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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어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창조절 열세번주일, 2019년11월17일)

하늘기차 | 2019.11.24 13:23 | 조회 36


             깨어 있어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91117(창조절 열세번주일)                                                                 25:1-13

   열처녀 이야기는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일반적인 환난과 구약의 전통에 따르는 임박한 주의 날에 일어날 일들에대한 이야기가 뒤 섞여있는 24장 본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 비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들려 올라가는 휴거, 신실한, 아니면 신실하지 않은 종에대한, 그리고 달란트 비유 등은 24, 25장의 7개의 비유 전체로 울림이 있으며, 그 중에 하나가 열 처녀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혼돈과 뒤섞임의 상황 속에 오늘 말씀의 핵심은 맨 마지막 13절 말씀의 깨어 있어라입니다. 왜냐하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늘나라는 신랑을 맞으로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 나라는 단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어디, 어느 시간에도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예수님 당시, 그리고 최근 까지도 이스라엘은 결혼식을 1주일 동안 열며, 마을 전체가 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어느 이스라엘 여행자가 실제 결혼잔치가 벌어지는 광경을 갈릴리 호수가 마을 어귀에서 목격을 하였는데, 들러리 처녀의 숫자가 정말 1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여행객이 가이드에게 결혼식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결혼식은 밤에 행해지는데,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그 다음날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제 올지 모릅니다. 24장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들려 올라가는 휴거 이야기에서도 42절에 보면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어라고 합니다. 12절은 로마가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여 성곽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처참하게 훼파될 것이라 합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제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게 24장에서 25장으로 이어지는 환난에대한 말씀의 핵심은 깨어 있어라는 것인데, 실제로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는 A.D. 70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도 곧 임박할텐데 제자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합니다. 서로 높아지려는 속 마음을 감추고 예수님을 따랐을 테니까요? 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였지만, 속 마음은 세상의 나라의 가치에 붙잡혀 전혀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한 걸음도 발을 옮겨놓지 못할 때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신랑이 더디 온다고 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니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더디 오는지 모르지만, 신랑의 입장에서는 정한 시간에 맞추어 결혼잔치를 베풀고자 신부의 집으로 향합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모습을 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등도 준비했고, 신랑이 늦어지니 모두들 잠들었는데, 갑자기 신랑이 옵니다.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제 등불을 손질하는데 등불이 꺼져간다는 것을 보면 기름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이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밭으지 말고 충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누어달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서로 모자랄테니 사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 집에 들어가고 문은 닫힙니다.

   열처녀이야기를 재미있게 재구성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좋은 잔치자리에 신랑을 맞이하는 들러리들은 모두 친구들일 텐데, 기름이 떨어진 친구들에게 기름을 나누어주지 않은 다섯 처녀는 사실 나쁜 년들 아닙니까? 그리고 조금이라도 인정머리 있다면 신랑이 왔을 때 신랑에게 친구들이 기름을 사러 갔으니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신랑도 그렇습니다. 어찌 그렇게 몰인정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모르쇠 할 수 있는 겁니까? 이거 완전히 승자 독식주의입니다. 그런 천국이라면 천국 가는거 생각 좀 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한 말씀합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그건 오해다. 너는 내 이야기를 완전히 거꾸로 알고 있구나. 나는 그런 흥청망청 잔치자리에는 간적이 없다. 어떤 녀석이 나를 사칭하고 들어가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나도 못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잔치자리에 못 들어간 다섯 처녀와 함께 있었지.” 우스게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설득력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제입니다. 마지막 때에 깨어 있어라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보다 먼저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당시 교회는 모두 종말을 기다리는 공동체였습니다. 그것도 주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임박함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함께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혀 이러한 시간 개념에 무관하지만 교회공동체는 주님 다시 오실 것이라는 시간관을 갖고 모든 것을 감내하며, 기쁨으로, 감사로, 은혜로 생명과 자유, 정의와 평화로 세상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고 합니다. 13:11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라고 합니다. 안다고 합니다. 이미 초대 교회공동체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시간관, 기치관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시간과 가치는 어떠한가요?

