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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물:기도(부활절여섯째주일, 2019년 5월26일)

하늘기차 | 2019.05.26 14:28 | 조회 88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물:기도

2019526(부활절여섯째주일)                                                                    18:19-24, 33

  요한 복음은 7개의 표징을 11장에서 나사로의 죽었다 살아남으로 마무리 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12장에서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애도합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14, 15장의 포도나무 이야기, 그리고 16장 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 구구절절히 애뜻합니다. 그리고 17장에서 드디어 영광과 승리의 십자가 기도를 드립니다. 13 1절 에서는 발을 씻기 전에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 까지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 사랑을 이미 10장에서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기꺼이 버리는 참 선한 목자, 양의 문의 이야기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발씻음은 지난 주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단순히 봉사를 가르치려는 모범 행위가 아니라, 나귀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감으로 스스로를 평화의 왕으로 보이신 표징과 같이 종말론적인 사랑의 포퍼먼스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13:34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사도는 사랑의 사도인데, 예수님이 제자들과 세상을 향해 눈물 흘리시며 보이신 그 사랑에 제자들 중에 가장 많은 감화, 감동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한은 시종일관 생명에대한 연민과 사랑를 보입니다.

   그런데 왜 종말론적인 사랑인가 하면, 통상 아래 사람이 위의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우리의 윤리요 도덕인데, 예수님은 그 반대로 스승이 제자의 발을 닦습니다. 이 발씻기가 눅12:37에서 마지막 때에 주인이 그렇게 종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마지막 날, 악을 선으로 회복시킬 그 날, 모든 세상의 가치들이 0이 되는 그 날(저는 그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기대합니다)에 주님이 종들에게 보여주시는 행동입니다. 역전입니다.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 땅에서 너무 아웅다웅 살지말고 즐기면서 넉넉하게 살기 바랍니다. 모든 판단은 주님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판단과 평가 중에 하나님의 선한 심판의 자리를 항상 비워두어야 합니다. 이 땅에 살며 우리들을 웃게하고, 울게했던 일들의 가치가 0이 됩니다. 예수님의 발씻기는 모든 세상의 논리와 합리, 인간의 경험에서부터 오는 담론들을 뛰어넘는, 거대 담론에 묶여 꼼짝달싹을 못하는, 우리가 미쳐 그 기저를 이루고 있는데도 돌아보지 않은, 생명의 담론이 펼쳐지는, 가치가 0인 세계를 열어 놓는 퍼포먼스였다고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물론 이 포퍼먼스는 세상을 뒤짚는 사건이기는 하나 기존의 윤리와 도덕을 파괴하고 무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혁명이됩니다. 그러면 또 다른 도덕과 윤리와 가치를 만들어야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사랑의 포퍼먼스, 종말의 가치를 드러내는 사랑입니다. 누가복음이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앞의 말씀입니다.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이미 오셔서 그렇게 가치가 0인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데 아직도 옛것에 매여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한 닫혀있는 삶을 살지 말라고 손수 발을 닦으신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하고,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하며 우물가의 여인을 신부로 초청한 것은 윤리, 제도, 눈에 보이는 것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환, 세상의 가치를 넘어선 사랑, 온 피조의 세계가 나는 나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종말의 행위로서, 사랑이 아니면 이 가치 0의 세계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종말의 가치0의 나라를 위해서는 잠시 제자들을 볼 수 없으며, 그러나 곧 보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과 잠시 떠나 있어야 하며, 또한 아버지께로 가서 제자들을 위한 처소를 마련하러 갔다가 와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제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발씻음을 거부했던 베드로는 이제는 또 예수님에게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하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 때문에 베드로는 또 한 번 쓴잔을 마십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지만,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씁쓸한 이야기만 돌아옵니다. 도마는 주께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그 길을 어찌 알 수가 있느냐고 답답해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던 때의 정황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고, 떨려 불안해합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여정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요한복음을 기록하던 때의 요한교회공동체의 실제 상황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미 선한 목자요, 양의문이요, 빛이요, 빵이라 하셨는데, 이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합니다. 이것은 나는 나에서 오는 확신인데, 그렇다면 이 확신은 어디에서 올까요? 10장에서 예수님이 성전봉헌절에 솔로몬 주랑을 거닐 때 사람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그리스도이거든 속시원히 말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말하였고, 행하였고, 보았건만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요한 복음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을 합니다. 10:30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예수님의 정체이며, 지향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할 때,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는데, 스스로를 선한 목자라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여서 길이며, ‘나는 나여서 진리이며, ‘나는 나여서 생명입니다. 그리고 공관 복음에서 말씀하셨듯이, 너는 빛과 소금, 그러니까 나는 나인 내가 빛입니다. 소금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나와 너도 하나님처럼 입니다.

