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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하시는 하나님(창조절 네째주일, 2019년 9월 22일)

하늘기차 | 2019.09.22 14:07 | 조회 31


                         개입하시는 하나님

2019922(창조절 네째주일)                                                                 28:10-22

   창세기의 이야기 주제는 평화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3대가 하나님 신앙의 상속을 위해 벌이는 치열한 갈등의 구조인데, 민족, 국가를 뛰어넘어 온 피조 세계의 평화를 향한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 뿐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복주시는데, 아브라함의 경우는 그 갈등이 수직적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갈등입니다. 이삭과 야곱으로 내려가면 갈등구조가 수평적으로 바뀌어 형제간에,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당시의 관습을 깨고 동생이 상속자가 됩니다. 아버지는 장자 에서에게 축복을 내리려 하지만 성경은 에서에대해 이미 이방여자와 결혼한 것에대해 기록하고 있고, 아버지 이삭은 이에대해 무감합니다. 족장이 되려면 호방하고, 지도력이 있고, 누가 보아도 그 면모를 갖추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상속에 대해 위기감을 느껴 야곱을 믿음의 후계자로 봅니다. 리브가는 전통적인 상속의 관행에 저항을 합니다. 야곱 역시 리브가의 계획에 동참하는데 그 방법이 비열합니다. 팥죽으로 속이고, 이 번에는 위장하고 음식물로 아버지 이삭을 감쪽 같이 속여 축복을 받아냅니다.

   이삭은 마른 땅에서 우물을 파, 주변 지역의 족속들과 공유하며 평화를 가져왔는데, 정작 같은 물을 마시며, 같은 집에서 사는 에서와 야곱 사이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세상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 약속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 제자들 사이에, 교회사 속에, 초대교회공동체 안에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일본과 한국,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자연과 인간 사이에 끝없는 갈등이 이어집니다. 에서를 상속자로 세우려던 이삭의 계획이 무너집니다. 평화의 사도였던 이삭에게 말년에 예상치 못한 불화가 생겼습니다. 큰 아들 에서를 상속자로 삼아 축복을 주고 싶은 아버지와 그것을 받고 싶어하는 아들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고정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참담한 심경은 말 할 나위 없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이삭과 에서에게 연민이 가지만, 마치 카인과 아벨에서 살해당한 아벨은 사라지고, 오히려 살인자 카인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건장하고 잘난 용감한 에서가 아니라, 그저 엄마의 심부름이나 하며, 부엌이나 기웃거리는 사기성이 농후한 얌생이 야곱에게 임합니다. 인간적인 동정심을 넘어, 휴머니즘을 넘어, 합리적이지 못한,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 역시 위험부담을 않고 하나님의 인류를 항한, 피조세계를 향한 긍휼로 야곱을 축복합니다.

   생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고, 생명의 위급함을 느끼며 다급히 고향을 떠나 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로 떠납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너무 피곤하여 무방비 상태 속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돌을 주어 베게를 베었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야곱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었는지를 말해줍니다. 어떤 곳인지 조차 파악이 안되는 곳에서 위험한 잠을 청하였는데, 하나님이 찿아오셨습니다. 그 장소는 야곱의 운명을 바꾸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낮에 찿아 온 것이 아니라, 의식이 또렷하게 살아있어 항상 사기를 칠, 그리고 도망갈 준비가 되어있는 낮이 아니라, 야곱의 의식이 멈추어버린 밤에 꿈을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꼼수의 달인 야곱이 하나님의 방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깨어있으면서 계속 쫓기며 불안해 하고, 병적으로 부끄러운 과거에 사로잡혀 두려워 떠는 세상이 아니라, 꿈을 통해 야곱을 만나주어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야곱이 욕심을 내며 아버지와 형, 가족을 희롱하며 거짓을 부려, 결국 가정이 파탄이 난 방법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의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야곱은 땅의 사람으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방법만 알았지 하늘의 열린 문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야곱은 꿈 속에서 땅으로부터 하늘로 뻗어있는 층계 위를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며 살리는 것은 땅이 아니고 하늘입니다. 근데 하늘 끝 까지 층계가 놓여있는 것을 의식이 깨어있는 낮이 아니라, 의식세계가 멈춘 밤, 꿈에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과 계단과 천사를 통해 그리고 미처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의식구조를 깨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말씀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천사도, 더군다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은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나의 주님이 성령을 통해 나를 깨우치십니다. 주님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선한 뜻을 따라, 본래의 변함없는 계획을 따라 회복시키시며 심판하십니다. 나의 삶에 찿아오시는 분은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어주는 상징입니다. 하늘은 야곱이 과거에 가졌던 의식을 무너뜨립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심하며 무관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복되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소통이나, 만남 없이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는 소위 자기 스스로 택한 길을 신앙이라는 종교적 행위로 포장하고 신앙의 이름을 빌려 자기 일에 매몰되어 자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기 봉사와 헌신에, 자기 경험, 관계망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깨우고자 우리의 일상 속에 거듭 찿아오지만 나의 의식과 자아가 여전히 살아 있어 하늘의 놀라운 은총을 비껴가는 것은 아닌가? 이 세상의, 땅에 다리를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찿아 와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곱은 아차! 합니다. 내가 몰랐구나. 그동안 자기 의식에 초롱초롱하게 깨어 있어서 자기 힘으로, 자기 지헤로 사는 줄 알고, 그래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하늘의 은혜가 땅과 하늘 사이에 놓인 층계를 따라 내려온다는 것을 못 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13, 14절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은 언약을 넘어 15절에서 별개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아버지 이삭과 같은 평화의 사람과는 무관한 위기에 처한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찿아오시는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첫 째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합니다. 복음의 핵심입니다. 마태복음은 이 말씀, 즉 마1: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 엘이라고 할 것이

