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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거룩함과 진실함(대림절 네번째주일, 2019년12월22일)

하늘기차 | 2019.12.22 14:42 | 조회 1280


                      바울의 거룩함과 진실함

20191222(대림절 네번째주일)                                                              고후1:12-22

   사도 바울은 15절에서 다시 한 번 고린도에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를 들렀다가, 다시 고린도로 와서 작별하고 유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본래 계획은 행20:1-3에서처럼 에베소서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고린도로 그리고 거기서 배를 타고 유대로 가려고 했으나, 바울을 헤치려는 음모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다시 마케도니아로 가서 유대로 돌아갑니다. 고린도 교회로 볼 때는 바울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고린도 교회 전체가 바울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일부 바울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고후 11:115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비운 사이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을 전파하며 성도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린도 성도들의 영적인 분별력을 흐리고,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하고, 자신들이 큰 사도라고 거짓말을 하며, 사도 바울이 여러 번 여행 계획을 변경한 사실을 근거로 바울을 신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매도하였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모금했던 구제 헌금을 사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비방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속히 고린도부터 방문하여 그들을 권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단순히 사역의 편의성이 아니라 교회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추측 컨데 에베소에서의 시련과 환난이 너무 극심하여 배를 타고 고린도로 가지 못하였고, 또한 예루살렘에 보내야 할 헌금을 신속히 받아야할 상황이 발생하여 마케도니아로 건너간 것 같습니다.

   헤른후트의 4번째 대림절 설교 본문 말씀을 접하면서 난감했습니다. 묵상 말씀은 성탄을 바라보는 마음을 야기하는데, 오늘 설교 본문은 성탄과 관련해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번 주는 매우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등기소에 교회 땅 등기하고, 중축허가서를 제출하였고, 안산 목공방, 그리고 목요일 오전에는 여전도회에서 강남의 김용희 님에게 점심을 잘 준비하여 가지고 가서 함께 점심을 나누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하는 성탄예배, 어제는 홍천의 양수발전소 반대를 위한 연대에 동참해 달라는 박순웅, 박성룡 목사님의 요청에 녹색교회 네트워크 이름으로 다녀왔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왜 이 말씀인가? 생각해 보았는데. 11-11절의 말씀을 보니 알겠습니다. 위로였습니다. ! 그렇구나. 우리 모두는 위로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땅을 디디고 사는 사람 모두는 다 같이 하늘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입니다. 세월호와 함께하는 성탄 예배, 어제 홍천에 다녀 온 것도 고통받는 모두 같이 함께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에게 천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019년 성탄에 하나님의 위로가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즉 에베소에서 살 희망 마저도 잃어버릴 정도의 극심한 환난과 고통을 당하였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만을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기도로 자신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기도는 성도의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기도로 시작하지 않은 것은 시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기도로 시작한 것과 기도하지 않은 것의 비중이 어떠한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기도 요청을 하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준 그 결실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하며, 감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순환 고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도하며, 또 세상과 이웃을 위한 중보의 기도들이 결실하여 그 열매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감사를 하니 그렇게 기도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대하여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이 에대해서는 하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오하는 바탕이 보여집니다. 다른 번역은 순박함을 주로 거룩함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은 무엇인가요? 거룩함이나 진실함의 내용은 차지하고 바울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는 묵직한 말은 제가 감당하기 버거운 표현입니다. 왜 감당하기 버거운가 하면 접근 불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풀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향함이요, 하나님의 진실함을 향함이다. 이렇게 하니 나름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데, 그래도 그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였다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엉거주춤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죄 된 모습으로 말씀 주위를 빙빙 돌며 서성이게 되는데, 이러한 생각들, 그렇습니다. 생각들이라고 방금 말했는데, 말씀 앞에 생각은 백해 무익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생각으로 읽고,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근데 참 감사한 것은 바울 사도의 그 다음 말씀이 귀하고 감사합니다.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으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습니다. 복음입니다.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까요? 은혜가 아닌 것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점으로 거룩함과 진실함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은 감히 접근 불가, 아니 감히 라는 말도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 아니 싶은 트레바스가 놓여있어 도저히 건널 수 없는데, 은혜가 거룩함과 진실함이게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에 힘입어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거룩함과 진실함에대해 우리의 양심이 증언을 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대해 갖고 있는 당위성입니다. 오늘 이 세대를 살며 스스로 라고 하지 않으면 가 아닌 ’, 또는 로 또는 무리를 지어 서로를 옹호하며 아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삶을 추종하며 살아가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라고 인정해 주는 당위성은 어디로부터 오나요? 여기서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1:17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한 것과 같습니다. “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믿는 삶. 세상의 주권자가 나에대해 죄를 묻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빌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믿음의 은혜로 스스로 자각하며, 그렇게 인정받은 의 양심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진실함으로 행동했다고 증언합니다. 인간의 지식과 생각과 의지로 살다 보면 세상의 가치와 정보와 흐름에 휘둘리기 십상입니다. ‘에대한 깊은 자기 내적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 모든 생각, 지식, 의식을 뒤로 하고 를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여 라 하며 타자에대하여 우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실한 연대의 힘, 즉 가난한자, 감옥에 갇힌자, 장애인과 소수자들, 고아와 과부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뛰어넘는 우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양심에대해서도 의 양심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이라고 합니다. 이 은혜로운 행함에대해 함께 모두 같이 자랑한다고 합니다.

   고린도를 방문하고 이제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서 모금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는 체포, 구금 당하여 로마로 압송될 일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롬15:31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모금한 헌금을 기꺼이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모금한 것을 그냥 전달 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잘 전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에대한 멸시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늘 쫓기며, 폭력을 당하고, 체포, 구금, 거짓지도자들과의 싸움... 숫 한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은 꿋꿋히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이 임을 행합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노라면 거기에는 가 점점 사라집니다. 어찌보면 진정한 , “에 구속되지 않은 가 진정 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도 자신이 이전에 예수를 핍박했던 자라고 하면서 죄인의 괴수 중에 괴수라고 하며 자기를 부정합니다. 아무 쓸모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할 때도 자랑할 것이 없지만 굳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의 연약함을 자랑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사도 바울은 상상을 초월하는 환난을 당하면서도 위로와 희망이 여러분에게 넘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가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우리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의 진짜 모습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바"라는 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살아내면서 바울은 사라지고 주님이 드러나며, 우리, 즉 교회가 드러납니다. 사도행전을 자세히 보면 15장 이후에는 바울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서 바울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 지를 보는 지도 모릅니다. 꼰대가 되지 않고 사라집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사라져야 합니다. 평생 ""였는데, 그래서 나와 관련하여 늘 내 자녀, 내 사업, 내 직장, 내 교회 라며 붙들려 사는데, 이제 ""는 사라지고 "우리"가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여전히 ""인가요. “나요!”라고 하는 ""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는 나는 우주 와 역사, 온 세계의 피조물과 하나, 그러니까 우리 모두 같이 교회이며,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로마에의해 A.D70년에 예루살렘이 훼파된 이후 세워진 교회 이외의 다른 어떤 우리도 주님은 아직 드러내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지금도 교회입니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인 입니다. 바울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사라지면서 그리스도와 교회가 나타나는 것은 거룩함과 진실함, 바로 은혜입니다. 사도 요한이 고백했듯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우리 모두 같이 인 것입니다.

   이 성탄에 하늘의 한 없는 평화의 위로로, 이웃, 교회, 온 세상 피조물과 위로를 주고 받으며 세상을 넉넉히 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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