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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주 일했는데, 20대 청년은 시력을 빼앗겼다

하늘기차 | 2017.07.25 13:15 | 조회 1114



단 2주 일했는데, 20대 청년은 시력을 빼앗겼다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언한 영신씨

                                                                                                             오마이뉴스(17.06.12 14:20l/글: 선대식)

2015~2016년 20, 30대 청년 6명은 시력을 잃었습니다. 파견노동자로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만졌던 메탄올이 실명을 불러올 줄은 몰랐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실명 청년들에게 닥친 비극과 현재의 삶을 기록하고, 누가 이들의 눈을 멀게 했는지 파헤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리펀딩토에서 시력을 잃은 청년들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김영신씨는 지난 5일 스위스 제네바로 날아갔다. 그의 출국 사유는 특별하다.
그 무대는 유엔 제네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다. 영신씨는 이곳에서 2년 4개월 전 왜 시력을 잃었고 그 책임을 삼성·LG전자와 대한민국 정부에 물어야 하는지 발언한다.
영신씨는 비행기에서도 제네바에서도 영어 발음을 큼지막한 한글로 적은 종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처음엔 다 읽는 데 6분이 걸렸다. 영신씨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제대로 호흡을 하지 않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아엠투엔티나인이얼스올사우뜨코리안투이얼스어고아이비케임블라인드..."
"아 잠깐, 안 되겠다." 강은지 국제민주연대 팀장이 제지했다. "'I am 29 years old South Korean' 한 다음에 더 쉬어요. 첫 메시지가 중요하잖아요. 내가 누군지 알려야 하잖아요."
피 나는 연습이 이어졌다. 1분 22초까지 줄였다. 또박또박 속도감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의 표정엔 뿌듯함이 스쳤다.

 지난 5일 김포공항 출국장 앞에서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와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김영신씨가

손을 흔들고 있다.

8개월 전에는 달랐다. 그때 영신씨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지난해 10월 그는 전정훈씨와 함께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에 섰다. 삼성·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틸알코올(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같은 피해자 분들이 계시다면 용기를 많이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은 원인도 모른 채 눈이 안 보이시고 다른 피해로 힘들게 살아가실 텐데, 용기를 많이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신씨도 이 자리에 서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역시 한 달 전 박혜영 노무사를 만나기 전까지 절망의 나락에서 몸부림쳤다.
그해 9월의 어느 날, 부천역 앞의 한 카페. 영신씨는 어머니, 이모, 이모부와 함께 나왔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때까지 영신씨는 왜 시력을 잃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해 1, 2월 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청년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영신씨는 그때 뉴스를 보지 못했다. 영신씨의 이모가 뒤늦게 피해 청년들을 다룬 프로그램을 접했다. 다른 피해자들이 쓰러지기 전에 한 일은 조카가 한 일과 똑같았다.
영신씨는 실명이 메탄올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또한 영신씨가 다녔던 덕용ENG에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들었다.
시력을 잃은 지 1년 7개월만의 일이었다. "이제라도 이유를 알아서 다행이에요." 어머니와 이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영신씨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나는 것을 넘어서, 어이가 없었어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었거든요."


 김영신씨.

영신씨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았다.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다녀왔고, 제대 후 대형마트 보안업체에서 일하거나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 주변에 부천공단이 있어, 친구와 함께 공장에서 일을 구했다.
2015년 1월 13일에도 그랬다. 그날 오전 친구와 함께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 점심 때 파견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주일에 6일 밤샘 근무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월급은 230만 원이었다. 그날 오후 8시에 출근해달라는 말에, 영신씨는 그날 바로 출근했다.
덕용ENG는 작은 건물 한 층에 소형 공작 기계 70여 대를 가져다 놓고,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었다. 공장 한편에 있는 사무실에 여러 파견업체에서 온 20대 청년들이 모였다. 이들은 곧 공작기계 앞에 섰다. 원칙적으로 제조업 공정에 파견노동자를 보내고 받는 것은 불법이다. 단속이 없는 탓일까. 이곳 공단에서 불법 파견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하는 환경은 많이 열악했다. 오래된 공작기계라 문이 없었다. 스마트폰 부품의 원활한 가공을 위해 사용하는 메탄올이 영신씨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는 감기를 앓을 때 쓰는 얇은 마스크와 목장갑 하나로 버텼다.
"목장갑은 다 재활용해서 썼어요. 주간 조가 쓰던 것을 한 곳에 모아놔요. 그러면 그중에서 그나마 덜 헤진 걸 손에 끼고 일해요. 구멍이 나지 않은 목장갑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파견노동자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직접 공작기계에 메탄올을 넣었다. 알코올 냄새가 많이 났다. 그 누구도 그 액체가 인체의 중추신경계와 시신경을 망가뜨리는 고농도의 메탄올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드럼통에서 정수기통으로 메탄올을 옮겨요. 70여 대의 공작기계에 일일이 넣었어요. 그럴 때는 메탄올이 손과 바지에 많이 묻었어요. 환풍기도 없었고, 추우니까 창문을 열지도 않았어요. 저희는 공작기계 앞에서 밥을 먹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죠."


