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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스페인으로 간 이유는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 2020년 9월 27일)

김현식 | 2020.10.03 23:32 | 조회 1259

 

 

여기 범죄자와 정의에 찬 인물이 있다고 합시다. 어느쪽이 더 꺼려지십니까? 일반적으로 범죄자가 더 꺼려진다고 하실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범죄자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감에 찬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수단과 방법을 다해 이루려고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의가 잘못된 것이라면 어떨까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옳은것인가요?

 

오늘 본문의 요나 선지자가 그런 인물입니다. 우리가 요나서 전체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요나와 그를 끊임없이 설득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요나의 예언 내용은 요나서와 열왕기하 14:25에 나옵니다. 여로보암 2세때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서 북쪽 시리아지역을 정복해서 이스라엘의 북쪽영토를 회복할것이라는 긍정적 예언입니다. 여로보암 2세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많을때입니다. 그래서 요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호세아, 아모스 선지자의 주요 사역은 죄를 지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회개를 촉구하고 심판을 예언합니다. 하지만 요나는 죄에 대한 고발이나 심판을 예언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거짓 선지자는 아닙니다. 실제 요나의 예언대로 여로보암2세는 시리아지역을 정복해서 영토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예언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다면 북왕국의 불신과 불의도 지적했어야 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요나의 신앙은 편향적이고 민족주의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일을 맡기십니다. 강대국인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나에게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앗시리아는 당대에 매우 포악한 정복국가였습니다. 포로들의 피부를 벗겨서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등 포악한 압제를 저질렀고 북이스라엘도 조공을 바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특이한 상황의 요나서는 내용적으로도 독특한 특징들이 있고, 그 특징을 사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 땅으로 가서 말씀을 전하는 구조는 요나가 유일합니다. 동시에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친것도 요나가 유일합니다.

요나서는 죄악에 대한 고발이 없습니다. 무엇을 잘못했으니까 회개하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요나의 구체적인 메시지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요나서는 선지자 요나의 상황과 행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엔딩이 열린 결말입니다. 하나님과 요나가 대화를 하다가 끝납니다. 그래서 이후에 니느웨가 어떻게 되었는지, 요나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이 끝납니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요나서는 독자들이 느끼고 깨닫게 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1장을 봅시다. 요나를 아밋대의 아들이라고 설명하는데 아밋대는 진리, 신실을 뜻하는 에메트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합쳐보면 진리의 아들 비둘기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부조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큰 바람을 일으키셔서 배가 침몰할 지경이라 뱃사람들이 각자 믿는 신을 부르고 화물을 던져서 배를 가볍게 합니다. 그 와중에 요나는 깊이 잠들어있었습니다. 그러자 선장이 와서 요나를 깨워 네가 믿는 신에게 기도해보라고 합니다. 중보기도는 예언자의 핵심적 사명인데 요나는 자고 이방인 선장이 기도하라고 깨우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누가 이 폭풍의 원인인지 알아보자고 제비를 뽑자 요나가 뽑히는데, 뭐하는 사람인지를 묻는 질문에 묻지도 않은 거창한 신앙고백을 늘어놓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분을 섬긴다는 그의 신앙고백은 도망치고 있는 행동과 대비를 이룹니다. 고백과 행동이 전혀 맞지 않습니다.

 

재앙의 원인에 대해 누군가가 물을 때 엉뚱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요나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현실의 문제앞에 신앙을 장엄하게 고백합니다. 그런 신앙을 가졌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행동에 나서야 할텐데, 고백과는 별개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전부인것처럼 여깁니다. 특히 요즘의 코로나 상황에서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언행에도 자신들의 입에서 나오는 선포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27장의 유사한 상황에서 사도바울은 배에 탄 사람들을 격려하고 음식을 먹고 배를 가볍게 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에 반해 자신을 던지라는 요나의 말은 무책임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것은 사실 자포자기, 체념을 통한 거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서 도망치고 있음에도 돌이켜서 니느웨로 가서 선포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요나의 모습이 얼마나 편협하고 졸렬하고 위험한지. 요나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럼으로 뱃사람과 대비시킵니다. 뱃사람들은 그럼에도 어떻게든 배를 돌리려 노를 젓다가 안되니까 무고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님을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폭풍이 멈추자 제사를 드리고 주님을 섬기기로 약속합니다.

 

바다에 빠진 요나에게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보내서 요나를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는 삼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됩니다. 그동안 지은 시가 2장의 내용인데, 이 시는 시편에서 시의 형식을 구분하는 기준에 따르자면 감사시에 해당합니다. 감사시는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입니다.

 

분명히 요나의 감사기도는 진실합니다. 그럼에도 니느웨의 상황에 대한 언급도 암시도 없습니다. 자신의 건짐받음을 감사하지만 자신 때문에 죽을뻔한 뱃사람이나, 하나님의 명령인 니느웨인을 보지않습니다.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저버린다고 말하지만 그 이방 뱃사람들은 신중하고 사려깊게 요나를 대했으며 요나보다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감사시는 요나의 모순되며 이기적이고 편협한 모습을 부각시킵니다.

