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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코이노니아(창조절 다섯째주일, 2016.10.2)

mungge | 2016.10.07 18:35 | 조회 2115



설교: 유경재 목사님

제목: 성찬의 코이노니아

본문: 출애급기 12:21-28

        마가복음 14:22-25

 

 

  오늘은 세계교회가 함께 지키는 세계성찬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찬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가지신 유월절 만찬의 식탁을 통하여 제정된 성례전(聖禮典)입니다. 개혁교회의 성례전은 두 가지인데, 세례와 성찬입니다. 두 가지 성례전 가운데 하나가 식탁에 둘러앉아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예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사건이 성찬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체화됩니다. 다시 말해서 식탁에 둘러앉아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우리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성찬의 식탁에서 이루어집니다.

  성찬의 식탁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월절 식사와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함께 나눈 계약식사와 관계가 있고, 또한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를 먹이신 일이나 부활 후에 제자들과 나눈 식탁,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의 잔치에까지 연결이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들이 밥상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밥상에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으므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찬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구약과 신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식탁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밥상 공동체]

 

  이집트에 머물던 히브리인인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민족 공동체의식을 가진 것은 유월절 식사를 통해서였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 식사는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무교병과 더불어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날 밤 천사가 내려와 이집트인들의 장자를 죽일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히브리인들의 집은 그대로 지나쳐 갔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이 경험을 통해서 자신들이 이집트인과 구별된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한 백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들은 매년 유월절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유월절 제사는 화목제로 드리는데  ‘제바흐' 라고 하는 화목제(和睦祭)올라'

라고 불리는 번제(燔祭)와는 달리, 제물을 잡아 내장과 기름은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과 그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공동식사의 코이노니아가 중심이 되는 제사입니다. 이 화목제의 특징은 바로 이런 이중의 교제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교제, 그리고 제사에 참여한 공동체 상호간의 교제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특별한 백성이며 그래서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이 더 구체화된 것이 시내산 계약이었습니다. 출애급기 241절에서 11절까지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70명을 부르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뵈옵고 먹고 마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의식에서도 공동식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계약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시내산 계약을 매년 기념하는 절기가 칠칠절입니다. 이 절기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계약공동체임을 재삼 확인합니다.

  이 두 개의 공동식사가 이스라엘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계약 관계를 재확인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공동체가 그들 가운데 실현됨을 경험하며, 그들이 경험한 새로운 공동체가 역사 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리라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게 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밥상 공동체]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나라는 밥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는 대체로 잔치나 먹는 것과 관련된 비유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도 하나님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떡을 거기에 모인 배고픈 사람들이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새로운 공동체의식을 경험하는 자리였습니다. 마태의 집에서 함께 나눈 식사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자리였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밥상을 나누므로 모든 사람의 죄가 용서되고 거기에 새로운 공동체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과의 유월절 만찬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고전 5:7)이십니다. 그것은 유월절 화목제에 사용된 양을 뜻하는 것으로 일부를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듯이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제물을 나누므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공동체를 갈망하고 나아갔듯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주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과 함께 떼신 떡을 통하여 그들로 새로운 부활의 주님을 보게 하였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떡을 나누시므로 저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일군으로 나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식탁은 사죄와 용서 공동체 상호간의 섬김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로 특징 지워집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이런 모든 식탁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러 식탁들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성찬은 이런 모든 식탁을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중요한 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호신대 교수인 김동선은 주의 만찬은 교회와 교회가 이루어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요약일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요약이라고 하였습니다.

 

[리마 문서에 나타난 성찬의 의미]

 

