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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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

하늘기차 | 2019.04.28 14:27 | 조회 69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

2019427(부활절 두째주일)                                         11:17-27;고전15:38-42

   어제 철원에 잘 다녀왔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는 것은 교회의 활동이 자선사업이 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활동은 자선사업에 머물고 맙니다. 이웃사랑을 한다며 역사를 모른다면 허구요, 공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신앙에 예언자적인 관점이 사라지면 게토가 됩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게토가 되면 풍선처럼 위태위태 하게 부풀어 오르다가 뻥! 하고 한 방에 터져버립니다. 계속 가로막는 닮을 헐어야합니다. 다문화, 성소수, 이데올로기, 종교적 담 등, 담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헐려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예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몸으로 헐었다고 하며 바울 스스로 당시 가장 첨예하였던 가치 체계를 헐어버렸습니다. 그게 바로 유대교를 넘어선 교회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이를 즈음 누이 동생 마르다가 와서 오빠가 죽었다고 하며 아쉬워하자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 합니다. 마르다는 마지막날 부활 때에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죽음 이 후의 영생을 이야기 한 것인데, 여기서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 그리고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처럼 순간적으로 영적인 대화로 넘어갑니다. 이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묻습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다는 것은 마르다에게 마지막 날의 부활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죽은 자로 살 것인가, 산 자로 살 것인가를 물은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질문이며, 산 자로 살려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영적이라 함은 하나님 닮음이고, 그 하나님 닮음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하나님 닮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나를 의미합니다. 그러려면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입니다. 통상 영생과는 개념이 틀립니다. 몇 억, 몇 겁의 시간이라는 양적 개념의 시간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요17:3은 영생을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

                            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는 것이 영생이라 하는데, 안다, 본다, 믿는다, 깨닫는다는 말은 큰 틀에서는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생을 안다, 본다, 믿는다가 아니라 영생을 산다, 아니 영생이 그 삶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어떻게 육적인 것을 벗고 드러나느냐 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이미 예수님처럼, 그 안에 부활을 품고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모든 피조물 속에는 하나님을 닮은 영광이 이미 있습니다.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근데 어떻게 부활인가 하면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부활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음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부터입니다. 이 죽음을 영적으로 풀어본다면 다시 태어남입니다. 죽지 않으면 다시 태어날 수 없고,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는데,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영생에 이르는 초청에 응하지 못합니다. 알지도, 보지도, 믿지도 못한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부활을 종교 안에 가두어, 죽은 후에 부활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자본가치와 시스템이 부활을 짓눌러도 다시 태어난 사람들,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는 문자적, 근본적 신앙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에의해 부활의 사건은 역사 속에, 우주 속에 끊임없이 주님이 오셔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게 회복할 때 까지 반복될 것이며, 그 부활의 반복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 까지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나라를 세우며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지난 22일 월요일 고기리에 살고 있는 다연 아빠인 종국씨(다연 엄마는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의 자원활동가입니다)1t트럭을 빌려서 아침 일찍 장기혁 집사님과 안산 꽃빛 공원에 위치한 4.16 목공방으로 향했습니다. 작년 4.16 목공소가 협동조합으로 거듭나, 이제 525일 공식적인 개소식을 오픈하기 위해 41.6재단의 도움을 받아 초청장, 웹자보, 팜플렛, 브러쉬어, 카탈로그, 블러그, 그리고 전시실 내부장식 등을 준비중인데, 그 일환으로 아빠들이 몇 달 동안 열심히 만든 식탁, 책장, 화장대 그리고 도마, 컵 받침 같은 공예 소품들을 사진 찍기위해 공방의 1t과 우리가 동네에서 빌린 1t 두 대에 가득체워 홍대에 위치한 바라봄이라는 사진관으로 향했습니다.

   이 번에 사진을 찍으면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안산시 자치행정과의 오병훈 팀장으로부터 바라봄사진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22일에는 스튜디오에 와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51일이나 3일에는 사진작가들이 목공소에 와서 찍을 수 있지만, 목공소에서 찍으면 피사체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지 아빠한테 연락을 했어요. 미지 아빠 어떻게 하지 22일에 오라구 하는데, 홍대 앞이라 좀 멀고, 가려면 지금 우리 1t 하나 가지구는 안되고 두 대가 필요한데, 한 대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마련해 볼 수는 있어, 근데 그 가구들을 다 실어서 가서 내리고 다시 실어서 가지고 오면 망가지고 할텐데 어떻게 할까 물었더니, 미지 아빠도 설왕설래 하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일은 되게 해야 일이야했지요. 그러니까 그럼 가지요 해서 홍대 앞의 바라봄사진 관으로 향했습니다.