대체로 감사시는 찬양하라는 명령을 포함합니다. 개인의 증언을 넘어서 백성 공동체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기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시에는 없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구원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특별한 체험을 했지만 거기서 그쳤습니다. 체험이 요나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을 건진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뱃사람이나 니느웨인의 생명의 가치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과의 깊은 사귐을 말하고 영적 체험을 말하지만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체험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이웃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안믿는다는 이유로 심판을 선포하는 교회는 요나서가 비판하는 부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에게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가 한 말을 선포해라.’ 니느웨성이 둘러보려면 사흘길이라는데 이게 둘레인지 지름인지 는 모르겠습니다. 물고기 속에서 요나의 생사를 가르는 시간이 밤낮 사흘이었는데, 이제 니느웨의 생사를 가르는 시간이 사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룻길만 걸으며 선포합니다. ‘40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요나의 이 선포는 이상합니다. 현재의 죄악에 대한 고발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심판이 임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을 선포하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하나님을 떠났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했음에도 돌이키지 않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로 모른 채 심판 선포만을 듣고 돌이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울것입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니느웨가 듣고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의 이상한 선포에도 니느웨는 회개했습니다. 왕이 옷을 벗어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습니다. 더군다나 백성이 먼저 응답해서 위로 올라가 왕이 응답하는 매우 희귀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짐승들도 회개에 동참시켜서 사람과 짐승이 모두 주관자 하나님앞에 낮추는 모습을 보이려합니다. 또한 금식과 베옷, 부르짖음의 의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조서로 만들기까비 합니다. 왕의 조서는 회개를 제도화 하는것입니다.

 

2장에서 요나는 회개한것처럼 보이지만 3장의 요나의 모습은 내키지 않는 명령을 겨우 수행합니다. 요나를 기쁘게 한 것은 자신의 구원과 회복뿐이었습니다. 반대로 니느웨는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고 베옷을 입으며, 행실을 고침으로 구체화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재앙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심판을 돌이키시는 분이십니다.

1장의 뱃사람들은 주님을 부르고 제사하고 서원했고 3장의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고 베옷을 입으며 회개하고 폭력에서 돌이켰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성품과 행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41절의 못마땅해 화가 났다는 단어는 라아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재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스페인행 배에 내린 재앙, 니느웨에 임할 재앙도 다 이 단어로 표현됩니다. 그 재앙이 요나에게도 임한것입니다. 그런데 요나에게 임한 재앙은 니느웨를 벌하지 않으심 때문이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다른이에게 임한 구원과 행복을 자신의 재앙으로 여기는 이가 요나입니다.

 

그렇다면 재앙에 대한 대처는 어떠했습니까. 뱃사람들은 부르짖고 신중하게 대처했고, 니느웨인들은 금식하고 베옷을 입으며 부르짖고 행실을 고쳤습니다. 요나는? 성냈습니다.

2장의 요나의 기도는 자신만 살기를 원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니 방향이 죽여달라는데로 진행됩니다. 이미 스페인행 배에서도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던 요나가 바란 것은 니느웨의 멸망입니다. 요나는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는 말도 쉽게 뱉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1장에서 바다에 전져진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보내시고, 고집부리는 요나를 위해 박넝쿨을 보내십니다. 박넝쿨은 요나를 재앙에서 건져내비다. 요나에게는 자신의 작은 불편이 상대의 생명을 좌우하는 고통보다 큽니다. 요나에게는 니느웨의 값어치가 햇빛을 가린 박넝쿨만큼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왜 화내는지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지만 요나의 답은 강경하고 고집스럽습니다.

 

요나서는 요나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나 평가가 없습니다. 요나가 만들어낸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해설에 해당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게 10-11절입니다. 그런점에서 이 구절은 요나의 결론이자 결정적 부분입니다. 요나의 작은 박넝쿨은 큰성읍 니느웨와 대조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호칭하실 때 큰 성읍이라고 표현하시는데 하나님이 크다고 표현하시는 이유는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사람과 가축 때문입니다. 사람과 가축의 공통점은 생명입니다. 특별히 그들을 좌우를 가릴줄 모른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가릴줄 모른다는 단어는 분별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좌우를 분별하는 것은 어느길로 가야 할지를 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 의미는 마땅히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다는 의미입니다. 니느웨인들은 돌이킬 때 그들이 행하던 폭력에서 돌이켰습니다. 그 점을 보면 좌우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가득찬 세상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나의 편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끝까지 요나와 대화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의문이 듭니다. 애초에 왜 요나를 선택하신것인가? 요나야말로 좌우를 가릴줄 모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도 요나와 같지는 않습니까? 건강하지 못한 신앙을 가진 이들을 보게되며 그들을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혹시 요나처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 필요하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나 스스로 그들을 판결하고 선고내린 다음 하나님의 동의를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나는 자신의 편협한 판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페인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니느웨를 회개시켜 구원하시고 그 과정을 통해 요나 또한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방법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저주하고 싶은 사람, 보고싶지 않은 사람을 직면하고 용서함으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맛보게 하십니다. 용서는 미워하는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자유를 주는 사건입니다.

 

마지막 구절은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납니다. 이제 요나가 답할 차례입니다. 요나는 무엇이라고 답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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