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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진행형(차근차근 천천히/성령강림후제10주,2019년 8월18)

하늘기차 | 2019.08.18 14:39 | 조회 820


                구원은 진행형(차근차근 천천히)

2019818(성령강림후제10)                                                                    3:4-14

   사도 바울에게 자기의 모든 것이었던 율법을 떨쳐내는 일이 자기 개인에게 한정되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제3 세계 영혼구원을 위한 선교여행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유대주의, 율법주의의 훼방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빌립보교회를 흔들어 놓는 율법주의자들에대해 개들”, “악한 일꾼들이라는 거친 말들을 쏟아내면서, 우리는 이미 육은 죽었고, 영으로 살았으니, 육에 매인 유대주의, 율법주의자들 보다 더 할례 받은 사람들, 즉 마음의 할례 받은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육신으로 따지면 내가 어떤 율법주의자들 보다 못할 것이 없으니 8일 만에 할례 받은자 라고 합니다. 이것은 날 때부터 순수 혈통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이며, 베냐민 지파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도 이스마엘, 그리고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들이 있지만 자기는, 즉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야곱의 후손이요, 그 중에 초대왕 사울의 계열인 베냐민의 혈통을 타고 났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으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 율법, 예배와 약속들이 있으며, 그 중에 성골이라 할 수 있는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그 어느 율법주의자 보다 더 완벽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헬라어를 쓰는 히브리인이 아니라는 자기의 육적인 정체를 밝힙니다.

   그러나 7절에서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함으로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실제 오늘 말씀 13절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절에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바울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계속 변하고 진화합니다. 어느 정도 까지 인가 하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은, 다 이룬것이 아니라, 11절입니다.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목표 점에 다다른 것도 아니고, 예수께서 나를 사로 잡은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는 진행형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주의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엘리트의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선택입니다. 아니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는 구하려고 해도, 찿으려고 해도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도 얻을 수 없는 구원의 신비입니다. 그것은 인간 예수하나님 그리스도가 하나이며, 죽음의 십자가생명의 부활과 하나인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서는 인식할 수도, 구할 수도, 합리적인 논거로도, 어떠한 철학과 예술과 인류가 만든 모든 문명의 합을 통해서도 털 끝도 건드릴 수도 없는 칼 바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접촉점도 없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은혜요, 신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택이 아니라, 오늘 말씀 12절에 나를 사로잡으셨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9절에서 자기를 세상의 가치로부터 구별지은, 스스로를 사로잡은 이 신비로움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라고 하며, 복음 속에 나타나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합니다. 그 능력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가던 도중에 주님께서 바울을 만나주신 것에서 비롯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어떤 노력이나, 인지능력이 아니라, 직접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폐쇄적인 히브리인을 만나주셔서, 유대주의에서 끌어내어 구해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대신 얻은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은 꼭 하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요? 그래서 얻은 것은요? 어떻게 해서든 얻고 누리고 편해지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이미 자본화되어서 말입니다. 하여간, 그런데 그 논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틀립니다. 8절에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인정을 받았다가 아니라, 받으려 한다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었다가 아니라 얻으려 한다 입니다. 9절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어,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고난에 동참하여, 죽으심을 본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다는 소망을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1;5에서 골로새교회가 믿음과 사랑으로 소문난 것을 익히 알고 있다고 하면서 골로새 교회의 믿음과 사랑은 하늘에 쌓아 둔 소망에 근거한다고 증언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무너진 것은 가나안을 바라는 소망이 광야길에서의 난제들, 이민족과의 싸움, 질병, 양식, , 우상, 특히 가는 길에대한 불만들로 덮히고,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현재진형형입니다. 나의 삶에대한 신뢰와 사랑은 계속 진행되는 소망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사도 바울의 현재진행형 바램이야말로(인정 받으려 하며,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 하며, 바라며, 부활에 이르고 싶으며, 좇아가고 있으며, 달려가고 있는)그 험난한 로마에 그리스도의 죄수로 끌려가는 상황에 이르기 까지 오히려 기뻐하라며 하나님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유난히 빌립보교회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를 받았다 하지 않고 받으려 한다고 현재진행형으로 증언을 한 것은, 당시 빌립보교회에는 극단적인 완전주의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처음 받은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완전한 구원으로 보고 더 이상, 회개도, 그 이상의 어떤 것도 필요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몇 년, 몇 월, 몇 일 구원 받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면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는, 한 때 소위 구원파라고 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어거지로 통하던 때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구원은 인간 쪽에서 인정하고, 인지하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며, 그래서 그 받은 은혜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일상 생활 속에서 맑은 샘 처럼 솟아나, 날 마다 새로워지고 새 힘을 얻으며 위로와 평화를 누리는 삶이 바로 구원의 삶이며, 이 구원의 삶은 이미 얻었다고 할 수 없고, 다다른 것도 아니며, 이 세상에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말씀에 사로잡혀 한 걸음씩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도 바울이 롬1:16, 17에서 말씀하였듯이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일어납니다. 통상 다른 번역을 보면 처음부터 끝 까지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변화와 진보와 진화는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의 영광에 까지 닿아 있으며, 그분의 고난,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의 죽음을 본 받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자 하는 그 순전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자유, 평화, 감사, 생명, 치유, 회복의 파노라마입니다.

