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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일어나야 할 일들(주현절후네번째주, 2020년 1월26일)

하늘기차 | 2020.02.02 14:02 | 조회 26

                      곧 일어나야 할 일들

2020126일(주현절후네번째주)                                                       1:1-3;9-18;22:1,2

   통상 계시록을 보는 관점은 4가지입니다. 첫 째 말세론적입니다. 저자의 시대와 무관하게 미래에 다가 올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으로 봅니다. 둘 째역사적 견해로서 예수의 시대로부터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시간을 장 별로 나누어서 1장은 초림 예수님, 그리고 마지막 22장은 재림 예수님으로 놓고 어느 특정한 시간을 주님의 재림의 시점으로 맞추어 지나온 역사적 사건을 해석합니다. 예를들어 16장을 3/4지점으로 보고, 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 출현, 아니면 1517년의 종교개혁을 자의적으로 역사의 3/4 시점으로 맞추려 합니다. 세번 째초자연적 견해로서 어느 특정한 시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흑암의 권세와의 싸움을 계시록의 말씀에 맞추어, 중세를 흔들었던 흑사병이랄지, 1, 2차 세계대전을 어두움과의 영적 싸움으로 봅니다. 네 번째는 기록한 시대의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시점으로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로 봅니다. 대부분 이단들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주장하여 몇 년 몇 월 몇일에 주님이 재림하면 우리는 휴거되어 천년 왕국의 영원한 삶을 누리며, 그 전에 7년 환난이 온다고 헛된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A.D 81년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가 스스로를 신격화 하던 즈음에, 황제 숭배를 거절하는 기독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고,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여 교회를 향해 보낸 기록입니다.

   계시록을 묵시문학이라 합니다. 구약의 다니엘서나, 위경으로 모세의 승천, 12족장의 이야기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이 때 시리아권역을 지배하던 그리이스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우주의 중심을 인간으로 보며 인간 존엄과 영광을 스스로 자처하면서 유대교를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모세의 율법서를 읽지 못하게 하고, 돼지때를 성전에 끌어들이며 유대신앙을 모독하자, 사두개인들은 적당히 타협하고,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는 강력히 저항을 하던 때에 에세네파는 세상을 사탄이 지배한다고 보고 세상에서 안락하게 잘 살기 보다는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사해 동쪽의 사막지대에 은둔하여 공동체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묵시문학의 출발점입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세상이 사탄이 지배하는 살 수 없는 세상, 절망적인 세상으로 변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언어가 상징적이며, 익명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기록자의 이름을 밝힙니다. 왜냐하면 밧모섬에서 글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인데, 그러나 편지는 철저하게 검열을 받기 때문에 상징과 은유를 사용하여 묵시적으로 기록하여 예를 들어 666 같은 숫자들, 바다에서 올라 온 술취한 창녀랄지, 하늘과 바다를 오가며 진노의 잔을 붓는 천사들처럼 검열관들이 읽어보아야 노망난 노인네가 쓴 글이라 여겨질 수 밖에 없지만 육지의 성도들은 묵시적 상징 언어들을 통해 감추어진 의미, 즉 로마는 결국은 망하니 지금의 핍박을 기쁨으로 견디어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게시록에대한 가장 곡해 된 상징이 천년입니다. 어느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후, 아니면 그 전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것, 1천년 동안은 주님이 다스리시며, 1천년이 끝나면 사탄이 잠시 풀려날 것이라는 것. 하나님의 주권을 1천년이라는 문자적인 개념으로 묶어 어느 특정한 시기에 만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사탄도 하나님 허락 하에 활동을 합니다. 1000년이라는 것도 10X10X10, 즉 무한하다는 뜻입니다. 사탄을 잠시 풀어 놓았다는 것도 먼 장래의 어느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와 폭력에 희생당하는 죽음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신앙을 버리지 말라, 지금의 환난이 지나면 로마는 망할 것이며,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이길 것이라는 비전을 밧모섬에서 소아시아의 7교회를 향해 보낸 것입니다. 이 묵시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희망입니다. 결국 악은 망하고 진리가 승리한다는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666이라는 숫자는 불완전한 63번 반복되는데, 13:18 그리고 14:1을 보면 로마는 신성제국이 아니라 표준 미달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144,000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자들이 해석하는 것 처럼 144,000을 선별하여 정한 시간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예수님의 제자 12을 곱하면 144에 완전하며, 거기에 무한 수 103144,000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희망의 수입니다.

