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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 (창조절 열둘째주일, 2016.11.20)

mungge | 2016.11.22 15:40 | 조회 1722


(2016.11.6. 용인시민 시국모임)

제목: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

본문: 마태복음 10장 34절~39절

설교: 김준표 목사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시크릿>

   <그것이 알고싶다, 대통령의 시크릿>을 보았습니다. 배우 김상중님의 차분하지만, 힘주어 말하는 침몰하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보며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권력자의 어리석음과 그를 꼭두각시 삼아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한 최씨 일가, 그리고 이를 방조하고 혹은 공모하면서 이익을 취하고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공고히 한 재벌과 언론, 검찰권력에 의해 1945년 해방이후 어렵게 쌓아 올린 국가 민주주의 시스템이 세월호가 침몰하듯 와르르 무너지고 물에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TV를 보는 내내 입이 굳게 다물어지고 눈 밑이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계속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국가라는 시스템이 어떤 것이기에 저렇게 취약할 수 있지? 청와대가 뭐하는 곳이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라고 그 권력을 맡긴 대통령과 그 주변의 국정책임자들은 국민을 정말 개, 돼지로 보는 건가? 대다수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인 304명의 세월호 탑승객들이 물에 잠겨 고통스럽게 숨줄이 끓어질 동안 국가재난대책의 총책임자인 대통령과 그 아래 사람들은 당일 7시간동안 대체 뭘 한 거지? 배가 완전히 침몰하며 아이들이 수장되는 그 시간동안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물어보니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은 잘 모르겠다거나 국가기밀이므로 대답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도 2014416일 베일에 싸인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의 퍼즐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추측할 뿐이었고, 이제는 대통령이 그 7시간 동안 왜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는가 역사 앞에 스스로 진실하게 고백을 해 주어야 한다고 당부할 뿐이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20019.11테러, 2005년 카트리나 태풍, 2011년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당시 대통령과 내각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분단위로 공개하고 그 대응태도를 검증한 미국과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을 핑계로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의 추악한 잘못을 법이라는 제도의 보호막 속에 덮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어떤 견제도 제재도 받지 않으며, 국가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법을 유린했던 자들이 촛불을 들고 항의 하는 국민들에게 덧씌우는 올가미가 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조항과 도로교통법을 들먹이며 국민들을 위협합니다. 국가권력에 대항하면 너희들의 인신을 구속하고,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때처럼 법정에 세워 벌금폭탄을 때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현실의 법질서는 정당한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한국의 헌법질서가 무너졌다고 탄식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이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정당한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 해야 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근대국가로 세워지는데 있어서, 확실히 그 근거가 되는 것은 법이었습니다. 국가 제도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해 나갈 것인지, 국가 권력을 누가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에 대해 조율하고, 규정하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느 국가나 처음 제도를 만들며 제정하는 법은 절대 국민 전체를 위한 법이 될 수 없습니다. 국가가 만들어 지는 시점에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 자신들의 재산과 생명, 그들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 법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지강헌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198810, 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25명 중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해 9일 동안 서울 시내 곳곳을 도주하다 결국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 사살되거나 자살에 이른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탈주범 중 35살이었던 지강헌이 외쳤던 소리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가 수십억원에 대한 사기와 횡령으로 2년 정도 실형을 살다 풀려난 것을 보고, 지강헌은 돈과 권력이 있는 자만이 법의 특혜를 받는다는 것을 항변한 것입니다.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

   따지고 보면 어느 시대나, 어느 국가에서나 법은 가진 자의 편이었습니다. 법은 먼저 권력과 부를 획득한 기득권 세력의 우선권을 지키기 위해 봉사하는 수단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절대 평등하지 않습니다. 법 앞에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는 생각은 신화일 뿐입니다.

   신화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 이 사회의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설명을 통해 현실의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성을 가지기도 합니다. 고대사회가 신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신분질서를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강제했던 것이 그 예입니다. 20세기에는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에 대한 종족신화를 통해 유대인들을 집단학살하고 세계지배를 합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발터 벤야민은 법에 의해 수행되는 국가폭력을 신화적 폭력이라 표현했습니다. 신화가 현실의 질서를 정당화 하듯이, 국가가 주도하는 법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제도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체계를 강요하고 그 법과 사회질서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법은 그 어떠한 비판적 사유도 차단한 채, 국민들이 철저하게 사회질서에 속박되도록 작용할 뿐입니다. 첨단과학문명을 누린다는 21세기에서 세월호 사건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신화적 사회에서, 신화적 폭력을 당연시하며 살아가고 있는 고대인인지 모릅니다.

   벤야민은 근대국가 시스템 안에 교묘히 존재하는 신화적 폭력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성세력의 특권을 유지하고, 권력과 폭력을 재생산하는 현대의 신화적 폭력에 맞서는 다른 폭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옛 시대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법을 무너뜨리는 폭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벤야민은 이 폭력을 신적 폭력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적 폭력은 기존 법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새로운 종류의 힘을 말합니다.

신적 폭력=질서의 해체

   구약의 유대인들은 신적 폭력을 갈망하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속박하는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로니아, 페르시아, 로마 제국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을 해방시킴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유대인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시켜 주시고, 포로로 끌려간 바벨로니아 강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켜 주신 하나님은 법의 속박을 무력화시키고 세상 권력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심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질서를 세우신 분이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폭력이 삶을 속박하는 강압적 법질서를 깨뜨리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비루한 삶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던져준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검을 주러 오셨다.

   오늘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에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후 이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박해를 예고해 주시며 제자들에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격려해 주십니다.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는 세상 권력이 강요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분명 해방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권력이 강요하고 조장하는 죽음을 포함한 모든 그릇된 공포로부터 해방된 사람만이 38절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이 지셨던 죽음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34절 말씀의 뜻이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습니다.” 이 본문은 아기예수 탄생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외쳤던 천사들의 이야기와 분명 대립되지만 오늘 읽은 본문이 세상을 향해 나가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배경 속에서 귀를 기울이면 그 뜻이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예수님을 제자로서 따른다는 것은 평화로운 것이 아니고, 우호적인 환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과 로마의 권력자들에게 미움과 박해를 받고, 죽음의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은 로마의 통치법, 유대교의 종교법 안에서 신화적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고통속에 하루하루 신음하며 살아야 했던 갈릴리 땅의 민초들, 땅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평화가 거짓 평화임을 드러내는 일에 앞장 섰고, 모세의 율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정결법을 통해 타인들을 끊임없이 정죄하던 종교지도자들의 허위를 드러내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기존 질서의 정당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숨겨져 있던 신화적 폭력을 드러내 맞서고, 새 세상과 질서를 만들어 내는 신적 폭력을 행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제껏 아무 생각 없이 이어져왔던 안락함과 안정, 균형과 조화를 훼방하고 교란시키는 불순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강제적 법의 근거가 정당한지 그 물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죄의 본성을 향해 검을 던지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떠한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신화적 폭력을 지지하고 있습니까? 신적 폭력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검을 손에 쥐고 하늘 높이 드십시오. 그리고 순응과 복종을 강요하는 이 땅의 거짓된 질서를 향해 과감히 칼을 휘드르십시오. 그 행위로 말미암아 혹여 내 목숨이 위협 받는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이 땅의 모든 거짓을 도려내고,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얽매인 것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영혼을 끝까지, 하나님의 끝없는 시간속으로 품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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