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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 (창조절 열번째주일, 2016.11.6)

mungge | 2016.11.11 13:10 | 조회 1332


(2016.11.6 용인시민 시국선언 및 행진후)

 

제목: 교회와 국가

본문: 사무엘상 8: 1-22, 마가복음 10:35-45   

설교: 유경재 목사님

 

요즈음 참으로 추악하게 얼크러진 정치권력의 몰락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이며, 국가의 권력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국가에 있는 교회는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 시작되면서 한국교회는 그 정권을 적극 지지하기 시작하여 박근혜 정권까지 기도로 뒷받침(?)하여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오늘의 이 추악한 사태에 대해서 한국교회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가 무엇이며 이 국가에 대한 교회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국가의정당한 물리적 폭력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내린 근대국가에 대한 정의에 의하면, 국가란 어느 일정한 영역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정당한 폭력이란 도덕적으로 올바른 폭력이란 뜻이 아니라 합법적인 폭력을 뜻하는데, 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폭력을 독점하였기에 그 폭력을 합법이라고 규정할 수 있었습니다.

정당한 물리적 폭력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경찰권입니다. 경찰이 정부를 대리해서 그 직무상 필요한 강제력을 사용하는 한 정당한 행위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경찰권입니다. 같은 일을 보통 사람이 행하면 폭행이 됩니다. 둘째가 처벌권으로 유죄판결이 나면 강제로 교도소에 수감하거나 사형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하면 살인이 되지만 국가가 하면 정당한 처벌이 됩니다. 세 번째의 정당한 폭력은 교전권’(交戰權)입니다. 교전권이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교전권은 군대가 군대이기 위한 군대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가령 전쟁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전쟁 후에 살인죄로 재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전권입니다.

국가가, 즉 경찰이든 재판관이든, 혹은 군대가 막스 베버가 말하는 폭력을 사용할 경우, 웬일인지 그것은 충격적인 일이 되지 않습니다. 개인이 같은 행위를 할 경우와 달리, 그것을 한 것이 국가라면 아무것도 충격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국민이 인정한 폭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가가 정당한 폭력의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국민이 국가에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주었는가? 국가가 그것을 사용해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국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만 그 폭력을 사용하였는가?

20세기 초만 해도 이런 근대국가의 수가 적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3세계에서 우후죽순처럼 근대국가가 생겨나 지금은 유엔에 가입된 나라만도 192개국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근대국가가 생겨난 지난 한 세기 즉 100년 동안에 국가에 의해 살해된 사람은 23319천명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살해된 약 2억 명 가운데 약 13천만 명이 자국민(自國民)이라는 사실입니다. 적국의 국민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 사람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살해된 사람들 대부분은 전투요원인 군인이 아니라 비전투원인 민간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 전쟁 중에 민간인이 111만 명 정도 희생되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서 일어난 보도연맹(保導联盟)학살사건의 경우 밝혀진 희생자만 4,934명이고, 증언들에 따르면 최대 30만 명 남짓의 민간인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직까지 그 실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누구도 그 때문에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512월에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군인들이 인민유격대가 활동했던 거창군 신원면 6개 마을에서 어린이와 노인, 부녀자들이 80%가 넘었던 잔류 마을 사람들을 500명 이상 무차별 학살한 거창사건, 그리고 제주 43사건에서도 14천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4·19 혁명 때 180여 명, 5.18 민주화운동 때 435명이 죽었습니다. 교전권을 위해 만들어진 군대가 자국민들을 상대로 싸움을 하였다고 하겠습니다.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살해된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국가와 자국민 사이의 오랜 전쟁이었습니다.”

 

일본 한 대학교의 철학교수인 카야노 도시히토가 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국가의 성격을 설명하였습니다.

 

국가가 주민들에게 공물과 조세의 지불에 대한 대가로서 군사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결코 주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가 폭력을 축적함으로서 지키고자 하는 것은 주민의 안전이 아니라 그 자신의 보전이다. 국가에 있어서 군사적인 보호의 의미는 다른 행위주체들의 공격으로부터 그 토지에서 자신의 폭력의 우위성과 부의 징수 권리를 지키는 것일 뿐이다. 국가는 주민들이 자신의 안전을 목표로 설립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하나의 행위주체가 주민들을 지배하고 그들로부터 부를 수탈함으로써 국가는 만들어진다. 주민의 보호는 그로부터 파생하는 하나의 부수적 활동에 불과하다.

