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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11월6일, 들꽃향린교회, 윤정근 집사)

mungge | 2016.12.08 17:17 | 조회 1956

(2016년 들꽃향린교회 추수감사예배)

평신도 설교교류. 116.

*말씀 : 에베소서 214~22

제목 :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설교 : 윤정근 집사

 

안녕하세요. 고기교회에서 온 윤정근집사입니다. 고기교회는 예장 통합측 소속 교회로 분당신도시 근처 고기계곡입구에 있는, 도시교회지만 시골교회의 모습을 지닌 대형(마당만)교회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허락하신 담임목사님과 들꽃향린교회 성도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고기교회 성도분들을 대신해서 평안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 이 자리에 저희 구역분들께서도 함께 참석해 주셨습니다. 제가 작은 지식으로 주일 예배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1.

(1)올 해 평신도 설교교류의 주제는 교회의 개혁과 평신도의 주체적 신앙 그리고 평화를 위한 평신도의 역할입니다. 좀 거창한 주제여서 오늘 제가 전하는 말씀이 이 주제에 충실할는지 걱정이 됩니다.

본문의 에베소서에 보면 성도가 건물(성전)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곳이 구약에서는 건물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에도 간혹 교회건물을 성전이라고 호칭하는 경우를 듣곤 하는데요, 그냥 높임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성전인 성도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시키거나, 사람보다 오히려 건물에 집착케 하는 잘못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에베소서 122~23절을 보면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는 비유가 나오는데요, 교회는 몸, 즉 어떤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란 말을 합니다. 교회란 겉보기엔 무질서해보여도 성령과 동행하며 사랑, 용서, 겸손 등의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해 가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말이죠.

(2)그런데 예수님을 머리에 비유했듯 오늘날에는 뇌를 담고 있는 머리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고대에는 꼭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과거 이집트의 미이라를 보면 뇌를 쓸모없이 여겼는지 코를 통해서 다 배출시켰고, 고대 서양에서는 횡경막에 사람의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용어의 하나인 정신분열증을 영어로 스키조프레니아라 하는데 이를 직역하면 횡격막분열증이 됩니다. 또 동양에서도 심장이 마음과 관련한 장기라 여겨 마음심자를 쓰고 오장육부 장기 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머리()가 가장 중요한 장기인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예수님을 머리에 비유했던 것이죠. 그리고 몸은 머리가 내리는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몸은 병이 든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몸 된 교회에도 해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2.

(1)한국교회는 훌륭한 선배 신앙인들도 많이 계시고 또 장점도 많이 있습니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만 오늘날 문제점도 계속 제기되고 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 보자면 분열, 권위주의, 샤머니즘, 세속주의, 자본주의, 성장만능주의, 세습화, 윤리성 결여 등이 있습니다.

먼저 장로교를 보면 일제시대 신사참배 문제로 고신측이, 다음엔 진보적 교리 문제 등으로 기장측의 분열이 있었고 그 후 통합측과 합동측의 분열이 있었습니다. 물론 분열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거나 어쩔 수 없는 분열도 있겠지만, 예로 합동측이 이후 수십, 수백개의 교단으로 분열된 모습에서는 어떤 선한 명분보다는 분열을 주도한 사람들의 욕망이 분열의 주 원인으로 작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성장만능주의나 자본주의화는 세상의 영향을 떨치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교회를 하나의 기업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입니다. 이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낳는 세상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또 사회참여나 정치적 문제에 소극적이거나 권세에 순종하라는 말씀을 왜곡해 지나치게 정권 친화적이거나 극우적 성향으로 흐르는 문제, 내적인 깊이의 부족이나 내적 추구의 부족, 그리고 윤리성의 결여로 인한 상식이하의 일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문제 등이 있습니다.

병든 교회가 병든 사회를 고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몇몇 문제만 보더라도 우리가 날마다 성찰하고 개혁에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2)세상은 많은 것이 뒤집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었고 어둠이 밝음이 되었으며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더 중요합니다. 또 남을 이기고 짓밝는 것을 성공이라 말합니다. 이천년 전 이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참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권력에 열중인 지도자들에게 모두는 한 형제라고 말씀하시고 율법은 형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국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바늘은 세상과 반대를 가리키기에 기독교는 이를 다시 뒤집을 만큼 강력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기독교 사상가인 자크 엘룰이라는 분이 한 말을 읽어보겠습니다. “기독교는 그 자체가 혁명이다. 단순한 어떤 형식이나 예배를 위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힘이요, 사건이요, 운동이다. 부정한 것을 뒤집어엎는 개혁이다. 경제, , 정치, 이데올로기, 문화, 종교, 도덕까지 뒤집어엎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만약 이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장이며 인간 문명 전체가 부패로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3)좀 전에 남을 이기는 것이 성공이라고 했는데, 아마 성공만큼 이 시대에 인기 있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믿는 이들도 넉넉히 사로잡고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거래하는 한살림이라는 단체를 시작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세상에서 보통 인물이라고 하면 기운 세고 머리 좋고 권세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알고보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허덕여 왔다는 말을 했습니다. 요즘도 대통령과 관련한 문제로 세상이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 분이 권세는 가졌겠지만 머리가 좋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잠언 163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

