 [4] 하늘기차 1301 2008.11.05 12:44
187 [일반] 강령탈춤 3 사진 첨부파일 [1] 하늘기차 1297 2008.10.30 19:53
186 [일반] 강령탈춤 2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358 2008.10.30 19:07
185 [일반] 강령탈춤 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220 2008.10.30 17:48
184 답글 [일반] [re] 강령탈춤 1 사진 [1] 마법사 1213 2008.10.30 21:53
183 [일반] 2009년 개교할 대안초등학교 입학생을 모집합니다 전주리 1530 2008.10.26 15:41
182 [일반] 이러다가 지팡이를,,,,, [3] 짧은다리 1063 2008.10.24 10:58
>> [일반] 나도 진짜 내 얘기 아님 [2] 한동우 1272 2008.10.22 21:17
180 [일반] 아무리 똥폼을 잡아도,,, 짧은 다리 1225 2008.10.22 10:49
179 [일반] 영화<어느 날 그 길에서> 관람권 필요하신 분~ 사진 첨부파일 [3] 박영주 1774 2008.10.21 23:20
178 [일반] 내 얘기가 절대 아님!!! [3] 짧은다리 1201 2008.10.21 14:02
177 [일반]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1] 짧은다리 1326 2008.10.20 19:26
176 [일반]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 사진 첨부파일 [1] 짧은다리 1203 2008.10.19 01:43
175 [일반] 어느 교수의 오래된 이야기 짧은다리 1077 2008.10.19 01:38
174 [일반] 고기리는 탈춤 연습중.... 작은숲 1007 2008.10.15 06:47
173 [일반] 덤덤이를 추모함 [10] 마법사 1437 2008.10.10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