 

국가는 결코 국민의 안전을 목표로 설립되지 않는다 말은 충격입니다. 요즈음 일어난 사태를 보면 이 말이 실감이 납니다. 그 동안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와 가까운 몇 사람의 사익과 자기 권력을 지키려고 했을 뿐입니다. 경제성장은 더 많은 부를 수탈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수탈한 부는 행위주체인 정권을 더욱 강화하는데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부수적 활동이라는 말은 세월호사건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를 볼 때 구약의 사무엘 예언자가 왜 왕을 세우기를 거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이미 그때 도시히토 교수가 정의한 국가의 폭력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를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하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가 거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그는 너희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이다. 그는 또 너희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 (삼상 8:11-17)

사무엘이 전한 야훼의 말씀인데, 이 말씀 어디에도 왕권이 주민들을 보호하고 돌본다는 말은 없고, 폭력으로 징발하고 부를 착취해간다는 말만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의 실체입니다.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물론 20세기 들어서면서 이런 국가형태가 많이 발전하여 국민국가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국민국가란 국민 전체가 국가를 책임지는 주체가 되는 국가입니다. 국가 폭력의 주체가 국민이 된 국가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제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우리는 투표에 의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을 선출함으로 우리의 주권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주권을 온전하게 행사하고 있나요?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도지사, 시장, 시의원, 구청장, 구의원 등을 선출하지만, 처벌권을 가진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장들, 검찰총장은 선출직이 아닙니다. 막강한 폭력이 허락된 경찰권을 행사하는 경찰청장도 선출직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는 국정원장도 선출하지 않습니다. 교전권을 가진 군대의 참모총장들 역시 선출직이 아닙니다. 이들 대부분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에게 정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위임하였습니다. 이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잘 하면 문제가 없지만, 못 하면 국민이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국민이 그렇게 반대하였는데 4대강에 30조원을 쏟아 부었는데, 지금 4대강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폭력을 행사했을까요? 건설회사 부자 만들어주려고 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한 여자와 공유하면서 이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정말로 보잘 것 없는 나라로 추락시켰습니다. 아무리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도 국민이 제대로 된 의식을 갖지 않으면 이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문제는 돈이 있어야 된다는 점입니다. ‘통계를 보면, 오늘날 미국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려면 대략 50만 달러, 상원의원은 수백만 달러 이상이 필요하고, 대통령이 되려면 수십억 달러를 모아야 한답니다. 그러니까 대의제 민주주의는 사실상 금권정치가 돼버렸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국가는 한 번 가진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기업과 결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기업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삼성과 현대가 무너지면 대한민국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삼성의 이재용이나 현대의 정몽구를 불법을 행했다고 구속할 수 있습니까? 그냥 집행유예로 풀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죽어라 부자증세를 안 하는 것은 저들을 도와주지 않고는 자기들의 권력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기업들이 아무 소리 못하고 몇 백억을 얼른 걷어 준 것을 보아도 그 유착관계가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가진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군대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군대조직은 상명하복 조직입니다. 따라서 군대가 있는 한 민주주의 실현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50만 군인을 가지고 있고 그 군대를 젊은 남자들은 누구나 거쳐 나와야 합니다. 3년 동안 군대생활을 하고 오면 그 사고방식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제대를 해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군대식 사고로 훈련된 사람들이 기업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됩니다. 이들에게 어떻게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는 국민주권과 시민자치, 평등주의와 복지주의입니다. 여기서 특히 평등주의와 복지주의란 모든 국민이 평등한 삶을 이루게 하는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 자본주의 경제정책이 도입되면서 평등은 사라지고 불평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면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민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찍부터 국가 혹은 국가의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대립하는 세력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두 가지 전승

구약의 역사를 보면 많은 전승들이 형성되어왔는데, 여러 차례에 걸친 선택과 편집의 과정을 지나서 점차 고정되어 몇 개의 군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전승들 중 중요한 것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족장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출애급 홍해를 건넌 일 시내산 계약 가나안 점령 여기까지는 북광국에서 형성 보존된 것이고, 이것을 보통 출애급 전승 혹은 모세 전승이라고 합니다.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 시온의 선택 등은 남쪽 유다에서 형성된 것으로 시온-다윗 전승이라고 합니다.

