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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사람 : 집사 빌립(성령강림후제6주일, 2018년 7월 8일)

하늘기차 | 2018.07.08 14:53 | 조회 1214


                    흩어지는 사람 : 집사 빌립

 

201878(성령강림후제6주일)                                                              8:4-8;26-31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나가면서 숫자가 늘자 성령과 지혜가 풍성한 사람 7곱을 집사로 세우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빌립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체포되어 순교를 당하면서, 사도들 외에는 모두 흩어지는데 8:4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흩어지는 사람이 신약에서는 초대교회가 태동이되면서 언급이됩니다. 중요한 영적 흐름입니다. 이 때 빌립은 사도들 조차 금기시하던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행하는 표징을 듣고 보면서, 그가 하는 말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는데, 그 이유로 귀신이 쫓겨나가고,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장애인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8절에 그래서 그 성에 큰 기쁨이 넘쳤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빌립에게 천사가 찿아 와 예루살렘에서 가자지구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를 거쳐 북쪽으로 전도여행을 계획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천사가 남쪽으로 그것도 광야로 가라합니다. 공동 번역은 그 길은 인적이 없는 길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전도자에게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그래서 성령의 내적 감동에 익숙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이디오피아의 경제장관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사도행전의 전도의 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하니 3천 명이 회개하였다는 흐름에서 한 사람의 전도를 위해 성령께서 빌립에게 그것도 사람이 없는 광야길로 보내신 것입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 그 바뀜의 징후를 읽을 줄 알아야합니다.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빌립 시대뿐아니라 지금도 평신도의 역활이 귀합니다. 각 직장, 가정, 지역에서의 소통과 나눔, 파괴되는 자연 생태계 회복, 정의와 평화, 민주화, 남과 북의 통일, 무너진 공교육의 회복, 구제,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리, 등 오직 물질 가치 하나뿐인 이 세상의 풍조 속에 참 생명의 가치를 살아내는 삶이야말로 오늘 이 시대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지시를 따라 그 사람의 마차로 다가 갔습니다.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이디오피아의 장관에게 당신이 읽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빌립은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의 의미를 묻고, 실천하는 성도로서, 통상 유대교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 상에서 벗어났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이요, 믿음입니다. 53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은 예수가 이 땅에 오지 않았으면, 해석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내시는 빌립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이 예언자가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빌립은 전도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하였습니다. 유대교의 절기를 지키러 온 이방인에게 그 어린양이 바로 우릴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주님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러자 이디오피아 장관은 죄를 회개하고 물로 세례를 받고 유대교에서 복된 말씀의 기독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본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뿐만아니라 세례 요한은 사40:3-5의 말씀을 자기의 신앙고백으로 만들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하는 이사야의 말씀이 세례 요한의 삶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인은 적어도 말씀을 자기화 해야 합니다. 말씀이 성육신 해야 합니다. 집사 빌립도 그 시대 속에서 말씀을 깨우친 평신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깨우친 말씀을 이방인에게 전하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당시 성서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서를 읽지 못했을 때,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모든 독일 사람들이 성서를 자유로 읽을 수 있게하여 성경말씀을 평신도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제는 성서를 평신도가 해석해야합니다. 오늘 지금 이 시대 속에 하나님 말씀이 살아날 수 있도록 이 시대의 생각과 정신으로, 시대적 흐름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평신도 신학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 제직회에서 제주도의 난민을 돕자는 동의를 얻어 이번 주에 광고하고 다 다음 주에 헌금을 후원금으로 하자고 하였으나, 이런 경우는 신속하게 후원금을 보내야한다는 의견에 따라 지난 2일 저녁에 한국디아코니아 대표인 홍주민 목사님에게 예멘 난민후원금 100만원 입금하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홍주민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100만원은 보잘 것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것 귀하게 여기시며, 우리 역시 약하고 부족한 나그네입니다.

홍주민 목사 : 목사님, 방금 입금확인했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오늘까지 목표한 오백만원이 이제 사십만원남았네요. 이제 우리 예멘친구들에게 내일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뻐 눈물이 납니다. 지난번에도 오백만원 엿새동안 하나님께서 모아주시더니 이번에도 엿새만에 채워주시네요. 살아계신 하나님, 두려운 마음도 생기네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고기교회 성도님들과 목사님의 마음 온전하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디아코노스 주님 함께하소서...

