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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 이야기(창조절 열번째주일, 2019년11월 3일)

하늘기차 | 2019.11.03 14:17 | 조회 24


                        노아의 홍수 이야기

2019113(창조절 열번째주일)                                                           6:5-8;8:18-22

   노아 홍수 이야기의 배경은 홍수이지만 주제는 카인에게서부터 이어져온 도시문명의 타락과 폭력에 마음 아파하는 하나님입니다. 아벨을 살해하고 하나님을 떠난 카인은 놋이라는 곳에 이르러 성을 쌓고 에녹이라는 이름의 도시 문명을 일구어냅니다. 도시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도시 문명 속에서 익숙하게 살아갑니다. 카인의 후손들 역시 폭력을 양산하며 도시를 유지시킵니다. 들판위에 세워진 성곽은 폭력을 휘두르며 방어하기에 적절합니다. 후손 중에 라멕이라는 자는 아내들에게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죽였는데, 젊은 남자라고 하면서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라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77갑절이라고 합니다. 르네 지라르 라는 프랑스의 기독 사상가는 이 폭력, 카인에게서 드러난 폭력이야말로 인간에게서 지울 수 없는 본질적인, 근원적인 폭력이라고 합니다. 국가와 도시는 이런 압도적인 폭력을 통해 그 외의 다른 폭력들을 잠재우고 혼란과 두려움과 갈등, 무질서를 잠재웁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문명을 일구는 폭력과 연관되어있으며, 희생양을 통해 그 폭력성을 감추고 숨기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나치는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광기를 정당화하였고, 한국 근현대사 역시 그렇게 국가 폭력으로 점철된, 누군가가 희생을 치르는 역사가 반복되어가고 있는 바, 제주4.3, 여순항쟁, 보도연맹, 광주5.18 . . .등 이 모든 우리 역사도 빨갱이라는 희생양을 내 세워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악 순환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야하며, 실제 남은자들, 숨겨진 거룩한 씨에의해 폭력과 거짓의 역사는 감추어지지 않으며 드러나고, 연대하여 폭력의 흐름을 끊는 놀라운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노아의 홍수이야기에 연관되어 빼 놓을 수 없는 사건은 네프림의 출현입니다. 라멕의 폭력이 77배라고 한다면, 이 네피림의 폭력은 거기에 7을 곱한 777배의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거인들, 영웅들이 출현하면서 혼돈, 공허, 어두움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을 창조하기 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네프림의 출현으로 도시문명의 폭력과 타락은 극에 달아 6:11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고 합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홍수이야기가 나오는데 노아의 홍수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신들이 인간들이 왕성한 번식력으로 너무 많아져 소란스럽고, 시끄러워 쉴 수가 없어 홍수를 일으킵니다.

   지난 한국일보 1030일자 신문에 보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처럼 유지될 경우 2050년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15천만명이 집을 잃을 수 있다고 하면서 베트남의 호찌민시, 태국의 방콕시도 물에 잠길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21세기에 고대의 홍수가 재현되고 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홍수의 원인에대해 사람들이 황소가 울부짖는 것처럼 시끄럽다고 기록한 것처럼, 작금의 현상을 보면 역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원을 고갈시키며, 끝 없는 욕망으로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나 창세기는 홍수에대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관점이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시끄러워진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후회하며, 탄식하고 계십니다. 무슨 하나님이 후회를 다 하나,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한가? 뿐만아니라 창세기 이야기를 Fact로 보려는 입장에서는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이 6장의 동물의 숫자와 7장의 동물의 숫자가 다르고, 홍수가 끝나고 무지개가 뜨는 장면도 비가 오고 해가 나면 당연히 무지개가 뜨는 것이 자연 현상임에도, 성서를 문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처음 보여주셨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합니다. 이 모든 불합리함을 해소 할 수 있는 당연하고 합당한 논리는 성경은 과학, Fact를 말하는 책이 아니라, 믿음을 이야기 하는 책이어서 특히 창세기를 Fact로 보려는 창조과학회와 같은 어리석은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Fact로 보아야하는 단위들도 많지만, 성서 전체는 상징이요, 은유 덩어리입니다. 창세기는 글자그대로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예를들어 6:7에서 하나님이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 .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하나님이 자기가 창조한 것을 다 쓸어버려, 정말 폭력적인 하나님이시네 하며 하나님의 폭력성을 논하며 실제 교회 신앙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옛날 이야기들, 선녀와 나뭇꾼,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같은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가 들려주는 내용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홍수이야기를 통해 성경은 오늘 교회와 인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나 라는 것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무어라 하는지 시대적인 개념을 통해 해석하며 들어야 합니다. 20여년 전 만 해도 노아의 홍수를 기후생태변화의 관점에서 보려는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류가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는 절박함에 놓였습니다.