                        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 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28장 마지막 28절에서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로 끝을 맺습니다. 둘 째 너를 지켜준다 입니다. 주님이 목자가 되어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 째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합니다. 역시 우리는 땅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땅의 좋은 기운을 흠뻑받고 살아야합니다. 우상으로 가득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유일하게 하나님을 호흡할 수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삶의 전부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에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그나마 포로생활을 이어 갔고, 결국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야곱은 돌 베게를 세워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 하며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약속, 서원이 기억나십니까? 이제는 다 잊어버렸나요? 처음 세례를 받을 때, 처음 예배를 드렸을 때, 처음 복음을 박아들였을 때. 어찌 그 감흥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돌베게를 가져다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 하며 기념을 합니다. 잊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난 이 사건을 자기 삶 속에 계속 유지시키려는 것이고, 그게 신앙이고, 결국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다가 세겜에서 가족이 몰살 당할 처지에 있을 때 가족을 구원한 것은 벧엘로 올라가자 였습니다.

   올 가을에 구역심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기동 1, 2, 3, 4 구역은 심방을 잘 마쳐 감사합니다. 이 번에 함께 빌1:3-10의 말씀을 나누었는데,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과 함께 처음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다고 하면서 그렇게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시작한 분은 각자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간절히 구하는 마음을 주셔서 믿게하고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일로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의 감동을 통해 하십니다. 하나님이 감동주실 때, 예라고 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복된 삶입니다. 자기의 상황이나 일에, 세상의 정보체계에 몰입되어 있으면 이러한 하나님의 감동에 따라 일어나는 생명의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집 떠난 야곱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삶이 풍성해 지기 원한다고 합니다. 선함은 선하신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니 위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통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빌11:9을 보면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고 합니다. 정보의 바다,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정보의 시대에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선한 뜻을 따라 삶이 운행되기를 바랍니다. 모이기에 힘쓰며, 말씀을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이 소중한 때입니다. 야곱은 땅에서 하늘에 닿아있는 층계를 보았습니다. 한글 개혁은 사다리라 하였는데, 현대 영어 번역이나, 공동번역, 우리 새번역은 층계로 되어있습니다. 아마도 추측컨대 야곱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적 제의가 드려졌던 지글랏을 본 것이 아닌가 라는 학술적 연구가 있는데 공감을 합니다. 하여간 야곱은 그 자리에 벧엘, 하나님의 집을 세웠습니다. 야곱은 그 웅대한 흙으로 세워진 탑의 층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천사를 보았고,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땅에 두 다리를 붙이고 살지만, 우리의 영이 하늘에 닿아있지 않으면 세상에 몰입되어 세속가치의 블랙홀에 함몰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우리를 하늘에 닿게하는 계단입니다. 우리를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열린 미래로 나아가게 합니다. 십자가는 사죄의 은총과 부활의 생명을 보게 합니다.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창조의 선한 뜻을 세워나가는 교회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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