 지난 4월 김영신씨와 박혜영 노무사는 덕용ENG가 있던 경기도 부천시의 한 공장에 다시 찾아갔다. 그곳엔

공작기계가 있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2월 1일, 밤샘 근무를 하는데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조퇴했다. 이튿날 점심 쯤 일어났더니, 스마트폰 화면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영신씨의 어머니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다.
"애가 숨을 못 쉬고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인근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와서 산소호흡기를 끼워주고, 눈도 안 보이고 호흡이 안 된다고..."
하루가 지나자 호흡은 정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앞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영신씨는 쓰러지기 전 며칠 동안 스마트폰 부품에 형광등 빛을 쐬어 검사하는 일을 했다. 이를 들은 의사는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지켜보자고 했다.
시력이 돌아오지 않자, 그는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안과 의사는 간질 때문에 눈이 안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며칠 뒤에 신경과 검사를 받다가, 시신경이 많이 다쳤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스테로이드 약을 처방받았다.
"입원 며칠 만에 바로 퇴원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환자 가운데 85%는 치료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약을 많이 먹었지만, 시력은 좋아지지 않았어요. 다른 병원에서 혈장교환술을 받았어요. 시력은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결국 영신씨의 오른 쪽 눈은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암흑이다. 왼쪽 눈은 가장자리로만 뿌옇게 세상을 볼 수 있다. 가운데는 지지직거릴 때의 TV화면처럼 보인다. 시력은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다. 훗날 시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영신씨는 회사로부터 쫓겨났다. 왜 산업재해를 신청하지 않았는지,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때는 의사도 제가 왜 시력을 잃었는지 몰랐어요. 그러니 소송을 해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개인이 회사와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변호사 선임비용도 많이 들잖아요."
김영신씨는 전정훈씨와 함께 지난해 11월 파견·사용사업주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피고들은 모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안산역 인근 도로에 마련된 파견노동자 구인광고.
그가 시력을 잃은 지 2년 4개월이 지났다.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일까. 꿈에서는 앞이 보인다.
"꿈에서도 앞이 안 보일 때가 있어요. 어느 순간 잘 보여요. 꿈인데도 제가 그걸 인지해요. 눈을 깜빡거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다시 깜빡거리면 안 보일 수 있으니까. 꿈속에서 꿈꾼 적도 있어요. 꿈꾸려고 잠을 많이 자죠. 앞이 보이니까."
현실에서 그는 비장애인처럼 행동한다. 티를 내면 창피하단다. 어머니와 친구들이 종종 그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깜빡할 정도다.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다.
"땅을 보고 걸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길을 걸을 땐 두리번거리면서 곁눈으로 봐요. 편의점에서 뭐 살 때도 노하우가 생겼어요. 카드만 주면, 돌려받기가 어려워요. 대신 지갑과 카드를 같이 내밀면, 카드를 긁고 지갑 위에 올려주니, 티가 안 나죠."
- 너무 과도하게 티를 안 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티내면 창피하잖아요. 사람들이 안 좋게 보잖아요. 저도 옛날엔 몸 불편한 사람이 보이면 일부러 피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되니까, 후회스럽죠."
영신씨는 스위스에서 기자에게 카카오톡으로 짧은 편지를 보냈다. 프로필 사진에 눈길이 갔다. 너무나도 잘 생긴 청년과 어머니가 있었다. 영신씨가 말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엄마와 행복하게 살았겠죠."


 2015년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김영신(29)씨가 9일 오후(한국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35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시각으로 9일 오후 35차 유엔인권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유엔 제네바본부 팔레데나시옹 대회의장. 영신씨가 발언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앞서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이 국내 대기업 사업장의 인권 침해 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곧이어 우리나라 정부는 부당노동행위에 무관용 입장을 확고히 해왔다고 반박했다. 또한 산업재해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영신씨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삼성이나 엘지 휴대폰을 가지고 계시겠죠. 저는 여러분의 휴대폰을 만들다가 시력을 잃고 뇌손상을 입었습니다. 삼성전자 3차 하청업체에서 저는 하루 12시간 밤낮없이, 2주 동안 하루도 못 쉬고 일했습니다. 지금 여러분 손에 있는 것에 제 삶이 담겨있습니다. (중략)
피해자들은 모두 젊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단순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삼성과 엘지에 책임을 요구합니다. 한국 정부 역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간의 삶, 우리의 삶은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참석자들이 영신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1분 45초 후 그의 발언이 끝났다.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마이클 아도 의장이 입을 열었다. 
"삼성전자 메탄올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워킹그룹은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정부와 기업을 모두 만났는데 정부와 삼성 모두 공급망 관리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는지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 메탄올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신씨와 동행한 활동가들은 모두 눈물을 참지 못했다.

[클릭]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기획기사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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