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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색 줄을 매단 라합(창조절 일곱째주일, 2019년10월13일)

하늘기차 | 2019.10.13 16:07 | 조회 898

                   

                       홍색 줄을 매단 라합

20191013(창조절 일곱째주일)                                                         2:10-12; 17-21

   오늘 말씀10절에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 당신들 앞에서 어떻게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셨으며, 또 당신들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어떻게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는가 하는 소식을들었다고 하는 말씀 만 놓고 보면, 복음입니다. 그런데 적국의 입장에서 보면 끔찍한 소문입니다. 가나안 땅의 유력한 부족인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친 이스라엘의 민족 신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가 보낸 2명의 정탐꾼이 여리고의 정세를 다 파악한 후 돌아 와 여호수아에게 주님께서 그 땅을 모두 우리 손에 넘겨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를 무서워하고 있다고 보고를 하고 있으며, 그래서 3장에서 싯딤을 떠나 요단강에 이르러 진을 치고 전 지휘관을 불러 모아 어떻게 싸울지에대한 명령을 하달하고 전투 체비를 갖추는데, 이스라엘이 율법궤를 앞 세워 여리고성을 7바퀴 돌며 외치는 순간 단 번에 여리고성이 주저 앉습니다. 그러니 여리고에서 두 정탐꾼과 라합이 여리고 병사들과 벌이는 숨막히는 첩보전은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라합과 정탐꾼의 이야기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이야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라는 궁굼증이 생깁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신과 출애굽을 이끈 야웨 하나님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가나안의 신은 다산과 풍요의 신이지만 유대민족의 하나님은 노예를 해방시킨 야웨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인 라합의 신앙은 아군과 적군의 개념을 뛰어 넘습니다. 자기 나라,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민족입니다. 저는 라합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성문 어귀에 허름한 주막 차리고 몸을 파는 여인에게 국가는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도, 아무 것도 베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멸시를 받았을까?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바늘귀는 낙타는 통과할 수 없지만, 비천한, 가난한, 애통해 하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통과하는 것 같습니다. 이 놀라운 신앙이 동시대의 룻과 이어집니다. 룻기의 나오미는 가족과 함께 가믐을 피해 삶의 터전,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를 합니다. 거기서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모압 여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10여년이 지나면서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며느리 둘과 나오미 만 남게됩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자책감에 나오미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그 아픔, 버림받음에서부터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아픔을 모른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압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며느리 룻이 함께 이스라엘로 간다고 합니다. 나오미는 말렸지만 룻은 

                “. . .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고 하며 단호하게 나오미를 따르겠다고 합니다(1:16~17)

   나오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 믿음의 조상들의 땅을 떠났고, 남편과 아들들이 모두 자손을 보지 못하고 타지에서 죽은 것을 하나님의 징벌이라 자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느리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룻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룻을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라 가족 중에 한 사람을 택하여 결혼하게 합니다. 바로 보아스입니다.

   1:5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볼 것 같으면 살몬이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 태어나고, 그 다음에 이새, 그리고 다윗으로 이어지며, 궁극에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의 자긍심이라 할 수 있는 족보가, 그 내용을 보면 족보 안에 이방인 라합, , 그리고 인륜을 깬 다말의 등장, 그리고 다윗의 처 밧세바 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신앙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윤리와 관습, 상식과 가치를 모두 뛰어 넘습니다.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삶의 정황을 보면 매우 절박합니다. 아마도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아니 이유가 없을텐데, 인간이 극복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악을 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 정황을, 사건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라합은 여리고성에 주막을 차리고 몸을 파는 사람입니다. 성을 드나들며 머물고 가는 곳입니다. 모험과 사랑과, 싸움과 온 갖 잡다한 것들이 왔다가 가고, 다시 오는 자리입니다. 성 밖 세상의 정보가 차고 넘칩니다. 많은 거짓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텐데, 라합은 그 중에 하나님에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새겨들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정보의 시대에 참 정보, 나를 살리는 정보는 무엇인지요. 라합은 비록 천한 삶을 살았지만 듣을 귀가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말씀이 T.V와 라디오와 인터넷을 통해 흔하게 들려와도 들을 귀가 없으면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홍수 때에 물은 넘쳐도 정작 마실 물은 없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어떻게 함께하였는지를 들으며 구원이 어떻게 오는지를 본 것입니다. 구원은 결코 난공불락인 여리고 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의 백성들은 자신들 앞, 몇 킬로미터까지 접근하여,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해의 요청도 하지 않았고, 또한 여리고 땅을 정탐하려고 온 정탐군들을 잡으려고 라합의 집에 군인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리고 왕과 그의 백성들은 수 천년간 어떤 외적의 침입에도 버텨왔던 성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듣고 마음이 녹고, 무서움에 떨었지만 자신들이 거하고 있는 난공불락의 성벽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무언인가요? 정말 하나님을 믿으시나요?