  조명 빛 아래에 그동안 아빠들이 열심히 만든 가구들, 소품들을 하나 하나 씩 올려놓았다, 내렸다 하며 느 낀 것은 공방과 사무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을 때에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도, 그 존재감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목공이 취미에서 일로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아마추어 생각에 젖어있어서 자신들이 만든 것에대한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구들이 조명 아래에 자리를 딱 잡고 빛이 내리고 카메라가 이리 저리 각도를 잡아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자, 이건 뭐 정말 전혀 다른 모습을 본 것입니다. 저도 참 신기했습니다.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카메라 셔터가 찰칵찰칵 소리를 내면 바로 바로 모니터에 그 사진이 뜨는데, 보이지 않던 무늬, , 형태, 규격이 조명의 밝기를 조정하면서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느꼈어요. 아 이게 부활이구나. 살아나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살아났어요. 부활이 무언지 보다 잘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연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조명이, 빛이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준 것입니다. 부활입니다.

   오늘 말씀 고전 15장 부활장 41절을 보면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각 피조물은 그 하나 하나 마다 하나님을 닮아서 그 호흡과 영광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추어져있어 못 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도 본래의 주님의 영광이 십자가의 죽음, 그러니까 이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부활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육체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 만 봅니다. 육체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죽은 나사로의 다시 살아남은 부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죽거든요.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이요, 생명인데, 이 영생은 이미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부활을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관 이름이 참 재미있어요 바라봄이에요. 왜 봄이냐구 하니까 카메라 렌즈와 관련해 VOM(Viewfinder Of Mind의 준말이에요. 소외된 분들의 소중한 순간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는 뜻)용어도 되고 본다는 뜻이 있어 이름을 이쁘게 지었다고 합니다. 이름이 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이 사진관이 비영리단체라는데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지금 9년이 되었고, 직원이 자기를 포함해서 5명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의 시작은 장애인들을 찍어주는 사진관으로 시작을 해서 장애인들이 지하를 내려 올 수 있도록 휠체어 슬로프를 마련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가구들을 실코 올 때 걱정했던 것은 지하실이면 분명히 내려갈 때 계단이 한 번 꺽일텐데, 그러면 가구들의 방향을 틀 수 있을까, 문은 통과하기에 좁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찿아갔는데, 주차장이 지하에 있어서 스튜디오로 바로 통하는 계단을 이용해서 가구들을 잘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꿈 만 같았고, 정말 소중한 것을 느낀 것은 이게 부활이라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단지 조명 아래 놓인 가구 만이 부활인 것이 아니라, 처음 사진관을 소개해주기 시작해서 가구를 옮기기 위한 논의, 선택, 두대의 1t 트럭, 장기혁집사님을 포함해서 4명의 참여자, 사진 작가들, 가구가 조명 아래 놓이고 사진이 찰칵찰칵 찍히는 전체 과정이 부활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주변을 돌아보면 보지 못해서 그렇지 부활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키우는 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은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각자의 존재감이 있고, 영광이 있어요. 하나님이 창조한 해, , 별 등 피조물도 각 자 스스로의 영광과 존재감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아이들이야 더 할 나위 없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자녀의 영광이 잘 드러내도록, 마치 카메라가 셔터를 찰칵찰칵 누르면 모니터에 그 선명한 감추어졌던 것이 드러나듯이, 즉 다시 살아나듯이, 그러니까 부활이도록 찰칵찰칵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하구 다투지 말구요,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신뢰 속에서 아이들을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 놓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 안에 있는 것이 다시 살아납니다. 부활은 카메라가 찰칵찰캌 하듯이 아이에게 감추어진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조명의 밝은 빛 아래 가구가 놓여지듯이 부활의 빛, 바로 십자가의 빛에 우리가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본래 이 땅에 보내신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게 부활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홍택이, 청둥오리, 개구리, 진달래, 바람꽃의 영광, 등 온갖 조화로운 영광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서 부활을 살기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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