   주님의 재림은 구약의 주의 날과 같은 파국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회복되는 온전한 나라로의 초대입니다. 2532절은 그것을 양과 염소가 갈리듯이 갈린다고 합니다. 마치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듯이 염소와 양이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여기서 열처녀 이야기도 그렇고, 양과 염소 이야기도 그렇고 모두 2원론적으로 해석하여 양은 천당, 염소는 지옥으로 라는 천박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데, 지옥의 원어인 게헨나라는 단어 자체가 구약이래로 예루살렘 남쪽 골짜기 온갖 쓰레기와 시신을 태우는 곳이어서 항상 유황불이 타올랐고, 예레미야를 비롯한 예언자들과 일반 백성들도 장차 메시야가 오면 예루살렘 남쪽 힌놈골짜리에서 악인들이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 불태워져 처벌 받을 것으로 알고있던 상징적인 자리였습니다. 이것을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개념으로 단순화 시킨다면 여지없이 태극기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의 단절 그자체가 어두움이며,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어리석은 5처녀처럼 우리는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님과 단절된 줄도 모르고 영적 게으름에 빠져 주님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종말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이 마치 동백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핏빛의 그 붉은, 꽃입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툭 떨어져 하얀 눈 위에 펼쳐져 붉음을 물들게 하는 그 확연함이, 그 지나온 삶의 아쉬움과 연민과 애뜻함이 있음에도 이제 그 마지막의 한창의 모습 그대로 자기 생명 툭 떨구어 새로운 시간, 새로운 가치, 새로운 나라를 향하는 모습이 바로 모두 같이 교회의 모습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빛 만 보아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 저 사람 얼굴이 참 환하네. 빛이 난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가 있지. 저 사람의 삶은 왜 우리와 다르지. 저 사람의 얼굴에 쓰여있는 진짜 평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무슨 힘이 저 사람을 저렇게 역동적이고, 힘 차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 궁굼해. 무얼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모든 것의 주인. 모든 것을 회복하실, 다시 오실, 그래서 평화로 기다리며 사모하는 삶. 종말을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깨어납시다. 기도로 영적인 잠을 깨우십시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잠에서 깨어나라고 합니다. 꿈 속에서 밥도 먹고, 평상시처럼 살아갑니다. 자기가 애써 땀흘린 일들이 성공도 하고, 명성도 얻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하는 일은 모두 허망합니다. 일장춘몽입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말 깨어나야할 것은 20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주님이 오지 않네, 언제 오시나, 지연되었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말은 연대기적인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이 시간은 창조의 처음시간이며, 그리고 영원인데, 이 영원함이 종말의 신앙을 따라 우리의 삶 중심에 순간으로 자리합니다.

   성 거스틴은 젊을 때에 영생에대한 갈급함이 있었지만 세상의 쾌락과 허구적인 마니교에 붙들려 무기력하게 공허한 삶을 살 수 밖에 었었는데, 어느날 바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들어서 읽어라, 들어서 읽어라는 노래 소리에 버쩍 정신이 들어 성경을 펼쳐 든 것이 롬13:13,14절 말씀이었습니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사도 바울 역시 자신 안에 자리 잡은 죄에 스스로 꼼짝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탄식합니다. ! 나는 비참한 사람이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줄 수 있겠나 하며, 8장에서 스스로 탄식하며 성령을 요청합니다. 탄식은 성령을 부릅니다. 여러분 탄식은 성령을 부릅니다. 여러분의 애통하는 탄식을 성령님은 귀담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음 주부터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이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운동 선수들은 한 시즌이 끝나면 자신이 지난 시즌에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체크하며 보완하여 새로운 시준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교회력은 대림절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우리 교회가 1년에 2번 기도의 날을 선포합니다, 한 번은 사순절이고, 또 한 번은 대강절입니다. 좋은 전통입니다. 절기 중 한 주간을 기도의 기간으로 정하여 온 교우가 기도에 메진을 합니다. 이 번 기도 주간은 마다하지 말고 핑계하지 말고 멈추어 기도에 자리로 나오십시오. 기도에 천착하여 깨어나십시오 주님이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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