   여리고성의 군사들이 주막으로 들이닥쳤을 때 라합은 허둥대지 않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옥상의 아마 줄기를 널어놓은 곳에 숨기고 찬찬히 대응을 하며 군사들을 주막 밖으로 유인합니다. 이 모습을 보며 이집트의 히브리 산파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추상같은 바로의 명령을 아랑곳 하지 않고 남자아이를 몰래 빼돌려 살게 하였는데, 모세 역시 그렇게 살아났습니다. 하늘 같은 바로, 나는 참새도 떨어뜨릴 신 같은 존재인 바로의 명령,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라는 추상같은 명령인데, 이건 단지 명령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이었고, 바로가 친히 명령한 것이어서 감히 거역할 엄두도 나지 않았을텐데, 히브리 산파들은 태어난 남자 아이들을 빼돌립니다. 그 원동력은 간단합니다. 1:17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고 기록합니다. 바로 하나님 경외입니다.

   여리고성의 라합은 여리고성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줍니다. 라합의 순발력과 재치는 탁월합니다.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여리고 병사들이 찿아오자 바로 숨기고 왔다”, 그러나 떠나갔다고 합니다. 집을 수색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를 구원할 분은 오직 한 분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확신함으로부터 온는 것입니다. 미기적거리고 얼버무렸다면, 라합의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눈하나 깜짝하지않고 여리고 군사들을 따돌렸습니다. 이 순발력을 보며 또 하나 생각이 떠 올렸습니다. 바로 여리고의 삭개오입니다.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는 로마에 부역하는 세리장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 다가갈 수 없자, 삭개오는 뽕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하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고 합니다. ‘어서라고 하자, ‘빨리라고 응답을 하였습니다. 그 뿐아니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다고 합니다. 거침이 없고, 지체함이 없습니다. 마치 라합이 하나님의 구원의 찬스가 왔음을 깨닫고 지체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생명, 믿음, 구원, 정의, 평화는 때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구역예배에서 빌1:6을 통해 함께 말씀을 나누었지요. 선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인 것을 확신한다고. 그러니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일하시는지 분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성도들은 영적 식별에 익숙해야 합니다. 라합은 그런면에서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 경외함이 있습니다. 라합이 정탐꾼이 왔는데, 무심하였고, 그냥 그 집을 떠났다면 어떻했을까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5절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 그러니까 다윗의 5대조는 바로 이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이라는 멋진 로맨스를 지어내는데, 상당히 그럴듯합니다. 얼마나 멋진 사랑이야기입니까.

   라합은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한 여인의 지혜, 깨달음이 한 가정을 구합니다. 지혜는 하나님 사모함으로부터 옵니다. 이 마음이 없으면 실마리를 얻지 못합니다. 시작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시작할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모릅니다. 라합의 모든 과정은 듣고 사모한 결과입니다. 생명이 오가는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 라합은 떠나는 정탐꾼들과 약속을 합니다. 우리를 살려주면, 너희 온 가족을 살려주겠다는 생명의 약속을 하고 이들은 신속하게 성을 떠납니다. 라합의 가정을 구원한 붉은색 밧줄은 출애굽 당시 히브리 노예들을 구원한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이며, 이삭을 구한 감추인 어린 양이요, 또한 인류를 구원하는 십자가의 피흘리심입니다. 그런면에서 여리고성이 단 번에 무너진 기적 보다는 라합의 이야기가 더 소중한 믿음의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합의 이야기와 여리고성이 무너진 이야기는 예상컨대 별개의 다른 전승에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내려온 것 같은데, 구원사의 흐름을 볼 때 라합은 교회의 믿음의 표, 붉은 동아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합의 지혜가 여러분에게 흘러가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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