   지난 목요일 청파교회의 녹색교회 아카데미에 다녀왔는데, 두 분 강사님 역시 인류의 생태 기후적인위기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1995년에 개봉된 워터월드라는 영화가 새삼스럽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양극의 얼음이 다 녹아 지구 전체가 물로 휩싸여 인류 문명이 모두 수중에 가라 앉아 땅을 찿아나서는 영화였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이미 로마 클럽이나, 세계의 유수한 연구소나 사상가들은 CO2 발생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고는 계속 되었는데, 올 해 태풍의 규모나, 갯 수나, 속도를 보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9월 첫째주에 김용희님과 함께하는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고공농성 날자를 기록하는 간판에 투쟁 84이라는 문구가 생각나는데, 그 문구 아래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는지 아시는지요? 해고는 삶을 파괴한다였습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않는 폭력을 고발하는 문구입니다. 실제로 김용희님 가족은 국가와 기업과 언론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홍수 이야기는 그냥 비가 40일 끊이지 않고 내려와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멸절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들의 거짓과 폭력으로 부패하고 썩어가는 것을 보며 탄식하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어쩌면 길가메시서사시의 인류를 시끄럽다고 멸절하자는 계획을 세운 신들은 사실 오늘로 치면 세월호를 물 속에 수장시킨 광주를 총칼로 진압한 국가권력의 모습이 아닌가 십습니다. 창세기의 홍수이야기 관점과 전혀 다릅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자꾸 외치고, 금식하고, 탑 위에 올라가고, 100만씩 모여서 정의와 진실을 외치니 그것이 마치 황소의 울음 소리 같이 들렸을 것입니다. 길가메시는 당대의 기득권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신화였던 것 같은데 반해, 성경의 홍수이야기는 마음 아파하는 하나님에게 그 관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날 김용희님의 투쟁 84간판의 한 쪽 깃발에 또 하나의 작은 문구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시나요? 이재용 부회장이 해결하라!’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재용을 포함한 기득권은 김용희 노동자와 같은 사람들이 외칠 때, 시끄러워서 쉬지못해 쓸어버리며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길가메시에 등장하는 회의하는 신들, 즉 회의하는 학계, 언론, 종교계, 정계의 기득권 세력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어 우리를 죽기 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후회와 탄식 소리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녹색교회 아카데미에서 2번째 강의에서 생태계 피라밋구조의 최상위 계층인 인간이 너무 많아 자원이 심각하게 고갈되어, 지구상에 인종멸절이 있지 않겠느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시끄럽다는 길가메시와 같은 관점의 질문도 나왔다고 합니다. 고대 시대의 신들의 회의 내용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지구생태의 위기 속에서 그 날 김기석 성공회대 총장님은 희망에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잊지말아야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은 희망에대해서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나요? 간혹 성도들이 담론에 빠지면 놓치기도 하는데, 희망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어떻게해서든지 이 죄, 욕망, 거짓으로부터 시작된 그래서 네피림이 지배하는 도시 문명의 조직화된 폭력에서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를 찿고 있으신데, 그 실마리를 노아를 통해 얻으신 것입니다. 노아홍수이야기는 당시의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의 범람으로 모든 지역이 수장되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무수한 홍수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거짓, 부패, 폭력으로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세상을 안타까움 마음으로 탄식하며 구원코자하는 하나님의 마음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노아는, 아니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기록합니다.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함께하였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인데, 노아 당시 땅이 썩었고, 무법천지였다고 합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귀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합법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악한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해 나가는 무법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 때 소중한 것은 은혜를 옷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함께 방주를 지을 계획을 세웁니다. 22절에서 노아의 모습을 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다 하였다. 꼭 그대로 하였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말씀 그대로! 많이 듣지 않았습니까? 종교 개혁의 구호입니다. 말씀 그대로 신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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