  이상의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성찬의 배경을 바탕으로 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가 채택한 BEM 문서에 나타난 성찬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BEM문서란 1982년 페루의 리마에서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50년 고심 끝에 작성한 문서로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의 첫 머리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첫째로, 성찬은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드리는 찬양의 대제사”(4)입니다. “성찬은 창조와 구원과 성화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일에 대하여, 또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완성하심으로써 이루실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커다란 감사를 드리는 것”(3)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성찬은 우리가 베푼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푼 잔치에 우리가 초대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잔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여 계시고, 초대된 우리는 우리를 은혜의 잔치에 초대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힘껏 감사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성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어 하나님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식탁에 우리가 초대되었다는 사실은 특권이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성찬에 참여할 때 단정한 복장을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함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찬을 그리스도의 고난만을 기념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무겁게 행하여 왔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는 식탁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은 감사와 기쁨의 식탁이며, 아름다운 찬양과 정성으로 준비된 우리의 예물을 아울러 드림으로 맞는 축제의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가 성찬을 소홀히 하므로 하나님이 이룩하신 모든 창조와 구속의 역사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올바로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체험보다는 인간 중심의 예배가 되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기복적인 신앙 형태를 띠게 된 것도 창조와 구원에 대한 감사보다는 이기적 욕구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찬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anamnesis)”(5)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 구원의 사건을 오늘에 재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유월절 식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의 사건을 새로운 현재의 사건으로 재현해 온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기념은 아주 익숙한 것이었고, 역사적 예수의 성찬도 이런 배경 속에서 제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기념은 그 사건을 통하여 성취된 구원을 오늘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그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찬에서 말하는 기념에 대한 성경의 생각은 성찬이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예전으로써 거행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의 현재적 효과를 가리킵니다.”(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그가 이루신 모든 일들(성육종되심사역가르침고난희생부활승천성령을 보내심)과 함께 이 기념 속에 임재하며 우리와 친히 교제를 나누신다”(6)고 하므로 기념임재를 분리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친히 그와의 교제(communion)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코이노니아의 식탁임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2천 년 전에 일어났지만, 그 효력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참여하는 성찬 식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준비하신 것이며, 이 식탁의 주인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그의 구속받은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에도 성찬 식탁은 고난을 기념하기보다는 주님께서 이루신 승리를 축하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은총을 감사하는 축제의 자리입니다.

 

  셋째로, 이 성찬을 성찬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찬 때 우리에게 실제로 임재하도록 하시며, 성찬 제정 때 하신 말씀에 담긴 약속을 성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성찬을 가능케 하시며, 성찬식이 계속해서 유효하도록 만드시는 무한한 사랑의 힘”(14)이 되십니다. 성찬의 기념이 단순한 회상이 아닌 현재적 경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이 가능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찬 사건의 근원이 되시며 궁극적으로 성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성찬의 중심인 성육신 하신 아들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로 체험케 하시는 성령의 힘, 결국 성찬 안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를 동시에 체험하게 되는 것이며, 아울러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우리가 체험하게 됩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특히 성령의 은사에 깊은 관심과 체험을 가지고 있으나 성령의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므로 성령 운동이 대체로 잘못 전개되어 많은 부작용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성자와 나뉠 수 없는 연합을 이룬 성령이라면, 그의 역사 또한 성자가 이루신 구속의 사건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 운동은 은사 중심이 아닌 구속사 중심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성찬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자리입니다. “교회의 삶을 양육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성찬적 사귐은 동시에 교회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서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하나님 백성 공동체가 충분히 드러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성찬을 통해서입니다”(19). 성찬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가 확실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동시에 이것은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 확립만이 아닌 세계 공동체 확립에까지 확장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성찬 의식은 하나님의 한 가족 안에서 형제자매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 간의 화해와 동참을 요구하며, 사회경제정치적 삶 속에서 합당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촉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할 때 모든 종류의 부정의인종차별인종분리주의자유의 결핍이 근본적으로 도전 받게 된다”(20)고 하였습니다. 성찬에 참여한 우리가 이 세계 속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리고 불의와 분열과 교파주의 같은 것들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한 성도의 교제는, 이 세계 속에 깃들인 모든 악과 투쟁하여 마침내 모든 세계민이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성찬은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이 땅에 나타난 그 나라의 징표들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임해 오는 하나님나라를 기쁜 마음으로 기념하고 또 고대하는 축제입니다(22). 성찬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하나님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성찬은 미래의 이상적인 새로운 공동체를 미리 맛봄이요, 동시에 그것을 지향해 가는 밥상임을 뜻합니다. 성찬은 완전한 코이노니아가 회복된 미래의 공동체를 미리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 차별이 극복되어야 하며,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할 것을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찬을 거행하는 자체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BEM 문서에 나타난 성찬의 코이노니아는 세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

  둘째는 성도간의 코이노니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와의 코이노니아가 그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는 성부께 대한 감사의 제사(sacrifice)와 성자에 대한 기념(anamnesis)과 성령의 초대(epiklisis)로 이루어지며, 성도간의 코이노니아는 교회 일치로 발전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고, 세계와의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선교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참여하는 성찬 자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그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은총을 체험하면서 그 안에서 거듭난 자임을 확인한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세계와 우리 사회 속에 깃들인 모든 불의를 대적하며, 세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야 하겠습니다. 성찬은 단순한 회상의 자리가 아닙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자리이며, 그것을 미리 맛보는 자리입니다. “성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만들며,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유능한 증인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현실”(26)을 이룹니다.

  성찬의 이 깊은 뜻을 이해할 때 우리는 더 확실한 신앙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역사를 이 땅 위에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성찬의 이 모든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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