고대에 성이란 하나의 도시국가 개념이었을 텐데 그런 성을 점령한 장군이나 왕보다, 비록 남들이 다 알아주는 일을 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모난 성격, 즉 분노나 짜증, 남을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고치고자 애쓴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더 훌륭하게 평가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생각하는 성공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성공은 전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을 요약하자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또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성경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죠. 그런데 교회는 어떻습니까? 만약 교회가 대형교회를 지향하거나, 동기나 과정은 무시하고 외적인 결과를 중시한다면, 또 마음이 가난해지고 의를 위해 핍박 받는 것이 복이라는 산상설교의 팔복과는 다른 복을 추구한다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믿는 이들에게 있어 성공이란 이전보다 더욱 성숙한 상태, 또는 좀 더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고자 노력하는 삶과 관련되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쓰는 삶과 관계된다고 할 것입니다.

 

3.

교회나 세상도 병들 듯 우리 몸도 병이 듭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700명 이상이 사망하는데 사망의 원인이 되는 질병의 순위를 보면 1위가 암이고 2~3위가 뇌졸중과 심장질환, 4위가 자살입니다. 특히 3~4명 중 한명은 암으로 죽을 만큼 암은 이제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0대에서 30대까지는 사망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매년 직계 유가족만 10만명 이상 발생한다고 합니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이며 매년 수백 명의 초등학생이 자살하고 젊은이들의 사망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은 이 사회의 중요한 병리적 현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건강하게 살다 질병 없이 죽기를 원할 것입니다. 저는 에녹같이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습니다만...이렇듯 하나님도 교회가 건강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4.

(1)제가 다니는 고기교회가 강조하는 기독교적 정신이 있습니다. ‘생명, 정의,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는 또한 개혁을 생각하는 이들이 유념해야 할 정신이기도 할 것입니다.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 배려나 공감 등은 성경이 말하고자하는 핵심적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면 무효가 되듯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생명에 대한 사랑과 무관하다면 무효가 될 것입니다. 이는 보수주의자건 진보주의자건, 혁명주의자건 개량주의자건, 또 무교회주의자건 모든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놓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성령은 정의의 영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간의 불의는 별 상관을 안 하실 것이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분노를 넘어 측은히 여길 정도로 공의롭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란 사회적 용어로 사랑과 동의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조직이 그곳에 소속된 모든 구성원들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대우한다면 소속된 구성원들은 자신이 조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외적 또는 내적인 평화 또는 평안은 궁극적인 것입니다. 이는 만나는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하시는 예수님의 인사말이고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서 첫머리에 늘 평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한 고통이나 고생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입니다. 마냥 지속되는 쾌락이나 기쁨은 좀 자극적이거나 피곤한 느낌이 있지만 영원한 평화, 평안은 지극히 천국적이지 않습니까?

(2)여기에 저는 조화 또는 균형을 추가해 봅니다. 몸도 건강하려면 항상성이라는 전체적 조화와 균형이 중요한데,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든 피조물의 조화와 균형 있는 세상을 계획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균형을 취한다는 것은 전체를 본다는 것이죠. 전체를 보지 못하면 균형도 잘 취할 수 없습니다. 또 이는 우리로 평화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체의 아름다움도 균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조화와 균형은 미적 감각을 일으키는 주된 요소입니다. 그래서 미를 위한 성형이란 부모가 흩트린 비율을 다시 교정하는 시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은 또 자신들의 부모님께 책임을 돌리시면 되겠지요.

신앙에 있어서는 행함 없는 믿음이나 생각 없는 믿음은 조화가 필요합니다. 또 신비와 이성, 지성과 감성, 교역자와 성도, 큰교회와 작은 교회,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등도 조화와 균형이 필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균형이 깨어져야 할 것도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의 선과 악의 균형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선과 악이 서로 밀고 밀치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언젠가 그 균형이 완전히 깨어지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기독교 작가인 스캇 펙의 말을 마지막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알고 있다. 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악이 자기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수 있고, 그래서 자기가 부서지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죽임 당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그는 부서진 것도, 죽임을 당한 것도, 결코 무릎을 꿇은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세상의 세력 균형에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그래서 결국 선이 승리하여 참 생명을 얻고 정의가 실현되며 영원한 평화가 올 것입니다. 그 마지막 순간은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 깨달음이 좀 더 빨리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참 생명과 정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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