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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옷을 입자(창조절 다섯째주일, 2019년 9월 29일)

하늘기차 | 2019.09.29 14:35 | 조회 1214

                          겸손의 옷을 입자

2019929(창조절 다섯째주일)                                                               벧전5:5-11

 베드로서신은 소아시아의 교회들, 성도들이 심한 박해로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오히려 더 심한 박해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4:12은 이 고난을 불과 같은 시험이라고 하면서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이 마치 용광로의 불이 금을 순금으로 정제하듯이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여 마지막 때에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면서 이 소망을 벧1:3은 산 소망이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바라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뒤에 두고 엄한 것을 쫓아갑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소망을 롬5:2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는데, 피조물로서 갖추어야할 품위, 존귀함을 다 잃어버리고 내 생각과 의식이 자꾸 무한하고, 힘있는 것으로 향하다 보니 자본에 농락당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성도들도, 교회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예외 일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 이렇게 지구촌 전체가 물질만능, 우상숭배에 빠진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피조물로서의 내 존재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창조주로서의 영광이요, 인간의 영광은 피조물의 영광인데, 사탄은 이것을 자꾸 뒤집어 혼란을 야기시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할 선함을, 아름다움을 잊고 거짓된 것을 바라며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를 돌아서게 하여, 잃었던 방향을 다시 찿아, 마지막에 주님이 주시는 구원에대한 소망을 바라보게 합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이 소망이 오히려 박해 중에 근원적인 생명력, 즉 주님 다시 오실 때의 구원을 바라보게 한다고 합니다. 이 소망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롬5:5에서 말하듯이 환난 가운데 인내하며, 연단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소망, 산 소망, 십자가와 부활에서 오는 순금 같은 소망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집니다. 부어진다고 하는 말의 어감에 성령의 기름부음의 느낌이 와 닿습니다. 5:5절은 성령을 통하여 라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즐거워하라 하고, 베드로는 기뻐하라 하는데, 이것이 도저히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추어진 구원의 신비인데,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 까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길 위에 놓여진 로드맵인데, 성령이 그 여행길에 동참하였으니 이것은 자유로운 길이며, 평화의 비둘기의 형상을 품고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십자가와 부활의 길이니, 이제 더 이상 이 경계에서 들락 날락 하지 말고, 주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그래야 환난이 환난이 되고, 박해가 박해가 되며, 고난이 고난이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 다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들락날락하면 환난을 비껴갈 수 있고, 돌아 설 수 있는데,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환난에서, 인내, 그 다음에 연단, 소망, 사랑, 주님 다시오심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영광, 잃어버렸던 영광의 회복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주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주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요. 베드로는 복종하라, 겸손하라 합니다. 이것은 자기부정이며, 기독교의 중심적인 모습입니다. 혹시 이 말이 굴종적으로 느껴지나요? 그렇다면 교회와 사회와 거대담론과 교회에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흐름과 자신의 교회에대한 그릇된 시각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누구에대한 복종인지? 순종이라 하지 않고 왜 절대적인 경외를 표하는 복종이라는 말을 쓰는지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펴야합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통찰력이 있어야 하며 분별력을 가지라 하였습니다. 누구에대한 복종이고, 누구에대한 경외인가요?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안에 예수님을 통해 복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를 하며 손 수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때를 상기하며 자기가 그 겸손을 거부하려 했던 생각이 뚜렸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늘 말씀에서 겸손의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주님은 겸손의 앞 치마를 두르고 허리를 굽혀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가장 더러운 발을 손수 씻어주었습니다. 우리 번역은 겸손의 옷을 입으라고 하는데 헬라어로는 그냥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매듭을 묶어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냥 걸쳐서 바람이 불어 흘러내리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야무지게 단단히 매듭을 지어 입는 것입니다. 겸손은 그렇게 입어야합니다. 말로, 겉으로 굽신굽신하지 말고, 정말 뜻을 헤아려 그 뜻에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 뜻을 내려놓고 우리 주님에게, 몸된 교회의 교회됨을 위해 겸손하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성령의 감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따른다면 가능하다 싶습니다.

 이 겸손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6절에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라 합니다. 여러분! 이 능력 아래 자기를 낮추십시오! 이것은 자기부정이며, 그동안 낮추지않으면서 흠모하며 사모했던 것들이 허구였다는 것을 몸으로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었던 삶의 프레임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삶의 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동안 엉뚱한 것에 무릎 꿇고, 곁눈질하며 주님 밖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아래에 머물러 있기 바랍니다. 소아시아 교회들은 베드로의 이 말에 모세와 홍해와 바로의 군대를 바로 연상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바로의 손에서 빼 내어, 광야길을 지나 요단강을 건너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갔는지를 뼈 속에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아래 자기를 낮추는 마음은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순 식간에 돌 듯이 그렇게 우리 성도들에게 더 나아가 세상으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모세가 홍해와 바로의 전투병(147:특수병거 육백 대로 편성된 정예부대와 장교들이 지휘하는 이집트 병거부대를 모두 이끌고 나섰다/9:바로의 모든 병거와 기마와 그의 기병과 보병으로 구성된 이집트 군대)사이에 놓여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모세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라고 했던 그 마음입니다. 상상을 해 봅니다. 만약 모세가 지켜 보기만 하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이 여전히 자기 생각과 우상 아래 있었다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아니면 모세가 전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라는 외침에 전염병 돌 듯이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어 온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바라보았을지?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모세의 하나님 향한 간절한 외침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모두 감동시키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소아시아교회를 향해 권면하며 먼저 겸손의 옷을 입으라 하였고,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라 하였습니다. 셋째로는 7절에서 걱정을 사서 하지 말고, 오늘 말씀처럼 어떻게 하라고 하나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돌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겨 보셨습니까?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참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시며 염려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무엇을 구하나요? 세상의 가치에 목을 매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염려가 항상 따라 붙으며, 사탄은 염려를 통해 우리를 세상의 일에 꽁꽁 묶어둡니다. 4:7은 죄가 우리 문에 도사리고 있다가 너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인가 하면 염려, 근심, 시기 질투와 같은 연약한 마음을 타고 들어옵니다. 이것을 분심이라고 합니다. 사탄은 마음이 나뉠 때 어김없이 찿아와 주인노릇하려 합니다. 그러니 주님께 걱정을 맡기십시오.

 그래서 4번째로 8절은 보다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차리고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콩인지 팥인지,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추진하는 것이 주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선하며, 덕이 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면, 성령으로부터 오는 영적 식별, 그로부터 오는 세속적인 가치로부터 돌아서는 일은 요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속적 가치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항상 합당하고도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영적식별이 없으면 그대로 무감각하게 세상의 자리에 자기를 세워 즐기는 모습이요, 세상 편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친다고 합니다. 물리친다는 말은 좀 약합니다. 영어번역의 경우는 반대한다(oposite)’, 또는 거부한다(resiste)’ 라고 보다 강한 어조로 하나님의 마음을 표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떤 은혜를 베푸나요? 10절은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들을 선물합니다. 세상의 것들이 나의 삶을 흔들어 놓을지라도, 그래서 손해를 보더라도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며 묵묵히 고난가운데에서도 겸손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며,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깨어있어, 악과 싸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며, 굳게 세워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4:6, 7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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