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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찾는 믿음 (성령강림후 마지막 주일, 2023년 11월 26일)

만지다 | 2023.11.27 11:26 | 조회 157

    인자가 찾는 믿음

 

성령강림후 마지막 주일                                         누가복음 181-8


오늘 우리가 함께 읽고 나눌 말씀의 본문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는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이,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뿐만 아니라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실 때에 비유라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셨는데요.

아무래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매우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을 가져다가 빗대어 설명하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그러한 비유를 통한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 쉽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장치였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유의 말씀을 읽다보면은, 알기 쉽게 했다한 것 치고는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발생하곤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이게 맞나?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뭔데? 라는 의문들을 남기곤 하죠.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느낌도 들고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그런 찝찝한 결론을 마주할 때가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고 나누는 본문의 말씀 역시도 수수께끼와도 같으면서 찝찝한 결론으로 이끄는 비유의 말씀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번 비유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면, 어느 한 마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던 한 과부, 여인이 있었고요.

비유의 상황 속에서 내 적대자에게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하고 조르는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아무래도 그 불의한 재판관은 여인에게 온당한 판결을 내리지 않을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재판관을 찾아가 옳은 판결을 내려달라고 호소합니다. 이러한 여인의 끈질김으로 인해 한동안 꿈쩍도 않던 그 재판관은, 이 여인의 권리를 찾아줘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견디게 할 것이다라고 혼자 말하며 결국 여인에게 온당한 판결을 내려주기로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비유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7절을 보면,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의 맨 앞에 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들려주신 이유가 나타나 있는데,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예수님은 오늘의 이 비유를 말씀하신거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줄곧 이 비유는 열심히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면 소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라는 주제로 이해되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귀찮아 하실 정도로 밤낮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말씀은 여인과 같이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아주 열심히 기도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고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 질거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그런 말씀으로 선포되어 왔습니다.

한때 저도 그러한 주제를 따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재판관을 줄곧 찾아가서 조르는 여인의 심정으로 그 당시에 제가 처한 불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저를 적대한 사람들로부터 제 권리를 찾아내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밤낮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간구했습니다. ... 하지만, 제가 하나님을 덜 귀찮게 했던 것이었는지, 그때의 제 기도와 간구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이 틀린 말씀을 저에게 전해주신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분명 그렇게 제 기도와 간구가 들어지지 않았다 해서 말씀이 틀린 것은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제가 말씀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했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의 말씀을 기존의 해석에서 조금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은 이 말씀에서 몇 가지 이상한 지점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선, 과연 이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가르키고 있는 게 맞는가 하는 것이죠. 앞서의 주제를 따르자면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 동일시 되는데, 불의한 재판관이 여인의 권리를 되찾아주었던 것처럼, 하나님도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되찾아 주신다는 말이 이어지기에, 충분히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습니다. 더구나, 아무래도 이 비유는 예수님이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비유이다 보니, 불의한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당장은 꿈ᄍᅠᆨ하지 않으시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해야지 라는 뜻으로 여기면서 더더욱 오해는 깊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절대로 불의한 분이 아닙니다. 심지어,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간구와 기도를 귀찮아하며 옛다 먹고 떨어져라 하는 식으로 되찾아 주실 분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러한 오해는 이 비유 속 재판관을 나타내는 표현 중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는 부분에서 빠르게 해소가 됩니다. 하나님과 재판관은 확실히 분리되어 나타나있죠. 또한, 여인의 호소를 한동안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과 달리 하나님은 8절 말씀에서 나와있듯,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불의한 재판관은 절대로 하나님과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한 가지 주목해볼 수 있는 이상한 부분은 여인에게 좋은 판결이 내려지는 이 해피엔딩의 비유 속에서 재판관은 여전히 불의한 채로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재판관의 속마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재판관은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며, 여인의 권리를 되찾아 주었던 것은 그저 그 여인이 성가시고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이 재판관은 앞으로 또 다시 불의한 판결을 내릴 것이란 것이고, 2의 여인, 3의 여인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후에 여인들이 귀찮게 하고, 성가시게 하는 것에 면역이 생겨서, 절대로 여인들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비유는 결코 해피엔딩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전까지는 우리가 잘 주목하지 않았었던 8절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얼핏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이지? 싶은 그 말씀은 우리가 이전까지 이 비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이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답..너의 말 같은데, 특히나 매우 부정적인 답변을 상정하고 하는 말 같습니다. 이러한 답정너의 말은 여인이 불의한 재판관에게 낙심하지 않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매달려서 원하는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는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 그것은 믿음이 아니란 것이죠.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을 향해 내 간구와 기도를 아주 간절하게 쉬지않고 열심히 전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여겨왔는데, 그 질문은 그것이 믿음이 아니라고 하며,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해버립니다.

 

사실상 여기서, 오늘 비유 이야기의 핵심이 나타납니다. 여인이 불의한 재판관으로부터 권리를 되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인이 권리를 되찾는 것 이상의 그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바로, 인자가 찾는 믿음으로의 그 어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인자가 찾는 믿음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남아있게 됩니다.