이 내용을 구역장 카톡을 통해 모두 공유하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급히 정해진 것이라 모두 알아야할 것 같아서였는데, 얼마 안있어서

                “목사님 제주도 홍주민목사님 부족한 사십만원 보내드리고 싶어요. 어찌하죠?”하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OOO님 감사합니다.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입금하시면 저에

                게 알려주세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정보를 홍주민 목사님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자가 또 왔습니다.

               “목사님! 주님께서 주시는 맘에 입금했어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라는 말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홍목사님에게

                “OOO님이 40만원 입금하였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홍목사님에게서 바로 답이 왔습니다.

홍주민 목사님 : ...그러지않아도 밤늦게 입금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누구신지도 모르는 ...오늘 헤른후트묵상 말씀처럼 디아코노스 우리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때로는 힘겹지만 기쁨이 솟아나는 길입니다. 제주내려가는 길, 온전히 사랑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안집사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다녀오겠습니다.

      또 다른 성도님은

                 “돕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먼저 움직이시는 하나님. 고기교회 손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추후

                  에도 도울 방법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또 다른 분은 자신이 참여하는 여러 모임에게도 알렸는데, 모두 긍정적으로 호응하였다고 하면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알리는 것, , 기쁜 소식입니다. 집사 빌립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찿아가는 자리에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소위원회활동이 조금식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북향민과의 대화, 통일여행, 촛불교회, 질병으로 고통받는분들을 위한 모임, 텃밭, 영성위원회(CLC50주년 기념특강참여), 성경읽기, 기존의 생태교실, 탈핵, 세월호, 도서관, 그냥..가게, 청년모임, 장애인, 노숙자, , , 등 우리가 바로 예수님이 이 시대에 둘씩 짝지어 보내는 다른 72입니다. 그러나 문어발식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움직입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10:1절 말씀은

                           “다른 일흔[]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평화인데 이 평화는 500년 전 종교 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재세례파가 캐톨릭과 개신교로부터 공격을 당하며 끝없이 쫓기면서도 공동체를 이루며 얻은 지혜가 바로 평화입니다. 전도하러 나가는 72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누이 강조한 것 역시 평화였습니다. 평화의 소식을 받지 않으면 신발의 먼지를 툴툴 털고 돌아 나오라고 합니다. 얼마나 쿨합니까? 복음은 구걸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자율입니다. 저는 이 자율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늘 생각해 보아도 그 근거는 하나님 경외, 하나님이 주신 자존감 정도였는데, 그것은 공동체의 자율과는 조금 달라 늘 궁굼해 했는데, 이 번에 헤른후트 묵상하면서 자율이 이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4:32에 보면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다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여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 사도들 앞에 내어 놓습니다. 공동체의 자율의 바탕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질가치를 아랑곳하지 않는 헌납에서 유래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 자발적인 헌납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것인데, 살펴보니 아주 단순한 복음의 메시지에서부터 옵니다. 성전 미문 곁에 앉아있던 중풍병자를 베드로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자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이 일은 여러분들이 빌라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면서 행3:19에서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하며 외칩니다. 이 외침에 사람들이 그동안의 종교와 삶의 가치에서 돌아 선것입니다. 너무 단순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초기에 보면 세례 요한이 그러했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때도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습니다. 선포된 말씀을 따라 역사하는 성령의 내적 감동이 당시 교회를 움직인 것입니다. 교회는 조직이나, 사람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따릅니다. 이 성령의 역사를 따르면 개인이 죽고 전체주의적인 집단화가 생길 법도한데, 그렇게 되는 것은 역시 조직 때문이고, 사람의 욕심 때문입니다. 감동을 따르는 것이 느리고 결과물이 없을 것 같지만, 기쁨의 열매를 나눌 수 있고, 신비롭게도 개개인의 자존적인 모습이 아름답게 살아나 조화를 이룹니다. 재미있습니다.

     고기 교회는 단지 주일 오전 예배 드리며, 친한 사람, 가족들과 행복해하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자기 일상에 묶여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의 교두보로서, 자율적인 흐름을 통해, 기다림의 아름다움 속에, 교회를 통해 맛 보는 사랑으로 서로 손을 잡아 띠를 띠며, 이 시대에 다른 72으로 다른 마을, 다른 곳으로 나아가, 세상 속에 탄탄한 평화의 발걸음으로 살아가는 생명력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다니는 재미로움, 흥겨움, 그리고 살아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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