   이런 삶에 익숙해져야합니다, 익숙하다는 말을 하니 훈련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저는 훈련이라는 말이 참 싫습니다. 영적 훈련은 인위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훈련 프로그램으로는 택도 없고, 단지 지금 사도 바울이 오늘 말씀을 통해 얻은 것도, 다다른 것도, 아니지만 주님이 나를 붙잡았으니, 그 붙잡음을 붙들려고 쫓아가는데, 붙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갈 따름이라고 합니다. 기왕에 여기서 개신교가 유난히 잘 놓치는 것 중에 하나는 구원은 나의 의가 아니고, 하나님이 인정을 해 주는 것이라는 참 신비의 은혜를 본 훼퍼 목사의 말씀처럼 값 싼 은혜로 전락을 시켜 이웃에대한 배려, 섬김없이, 자연 생태계, 끝 없는 우주에대해 단지 누려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욕망으로 가득체우는 생명질서모두를 파멸케 하는 어리석음, 역사의 의식 없이 자기 혼자, 자기 집단 만 잘 믿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주여! 주여! 만 부르짖다가 하나님이 베푼 천국 잔치에서 쫓겨나는 누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교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우리함께같이 교회입니다. 교회 이름을 운동의 차원에서 우리함께같이라고 하면 지금 이 시대에 맞겠다 싶습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어제 저녁 모깃불 영화 인생 후르츠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90세된 할아버지, 86세된 할머니가 노년을 살아가는데 일에 과욕이 없습니다. 그래서 편합니다. 할아버지는 젊을 때 요트 선수이기도 하였고, 평생 건축설계사인데, 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된 일본재건을 위해 앞장서는 건축회사에 몸담고, 그 많은 산들을 다 깎아 없애고, 골짜기를 메워 수십 수 백의 아파트 단지를 건립하는데,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고자 다시 자연을 회복하자는 정신으로 도시 한 편에 할머니와 함께 300평 땅을 마련하여 과수 50, 채소 70종의 농사를 짓습니다. 할머니는 멋진 요리사입니다. 할아버지는 딸이 어릴적에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 집을 사달라고 할 때, 손수 나무로 장난감 집을 미니어쳐의 공간으로 3층을 살림살이 그대로를 빼곡히 정교하게 만들어 줍니다. 반복적이지만 늘 그날의 새로움을 호흡하며, 인지하며 생활하는 모습에서 아! 저러한 삶이 익명의 크리스찬의 삶이라는 것을 느껴봅니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숭고한 삶을 바람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느날 하루 일과,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 자신의 90 일생을 마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다른 죽음인데, 자연으로부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닫는 자연은총, 녹색은총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하는데, 이 두 분은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만끽하며 현재진행합니다. 사도 바울이 2장에서 율법 없이 사는 삶에대해 이야기하는 바로 그런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 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 만나고 진행형의 삶으로 바뀌었듯이 우리도 교조적, 교리적인 폐쇄적인 집단화된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자본화된 시대에 영적 분별을 가지고 세상을, 역사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천천히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아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고, 얻고 누리고 나누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진행하며 살아가는 함께같이교회 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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