    계시록을 잘 이해하려면, 그 의미를 찬찬히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1장 첫 번째 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먼 미래 이거나, 정해진 시간표에 맞추어 일어날 일이 아니라, ‘’, ‘반드시 동 시대에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면, 1절을 보면 처음에 하나님입니다. 다음에 그리스도이고, 천사이며, 그리스도의 종인 요한, 그래서 마지막으로 교회입니다. 교회에 알립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절 말씀을 보면 예언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묵시니, 계시니 하면 힘들어지는데, 구약의 예언서들처럼,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 요한에게 말씀을 위탁하여 교회에 말씀합니다. 구약도, 예수님도 말씀하실 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합니다. 이사야서는 하도 듣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들을 수 있을 때 들어야 합니다. 주시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최근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대단합니다. 근데 그 영화의 상징, 은유, 코드, 편집의도를 놓치면 그냥 부자와 가난의 빈부 격차의 작은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에 준합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분석하면 치밀하게 상징과 은유를 처음부터 끝 까지 바탕에 깔아 놓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7교회에 편지하는데, 각 교회에대하여 무어라고 말씀합니까?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7번 반복합니다. 그리고 13절은 3부류의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입니까? 첫 째 읽는 사람, 둘 째 듣는 사람들, 그리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가지 복을 다 받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요? 그 중에 특히 세 번째는 듣는 것은 특권이지만, 그러니까 부름 받은 사람들이 누려야 할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이지만 들어서 받은 말씀을 지키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을 거듭 강조를 하였을까요? 그 당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배교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하나님이 연약하여 우리들을 보호해 주실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팽배하던 때였지만,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지금의 핍박이 전부가 아니며, 이 세상의 주관자는 사탄이나, 로마가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며, 결국 로마는 망할 수 밖에 없음을 묵시적 언어로 예를들어 바빌론, 짐승, 용 등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지금의 환난은 교회를 정화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3:19에서 분명히 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

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현재의 환난을 정화를 위한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에베소교회에서 시작되는 칭찬과 권면은 마지막 라오디아 교회에 이르러서는 단 한 마디의 칭찬도 없이 정죄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벌거벗었다고 선언합니다. 자기 연민과 자신의 열심에 빠져 자만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교회에대하여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불완전하거나, 연약하여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재앙들은 새로운 출애굽을 향한 신호라고 하며, 교회가 첫 사랑을 잊어버렸으니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환난을 당할 것이라 선언을 합니다.

   최근에 보다 강력한 변종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보며, 아마도 이 보다 더 빠르고 강한 치사율이 상상을 넘어서는 수퍼바이러스가 출현하지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호주의 화재로 호주 대륙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야생동물이 5억 마리 이상 죽어가는 현상을 보며 어느 지옥문이 열렸다는 책 제목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하나의 징후일 뿐이며, 정말로 심각한 것은 기후생태의 위기입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2030년 까지 지구온난화를 0.5°C 이하로 묶지 않는다면 90억 인류의 생존을 비관적으로 봅니다. 2010년 러시아의 봄에 40가 넘는 이상 기온으로 식량 생산이 줄고, 곡물 수출을 동결하자, 바로 중동에서는 식량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기후위기는 모든 생존을 불가능 하게 하는 위기입니다. 작금의 세기말적 현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합한 신앙을 세상 속에서 삶으로 구체적 행동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전개되는 중에 사도 요한은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합니다. 22:1,2은 우리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희망입니다.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3절은 저주받을 일이 없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예배하며, 하나님을 뵐 것이라 합니다. 6절은“~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참되다. 예언자들에게 영을 내려 주시는 주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들에게 곧 일어날 일들을 보여 주시려고, 자기의 천사들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이에 교회는 마라나타’, ‘어서 오시옵소서!’하고 외치니, 주님께서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고 합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교회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 날마다 새롭게 하며, 새 힘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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