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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不定)한 하나님 (창조절 넷째주일, 2016.9.25)

mungge | 2016.09.29 12:50 | 조회 1379


(2015.10.25. 생태축제 한마당)

 

설교: 김준표 목사

제목: 부정(不定)한 하나님

본문: 사도행전 101~8

 

미션이라는 영화 다들 보셨는지요?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미션을 제가 좋아하는 영화 다섯손가락 안에 넣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건 정말 무지와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누구나 그렇듯 일탈의 달콤함을 꿈꾸고 누릴 때가 있었습니다. 부천에 도원극장이라는 동시상영 극장이 있어서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 하나가 저를 가끔 꼬셔서 데려갔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주 가끔이지만 두 편중 하나는 꼭 내용이 볼만한 개봉작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꼭 제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하는 성인영화였다는 겁니다. 그날도 친구는 저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는데,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니 미션’ ‘개 같은 내 인생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미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성인영화 제목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개 같은 내 인생을 보려는 마음에 친구 권유에 못 이긴척 따라 갔습니다. 저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원주민 과라니족과 함께 포루투칼 군대에 죽음으로 맞서는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의 모습을 보며 어렸을 적 가졌던 선교사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총을 들어야 하나, 십자가를 들어야 하냐 하는 선택은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은 제 예상과는 달리 길버트 그레이프로 유명한 스웨덴의 할스트롬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좋아했던 제 친구는 미션보다는 개같은 내 인생을 더 보고 싶어서 나를 꼬신 거였고, 저도 다른 목적이었지만 그 영화를 보려고 갔다가 동시상영하는 미션을 우연히 본 것이죠. 하여튼 돌이켜 보니 그 음침한 동시상영 극장에서 하나님은 저에게 새롭게 은혜와 소명을 주신 것이 확실합니다.

 

독일의 케제만이라고 하는 신학자는 21세기 신학의 주제는 선교이며, 모든 신학은 선교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선교가 우리 교회 미래에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 확실하며, 앞으로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라는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선교하는 교회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초대그리스도인들로부터 지녀왔던 교회의 당연한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는 성경이 사도행전입니다.

 

1. 사도행전의 틀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의 경계를 넘어 사마리아와 이방 세계의 심장부인 로마까지 퍼져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은 18절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명령에 따르면 복음의 증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 예루살렘 / 유대와 사마리아 / 땅 끝까지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썼을 것이라 여겨지는 누가는 이 주제 말씀에 맞추어 사도행전을 크게 4단계 틀로 완성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부활하신 예수의 말씀을 받은 제자들이 형성한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모습을 그립니다. 이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고 삶과 신앙을 함께 공유하는 초대교회를 세웁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1~5장에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넘어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까지 복음을 들고 나갑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며 성전과 공의회에서 예수의 부활을 당당히 외치던 제자들은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이 가하는 큰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예수님의 제자인 12사도들 이외는 모두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집니다. 이것이 6~9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사도들의 선교활동에 완전한 질적 변화가 주어집니다. 1, 2단계가 팔레스틴 이라는 배경무대를 바꾸지 않은 연극의 1, 2막이었다면 3단계인 3막에서부터는 배경무대가 완전히 바뀌면서 이야기의 분위기도, 등장인물도 새롭게 변합니다. 3막부터는 유대인들보다는 이방인들이 주된 배경과 등장인물이 됩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지던 예수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10~15장까지의 내용입니다. 나머지 16장부터 마지막 28장까지는 이방 세계의 땅 끝인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듯 사도행전은 주제의식이 뚜렷한, 아주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과도 같습니다. 오늘은 이 연극무대에서 독백으로 3막을 시작하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2. 유대인 베드로의 혼란

베드로는 혼란스럽습니다. 예수님이 명령하고 약속하신 바를 언제나 가슴속에 새기며 살고는 있는데, 어떤 경우의 말씀은 그 의미하는 바가 확실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임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종말의 때에 불러 모으시는 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는 아직 풀리지 않은 점들이 많았습니다.

베드로가 보기에 예수님은 분명 유대교 안에서 활동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거부하거나, 모세의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 하셨죠. 오히려 모세의 율법을 새롭게 해석해 주시면서, 그 율법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고, 이 사랑의 정신을 삶에서 제대로 실천해 내는 이들이 세상 마지막 때에 참 이스라엘 백성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포함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따라 개인이 가진 소유를 함께 나누며 구제와 기도에 힘쓰는 유대교 안에서 작은 예수추종모임을 만듭니다. 이들은 비록 예루살렘 성전에서 눈에 띄는 분파는 아니지만, 날마다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와 자선에 힘쓰던 이들은 스스로를 참 이스라엘 백성의 모임이라고 여겼습니다. 언젠가는 그들을 핍박하는 제사장들과 서기관, 율법학자들이 후회하며 그들의 모임으로 오리라 믿었습니다. 또한 구원의 빛이 온 이방인의 땅에 퍼지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더욱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지켜야한다고 굳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자꾸만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유대인 동포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였다는 증언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예수 추종자들에 대한 탄압과 위협을 날마다 높여갑니다. 얼마 전에는 구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를 뽑았었는데, 그 중 한명인 스데반 집사가 결국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수추종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되고,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지역으로 몸을 피하게 됩니다.

