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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말고 자비, 다윗의 신앙(성령강림후제5주, 2019년 7월14일)

하늘기차 | 2019.07.14 14:00 | 조회 126


                심판 말고 자비, 다윗의 신앙

2019714(성령강림후제5)                                              삼상17:24-37;6:36-42

    오늘 누가복음 말씀은 부담스럽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네 눈의 들보를 보아라, 눈 먼 사람이 눈 뜬 사람을 인도하면 모두 자멸한다는 말씀 앞에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마치 밤 잠 설치듯이 말씀 앞에서 뒤치닥거리다가 우리 하나님이 자비로우니 너희도 자비로우라는 맨 앞의 말씀에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한글개역 마5:48은 온전하다고 합니다. 주님의 긍휼, 불쌍히 여김, 배려심이 우리를 세상 속에 온전하게 합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하여지면서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윤리로 가면 부담이 가중되는데, 이야기로 가면 영적 감동이 펼쳐집니다. 오늘 구약 말씀은 그래서 다윗이 성서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골리앗은 넘지 못 할 큰 산이었습니다. 감히 어느 누구도 나가서 대적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단기필마로 블레셋 진영을 초토화 시켰던 기드온도 보이질 안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먹거리를 가지고 전쟁터에 왔다가 하나님이 모욕당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군인들에게 자초지종을 반복하여 묻고 듣습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왕에게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며 자기가 저 블레셋 사람을 대적하겠다고 합니다. 그냥 터무니없는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지만 다윗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다윗은 양을 칠 때 하나님이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기를 구해준 기억이 생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 안에 머물러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은 고기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후1:3, 4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 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

                          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 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

                          할 수 있습니다이미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 안에 머물러 위로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자기만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위로가 넘쳐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 됩니다. ‘온갖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다가올 때 마다 하나님은 시의적절하게 위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온갖 위로를 주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살 희망 마저 잃어 죽음을 선고 받은 몸이라고 느꼈을 정도인데, 이것은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자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다윗 역시 자비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왕에게 사기를 잃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이 말은 다윗이 아니라 사울이 전투에 임하는 부하 장수에게 위로의 말로 해 주어야하는데, 거꾸로 다윗이 사울왕에게 합니다. 아니 이것은 다윗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울왕에게서 떠났습니다. 한 편 다윗은 차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생태입니다. 사울왕은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겨릿소를 잡아 각을 떠서 돌리며 용기를 북돋우던 모습은 사라지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아버리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사무엘이 블레셋과 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전쟁에 나서자 하였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길갈로 내려와서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블레셋과 전투를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기 생각, 자기우상과의 싸움입니다. 생각은 단순히 자기 생각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의 종합체입니다. 생각이 합리적이라는 논리로 자꾸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서 밖으로 밀쳐냅니다. 결국 그럴듯 하지만 무기력한 생각에 갖혀버려 자비로운 하나님의 위로를 잃어버립니다. 광야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면 특히나 성도들에게 그 삶은 삭막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받은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위로와 가나안땅과는 별 개입니다. 이스라엘은 위로를 받으면서도 가나안땅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여간 사울은 거듭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자기 생각 안에 갖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전리품을 모두 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부하 장수들이 반기를 들까 병사들이 전리품을 챙기는 것을 묵인하는 모습에서 이미 사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떠난지 오래였고, 다윗은 지금 전쟁터에 나오기 전에 이미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세움을 받은 상태였는데, 그 위로의 모습이 다윗의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면 사울이 악한 영에 시달릴 때, 수금을 잘 타는 다윗을 통해 영적인 짓눌림에서 벗어나기도 하던 때였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위로, 평화가 넘치며, 그 위로가 사울에게도 넘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넘치는 위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이 어떻게 자비를 베푸는지를 몸으로 체휼하며 살아가는 목동이었습니다. 형 엘리압이 말하듯이 다윗이 몇 마리 안되는 양을 키우며 한가로이 지내는 듯 하지만, 다윗은 한가로이 몇 마리 양에게 풀 먹이는 목동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책임있게 먹이고 지키며 곰과 사자가 발톱으로 양을 웅켜잡고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 뜯으려 할 때, 목숨걸고 사자의 입 속에서 양을 끌어낸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가믐에 콩 나듯이가 아닙니다. 늘 항상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쟁터에 오게 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이미 사울의 총애를 받아 근거리에서 사울에게 찬양으로 영적인 회복을 불러일으키며, 사울왕의 무기를 들고 다녔으니, 지금으로 치면 수석비서가 아니었겠나, 그래서 마음 만 먹으면 그 세도를 부릴 수 있는 자리였지만 다윗은 양치는 일을 놓아버릴 수도 있었을텐데, 겸손하게 아버지의 양들을 돌보며 목동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다윗은 모처럼 형들도 보고 싶고 아직은 어리지만 어떻게 블레셋과 대적하는지 궁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던 중에 큰 형 엘리압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왔겠습니까? 아마 다른 형들의 안부도 묻고, 아버지의 염려도 전달하고 회포를 풀고자 했는데, 엘리압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면박하고 책망합니다. 다윗이 한 말 그대로 이것은 책망할 거리가 안됩니다. 묻는 것이 무슨 잘 못이 있겠습니까? 심지가 약하면 아마 금방 낙심하여 전쟁에대한 관심을 끊었을텐데, 다윗은 다시 병사들에게 현 상황에대해 자초지종을 꼬치꼬치 묻습니다. 이것은 단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전황을 묻는 것이고, 자기도 참여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말 끝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느끼게 되는데, 어린 다윗이 전장터에서 당당하게 전황을 묻는 모습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에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읽혀집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런데 형 엘리압이 책망을 하니 거세게 항의를 한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다윗이 형 하고 한 바탕 할 만 한데,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는 겁니까? 물어 보지도 못합니까?” 그런데 거기 까지입니다. 다윗은 오늘 말씀에 몸을 돌렸다고 합니다. 흐 흐 시치미 딱 떼고 형이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젭싸게 돌아서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지혜롭게 느껴집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같은 말로 물어 보는 것을 보면 다윗의 마음은 확고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어떻게 변함없이 신실하게 동행해 주시는지를 아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입니다. 다윗은 형 엘리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과 싸웁니다. 형이 무어라고 핀잔을 주었나요? “고집세고, 건방지다고 합니다. 다윗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신심을 가지고 묻고 있는 중인데 형이 자기를 무시합니다.