이런 전승들이 북쪽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남쪽 유다로 옮겨졌고, 유다와 예루살렘만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들이 이스라엘 전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북왕국 역사의 유산들도 그들에게 속한다고 확신하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시온-다윗 전승은 하나님께서 다윗왕조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내용을 강조하면서 그 전승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시켰고, 그것이 나중에는 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전승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출애급 전승은 이집트의 강력한 폭군이었던 바로의 억압통치로부터의 해방이 그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왕이 통치하는 왕국 혹은 왕조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만이 그들의 통치자가 되실 수 있다고 믿고 출애급 후 상당기간 나라 없이 지파동맹 형태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무엘 때에 이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왕을 요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출애급 전승은 처음부터 국가 형성은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승이 남왕국에 전해지면서 오히려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고 바꿔치기를 한 것입니다.

북왕국에서 출애급 전승에 기반을 두어 예언활동을 한 예언자는 엘리야와 그리고 아모스나 호세아입니다. 북왕국 주민들은 하나님이 저들을 구원하시고 선택하셨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반해, 예언자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올바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 대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따른다고 외쳤습니다.

북왕국이 멸망한 후 출애급 전승을 이어 받은 예언자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입니다. 이들은 시내산 계약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파기되었고, 하나님이 남은 자를 통하여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이룩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자들은 누구도 다윗의 왕조가 다시 세워지고 그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 국가를 형성하고, 그 권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국가 권력은 철저하게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남은 자를 통한 새로운 희망을 전하였습니다. 국가와 그 정치지도자들은 심판으로 다 소멸되고, 남은 자들 곧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모아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를 이루신다고 하였습니다.

"나 주가 선언한다. 그 날이 오면, 비틀거리며 사는 백성을 내가 다시 불러오고, 사로잡혀 가서 고생하던 나의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겠다. 그들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비틀거리며 살고 있으나, 거기에서 살아남은 백성이 강한 민족이 될 것이다. 그 때로부터 영원토록, 나 주가 그들을 시온 산에서 다스리겠다. "(미가 4:6-7)

하나님 나라는 권력을 가진 자, 기득권자들, 횡포와 착취를 일삼은 기업가들은 배제되고, 대신 고난당한 자들, 버림받은 자들, 가난한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하게 예언하였습니다.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

이런 사상은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지만, 그는 시온-다윗 전승이 말하는 왕조의 후계자로, 군림하는 지배자로 오시지 않고, 가난한 자로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왕조 전승의 신봉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기대하는 메시아이기를 거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윗왕국의 회복을 기대하며 자리를 탐할 때 지배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국가는 근본적으로 지배하고 명령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고 보셨고, 하나님 나라는 그와 반대로 봉사하며, 서로 섬기는 나라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마음이 깨끗한 자,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국가폭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통하여 이룩되는 새 나라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셨으며,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조직을 만들어 세우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권력에 의해 억압되고 착취당한 민중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하며, 그 아픔을 쓰다듬어 주면서 위로하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결국 여기서 이렇게 섬기는 자가 바로 메시아입니다. 지배와 착취 대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고 섬길 때 정의 곧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며, 화해와 평화가 전파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민중이 깨어나게 되고 불의한 세력에 맞서며 국가에게 위임하였던 정당한 폭력을 회수하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생명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국가를 향한 교회의 사명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가 성경의 관점에 볼 때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국가를 떠날 수 없고,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국가를 향한 교회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교회의 사명은 이 국가를 바로 세우는데 있습니다. 장신대 총장이었던 김명룡은 다음과 같이 그 사명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를 통해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 교회는 국가가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세계를 만들도록 방향을 지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해야 한다.

둘째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국가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참여해야 한다.

셋째로, 교회는 국가가 잘못하고 있을 때 이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보거나 오늘날의 국가들을 볼 때 교회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받아드리기보다 심하면 핍박하고, 아니면 무시하고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는 결코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평등주의나 복지주의를 실현할 의지가 없습니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압박하며 저들을 굴복시키지 않는 한 평등주의는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국가는 성경이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와는 대척점(對蹠點)에 있습니다. 국가는 항상 위임받은 폭력을 정당하게 사용하여 국민을 보호하고 섬기기보다는 지배하고 명령하고 기만하며 착취하려 합니다. 그 폭력을 언제나 부당하게 행사하여 소수의 가진 자들을 편들어주고 다수의 가난한 자들을 더욱 가난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일어나 저들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며, 그 불의를 드러내고 저들의 거짓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뜻을 받들지 않는 정권을 물러가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섬기러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는 약한 자들, 눌린 자들, 가난한 자들 편에 서서 저들을 변호하고 저들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국가폭력에 맞서 그 폭력으로 고난당하는 가난한 자들의 진정한 메시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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