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한결같은...감사(성령강림절후스물한번째주일,2020년10월25일)
한결같은... 감사
2020년 10월 25일(성령강림후스물한번째주일) 출25:8-9;신7:7-9
헤세드라는 히브리 단어가 있는데, 자비, 사랑, 친절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결같다’는 수식어가 붙어서 야웨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를 나타냅니다. 룻2:20은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룻의 이삭줍기를 허락한 보아스에대해 "먼저 세상을 뜬 우리 식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더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자비를 베푸는구나."라고 하며 한결같다고 합니다. 한결같은 사랑이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 모두 같이 교회에 넘쳐야합니다. 왜 우리 모두 같이 교회인가 하면 이웃과 함께 자연과 우주와 역사등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한결같은 은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한결같은 자비, 헤세드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 신7:8, 9입니다. 여기서 약속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에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셨다고 하면서, 주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천대에 이르기 까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니,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한다고 합니다. 헤세드는 단지 연민이나, 선처나, 잘 돌보아주는 수준이 아니라, 헤세드가 한결같은 헤세드가 되는 것은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의 하나님에대한 증언이 바로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성경말씀의 전부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며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창조 이전부터 한결같은 하나님인 것을 체휼하며 그 받은 헤세드를 세상과 나누는 것입니다.
약속이라 했습니다. 약속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 합의입니다. 그래서 구약 신학자 발터 브리기만은 헤세드를 하나님과 교회와의 ‘견고한 유대감’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저는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은혜는 무조건적이지만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감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신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 약자를 배려하며 도우며 돌보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교회가 건축을 시작한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2월24일 월요일에 기공식 예배를 드린 후 오늘이 10월 25일이니까 딱 8개월째 입니다. 첫 기공 예배를 드리기 전 준비단계에서 설계사가 바뀌고, 감독관이 바뀌는 우여 곡절 끝에 나한억님이 건축 전반에대한 책임을 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준공 승인이 남아있는데 나한억님에게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당은 출25장 말씀처럼 주님이 머무는 거룩한 공간이며, 한글 개역은 그 성소를 나를 위하여 지으라고 합니다. 이 교회당 공간은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한 공간이고, 신약으로 넘어 와서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9절 말씀은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합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모양과 똑같은 모양으로 지으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보여준다는 말이 깊게 와 닿았습니다.
왜냐하면 건축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결정적으로 건축을 인도하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보도가 그렇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설계도에는 장애인보도가 교회 마당 한 가운데를 지나갑니다. 이미 반 정도 경계석이 깔렸습니다. 계속 눈에 거슬렸습니다. 근데 윤무진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장애인 도로를 소나무 안 쪽으로 놓으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교회당 벽에 바짝 붙어서 길을 내어 마당 전체를 넓히려고 했거든요. 근데 구예배당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높아져 휠체어 경사도가 나올 수가 없어서 포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윤무진 집사님의 소나무 안 쪽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보인것이지요. 그래서 이미 놓여진 경계석을 다 부수고 소나무 안 쪽으로 장애인도로를 놓았습니다. 더 나아가 텃밭쪽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축대를 쌓기로 하고 지금의 장애인 도로가 된 것입니다. 만일 장애인보도가 마당 가운데로 지나갔다면 일반차량의 하중에 도로가 망가져 차량이 예배당 쪽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을텐데, 하나님께서 길을 텃 밭쪽으로 내도록 보여주셨습니다. 그 길이 보이더라구요.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신앙의 본질입니다. 자기 생각에 꽉 차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인도하심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지난 목요일이었습니다. 밤토실데크 앞 쪽의 장애인 도로의 축대가 경계석 보다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경계석과 맞추어 축대를 쌓는데, 마무리 되는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어 나무를 뽑지 않고 축대를 우회하여 쌓으려 하였습니다. 근데 이미 나무 뿌리가 많이 노출이 된 상태였습니다. 나무한테 매우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뽑아야 하나 라는 생각에 언뜻 장로님에게 “이 나무가 무슨 나무지요?”하고 물으니 라일락이라고 합니다.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라일락이라구요?” 아! 그렇지 올 봄에 흰 꽃이 피었지. 아이구! 당장 뽑아 아래 쪽에 심었습니다. 라일락을 교회당 앞 쪽에 2그루를 옮겨심고 하나 더 심으면 좋을텐데 하며 계속 몇 주 째 라일락 노래를 불렀습니다. 근데 눈앞에 라일락이 있는데, 날 마다 몇 번씩 보고 지나가면서 라일락 타령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리석어 못 보는, 욕심으로 가득찬 교회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보는 만큼 신앙이고, 보이는 만큼 은혜이고 삶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입니다.