   여기서 한 바탕 형과 붙어버리면 누가 이득을 보나요? 누가 손해를 보나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워야할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엘리압은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나를 무시하고, 이해해 주지도 않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엘리압과 피를 흘리며 싸운다면, 골리앗과 싸움다운 싸움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승리를 골리앗에게 상납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형에게서 몸을 살짝 돌립니다. 이것은 다윗의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서 온 것입니다. 모든 판단, 평가, 시비, 논리를 뒤로하고 몸을 돌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찿아 나섭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인륜을 어기면서 까지 왕권을 탈취하려 하였지만, 그래도 압살롬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당하자. 다윗이 압살롬아! 압살롬아! 하며 통곡을 합니다. 사울왕에게 그렇게 수모를 당하며 정적으로 피신 당하는 과정에서 사울을 2번이나 죽일 기회가 다가오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립니다.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부하들이 적진을 뚫고 구해 온 물을 마시지 않는 부하 사랑이 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알고 미련없이 건축을 다 준비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줍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다윗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고, 오늘 말씀처럼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하신 말씀의 은혜가 다윗의 소소한 일상 속에 체휼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에서부터, 우리의 인식 체계 저 넘어에서 우리 안에 성큼 다가와 나를 자유롭게 하며 평화롭게하며 위로하고 새롭게 하며, 새 힘 주시는 자비를 맛 보는 삶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 전과 다른 삶이 펼쳐집니다. 그것은 심판과 평가와 편견과 혐오가 아니라 용서의 삶이며, 관용의 삶이고, 이해하며, 품어주며, 배려하는 삶입니다. 골리앗을 향해 분노하는 공의로운 삶이며, 고통하는 약자에대한 관심과 배려의 삶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인류를 향한 자비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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