우리는 인자가 찾는 믿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다시 말씀 속에서 오늘 본문의 비유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재판관은 마치,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닮아있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호소를 좀처럼 들어주지 않고, 그들을 불의함과 무도함으로 대하며, 대체로 그들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놓습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들 머리 속에, 어떤 사건들과 어떤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할텐데,,,

 

혹여라도, 어쩌다 권리를 되찾는 사람이 생겨난다 한들 여전히 불의한 재판관같은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이때에 먼저 권리를 되찾은 사람들이 이후에 할 수 있는 선택은 크게 두 가지 일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되찾은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 아니면, 분명 또 다시 불의한 판결을 내리며 제2, 3의 여인을 나오게 할 그 재판관을 계속해서 귀찮게 하며 남아있는 일.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여전히 불의한 재판관이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은데, 그러한 세상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답은, 굳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딱 하나로 정해져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계속해서 귀찮게 하며 여인들의 곁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불의한 재판관을 끌어내리고 정의로운 재판관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기도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불의한 재판관이 사라질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 가운데서 예수님은 낙심하지 말고 늘 기도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저 내 바램과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낙심하지 마는 게 아니라, 불의한 재판관같은 현실이 계속해서 불의를 낳는 일들에 낙심하지 않고 늘 기도하라는 말씀이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은 그 무엇보다도 인자가 찾는 믿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잠시 이쯤에서, 지난주 주일에 있었던 한 가지 이야기를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데요.

 

평소 주일 저녁은 저와 우리 이승훈 목사님과 김현식 전도사님 이렇게 셋이서만 식사를 하곤 했는데, 지난주 주일은 특별히 안홍택 목사님과 저희 교역자들이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냥 가게로 돌아와서,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있을 때에 일이었는데요.

그때에 목사님께서 저희에게 이런 저런 목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들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제가 목사가 되는지 안되는지도 지켜보시겠다고 하셨고,,,

 

그러다가, 이제 앞으로 우리 고기교회가 새롭게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안홍택 목사님께서 교회는 현장이 있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던 게 저에게는 참 인상 깊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현장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교회가 현장 속에 있어야 한다. 현장을 만들어내고 찾아내야 한다. 정말로 큰 울림이 있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고기교회에 온 이후만 놓고 보더라도, 고기교회에는 하나하나 모두 나열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현장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현장은 늘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기도가 없는 현장이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간절하고 사무치는 기도들이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도저히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낙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갔다가도, 현장에서 함께 기도함으로 또 다시 희망을 꿈꿀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현장을 만나고, 그곳에서 기도하면서 그 어떤 때보다도 더 깊이 하나님을 발견하며 만났던 것 같습니다.

우리 고기교회가 참여했던 현장들을 다시금 떠올려 봤을 때, 그동안 고기교회가 참 많은 현장 속에서 불의한 재판관 앞에 있는 여인과 같은 사람들. 그 곁을 지키며 함께 기도했던 것이 지금의 진정한 참된 교회의 모습을 가질 수 있게 했던 가장 큰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고기교회가 앞으로도, 지금 이 모습 잃지 않고, 계속해서 현장이 있는 교회로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변화 속에서도, 그 한 가지. 기도하는 것! 현장을 잃지 않고, 현장 속에 있는 것. 불의한 판결을 당하는 여인 곁에 있는 것.그러한 인자가 찾는 믿음, 한 가지만은 꼭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다시 비유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그 비유의 마지막 부분에서부터,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의 결말을 한번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침내, 재판관은 그 여인의 권리를 되찾아주었고, 이제는 귀찮을 일이 없겠지 하며 아주 마음을 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권리를 되찾은 여인은 기쁨에 가득 차서 집으로 돌아던 중에 문득,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마음 속에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인자가 찾는 믿음에 대해 생각해보겠죠.

그러면서, 그 여인은 다시금 그 불의한 재판관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이 겪었던 일에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여인들의 곁에 서서 함께 외치고 조르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본 재판관은 자신의 예상과 의도와 다른 상황이 펼쳐짐으로 인해 너무나도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끊임없는 부르짖음에 괴롭기도 하고 그 외침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로인해,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존중하며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겠구나 라고 재판관이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록, 상상이긴 하지만, 아주 통쾌한 결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통쾌한 결말은 현실에선 결코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불의한 현실은 이 비유에서의 재판관보다 훨씬 더 큰 불의이기에, 훨씬 더 오래 외쳐야 할 수도 있고,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더 많은 상처를 입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달걀로 바위치기 같은 일을 해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로, 마지막 때에 인자가 찾는 믿음입니다. 불의한 현실을 향해 끊임없이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행하여 보여주는 것이 인자가 찾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서 기도해야 합니다. 불의한 재판관 앞에 있는 여인과 같은 이들이 있는 현장에서 낙심하지 말고 늘 기도해야합니다. 현장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라고 말이죠. 그때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대답을 하길 원하십니까? 저는 우리의 대답이 ! 이길 바랍니다. 저에게 그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믿음이 있습니다. 라고 예수님께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고기교회가 인자가 찾는 믿음을 가진, 인자가 찾는 교회가 되기를, 이 시간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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