보여야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아가 물을 찿아 헤메다가 마라라는 샘에 이르렀지만 물이 써서 먹지 못하여 하나님 원망하는 중에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나뭇가지를 꺽어 물에 던지니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정황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무 한 가지를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여주시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의 스토리가 됩니다. ㅎ ㅎ 그러니까 기도하세요. 딴 짓거리로 인생 헛되게 살지 말고. 이스라엘은 그 후에 종려나무 72 그루가 있는 샘이 12이나 있는 엘림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 풍성한 물이 넘치는데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주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자기 의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기를 맞깁니다. 보여주신 만큼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 건축에 임하며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 보다 돈, 그리고 기술력 이지만 오직 한 가지를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 바로 헤세드, 즉 견고한 유대감, 즉 신뢰였습니다. 이 번 건축에서 기공예배를 드리며 함께한 최병섭사장님, 우리에게 한 여름 상추와 야채를 한 상자 씩 보내 준 신영석님, 그리고 전기통신설비 유동열님, 더 집의 박용우님 등, 아! 페인트를 칠해주신 분들, 이 분들과 준공승인이 날 때 까지 끝 까지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여기 까지 왔습니다. 건축을 하다보면 서로 견해가 맞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업자가 여러 번 바뀐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인건비가 물 붓듯이 들어가는 것에 부담을 가지기도 하였는데, 시공자분들을 믿고 신뢰하며 작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옆에서 보조역활을 하였습니다. 날 마다 시종일관 화기 애애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몸은 고되도 즐거웠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 속에서 끝 까지 놓치지 않았던 것은 헤세드, 견고한 유대감, 한결같음 이었습니다. 외적인 모든 정황들이 그 한가지 한결같은 헤세드에 묻히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헤세드, 견고한 유대, 상호 신뢰의 꽃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오늘 주보 사진은 지난 8월 29일 토요일 한창 파쇄석 깔고, 다지고 모래 깔고, 경계석 바깥에 돌과 흙을 체우다가 소나기를 피해 큰 방 처마 밑에서 참새들처럼(^^)비를 바라보며 쉬는 모습인데,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그 편안하게 쉬며 웃는 표정을 보면 참 평화롭습니다. 얼굴 표정 하나 하나, 뒤에 감추어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마스크 쓴 사람, 안 쓴 사람, 각자의 표정과 자세가 넘 사랑스럽습니다. 13인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13인의 울력입니다. 성령의 내적 감동이 없이는, 기쁨과 감사, 한결같은 신뢰가 없이는 이 긴 시간을 한결같이 함께할 수 없었고, 지금 오늘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되어 감사절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날마다 간식 거리를 챙겨 준 여전도회, 하루는 진짜루 토요일에 나와서 같이 삽질을 한 날은 또 하나의 잔치였습니다. 이 번 건축의 헤세드는 우리 모두 같이 고기교회 성도님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성도는 세상의 이치와 관계맺기, 이익구조, 스팩을 쌓는 일이 아니라, 한결같은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 인애하심, 사랑에, 즉 언약에 자신을 맡깁니다. 이 견고한 유대감에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화롭고 자유하며 감사합니다. 신비입니다. 이 유대감은 단지 하나님과 나와 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한결같은 헤세드를 나의 이웃과 자연과 사회에 돌려 우리 모두 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