    이 번주 주간지 시사인 주제가 당신이 노무현입니다인데 표지가 황금색 단색으로 노무현 특집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나는 나라는 의미를 언 듯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었던 바램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사람들 역시 노무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고 노무현이 노무현의 정신으로 우리들 속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에큐메니안이라는 온라인 기독교매체가 있습니다. 꽤 좋은 글들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오른 쪽 맨 위에 코너가 하나 있는데, 그 제목이 나도 임보라입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성소수자에대하여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합한다 아니다를 떠나 혐오와 편견, 더 나아가 폭력인 것에대해 적어도 이것은 아니라고 하며 발언하고 행동한 임보라 목사님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함께하자고 내 세운 기치입니다. 이러한 슬로건은 요한 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스스로에대해 나는 나라고 하신 자기 정체성에대한 선언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요한공동체가 격고 있는 고통은 세상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며 너희가 나를 따르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러나 근심과 고통은 마치 여자가 해산하는 것과 같아 생명의 탄생으로 그 진통은 사라지며,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다 줄 것이라고 합니다. 14장에서 15장을 거쳐 16장은 왜 아버지께로 가야만 하는지에대해 거듭 말씀하는데, 가지 않으면 성령께서 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다 다른 차원의 하나님 나라운동의 깊고, 넓고, 높은 더 큰 일을 드러내기 위해 가셔야만 하는데, 제자들은 이 땅에 남아 있어야하는 정황이어서 구구절절히 제자들을 향하여 신신당부에 당부를 더 합니다. 염려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평화를 주겠다. 그리고 나를 믿는 사람은 나 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 합니다.

   축구를 예를 들어봅니다. 감독이 후반전에 처음 게임을 뛰는 만년후보 선수에게 넌 할 수 있어. 아자! 우리는 이겼어! 평소대로만 해! 넌 골을 넣을 수 있어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는데, 축구로 비유하면 정들었던 팀을 떠나는 감독이 새로 부임하는 감독에대해 소개합니다. “아무걱정 마, 이제 내 대신 나 보다 더 훌륭한 감독이 올거야, 이 분은 지혜로워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할 거야. 나 보다 더 큰 분이라니까?”하는 것과 같습니다. 14:3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서 너희들이 거할 처소를 마련하고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하는데,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룬 히딩크 감독이 네델란드로 돌아가서 박지성, 홍영표 등의 선수들을 불러 자기 팀에서 뛰게 한 것 기억나지요. 왜 그렇게 했을까요?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 홍영표 선수를 아니 당시 대표선수들을, 스스로 뽑은 모두를 사랑했거든요. 지금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그렇게 선수 하나 하나를 사랑하고 품어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전부터 그랬지 창조주 아버지하구 나하구 하나라고, 어떻게 하나인 줄 알아? 이야기했잖아 11번이나 거듭 강조했잖아 머물러 있으라고,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있어서 하나인 것은 오직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것 외에는 없어, 너희도 나처럼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과 하나이지 그렇지 않으면 축구하다 보면 종종 자살골 넣는 선수가 있어. 자살골 넣는다니까. 가룟 유다가 자기 욕심 붙잡고 딴 짓하다가 결국 자살골 넣었어, 그런면에서 베드로는 팀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역전 골 넣은 거지 패널티킥 실축하고 패스 미스로 한 골 먹고 미안해가지고 후반전에 교체당할까, 감독 눈치 슬슬 보았는데, 감독은 끝 까지 믿고 선수교체하지 않은 겁니다. 막판 종료 10초전에 감독의 믿음에 보답을 해서 멋진 역전 골을 넣습니다.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33절에서

“. . .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합니다. “내가 뭐래 이긴다구 했잖아!”라고 감독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 구하라고 하는데, 저는 이 본문 말씀이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먹구싶어. 뭐 든지 다 말해, 떡복기, 아이스 크림, ? 어떤 장난감 갖고 싶어, 무슨 영화 볼래. 내가 다 사주고, 시켜주고 보여줄게 하는 것 같습니다.”다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잠간 어디 갔다 오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너무 깁니다. 엄마가 아이들을 달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가면서 이 땅에 남을 제자들이 감당해야할 핍박, 고통, 환난을 보며 애뜻해 하면서, 꼭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합니다. “내가 가게에 이야기 다 해 놓았으니까? 내 이름으로 먹고 싶은 거, 가지고 싶은 것, 무엇이든 다 가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요?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기도로부터 받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모릅니다. 그 권면이 구구절절합니다.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기도하라 합니다. 이 기쁨은 열매의 기쁨입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겉 만 신앙이지 말고, 기도의 신앙인으로 서기 바랍니다. 기도의 열매를 따서 먹어야,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주님이 기도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마치고 17장에서 영광과 환희의 기도로 구구절절한 권면을 마감하시고 이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십니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혼자도 좋지만 함께 모여 기도하는 교회가 됩시다. 기도의 열매가 차고 넘쳐 나누는 성도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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