3. 이방인 고넬료의 이야기

이 시기에 베드로는 아주 특별한 사건을 또 하나 경험합니다. 산간지방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벗어나 서쪽 해안쪽에 있는 욥바라는 곳에 있을 때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에서 여제자 다비다를 죽음에서 살리는 기적을 베푼 뒤에 같은 이름의 시몬이라는 유대인 크리스찬의 집에 머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베드로가 무드장이인 시몬의 집에 머무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아주 최근입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가죽을 취급하는 무두장이인 시몬은 언제나 죽은 동물의 피를 손에 묻혀야 하기에 유대교 전통에서는 부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충실한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고 싶었던 베드로에게는 꺼림칙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무두장이 시몬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인 같은 유대인이었기에 정결규정에서 벗어나는 케이스라 여기며 마음을 다독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시장기가 도는 낮12시경, 기도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가 이상한 환상을 봅니다. 평소에 유대교 정결규정에 의해 부정하다고 여기는 네발 달린 각종 짐승과 곤충등이 담긴 그릇이 눈앞에 내려오고 배고플 테니 어서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속되고 부정한 것은 먹을 수 없다고 세 번씩이나 거절하며 신앙을 지켰는데,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스스로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었습니다.

, 요상한 일도 다 있네 하며 환상의 의미가 뭘까 생각 하는데, 갑자기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시몬의 집으로 웬 낯선 로마병사와 하인이 자기를 찾으러 옵니다. 욥바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50km 떨어진 가이사랴에서 고넬료 라는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 로마 총독이 거주하고, 로마군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던 번창하는 해안도시였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이었지만 유대교를 받아들여 온 집안이 하나님을 섬기고 유대 사람들을 많이 구제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도 전날 하나님께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다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데리고 오라는 환상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의 혼란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자신은 거룩한 참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모세의 정결법을 잘 지키며 동포인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왜 이 시점에서 부정한 사람인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야 하나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베드로뿐만 아니라 유대교에 충실했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왔는데, 로마사람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식탁교제를 갖는 것은 자신의 신앙의 틀을 벗어나고, 범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의해 억지로 이끌려 간 베드로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 모두를 불러 모은 고넬료 앞에 결국 서게 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고넬료는 주께서 베드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답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입을 열어 나사렛 예수가 하셨던 온갖 기적과 성령의 능력,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아를 증언합니다. 그러자 정말 베드로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거룩한 영, 성령이 말씀을 듣고 있는 이방인 고넬료의 사람들 모두에게 임한 것입니다. 거룩한 영,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게만 임하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120명 제자들이 경험한 오순절 사건처럼, 이방인들도 방언을 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과 신앙의 틀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눈앞의 광경에 불편하고 당황스러웠지만, 그때서야 자신의 머리를 치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4. 하나님의 선교

베드로는 고넬료 가정방문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은 열방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오리라는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이방인들이야말로 마지막때의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며 구원의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았어도, 모세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영, 성령을 통해 이제 하나의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또한 이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어느 인간의 능력이나 헌신에 의지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돌아보니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피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땅으로 흩어졌을 때, 그 시간은 교회가 패배한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새로운 선교의 역사를 시작한 때였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은 예수 복음 전파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의 기준에서 볼 때 접촉해서는 안 될, 부정한 인물인 고넬료에게 오게 된 것도 모든 것이 거룩한 영, 성령님의 인도였습니다.

여전히 오늘도 우리에게 유효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베드로와 고넬료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는 바들이 있습니다. 첫째, 생명과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누룩처럼 번져가는 하나님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저 거룩한 영의 인도하심에 귀를 열고, 마음을 모으고, 그 명령에 우리 몸을 움직이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명령인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할 때 만나는 장애물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한 생명을 해하지 못하는 이 땅의 권력 앞에 무릎 꿇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친히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자신의 비전을 이 땅위에 실현해 나가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우리의 기준안에, 통제 하에 두려고 하지 맙시다. 알량한 내 지식과 경험 안에, 혹은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교리 안에서만 하나님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고집속에 하나님을 가두지 맙시다. 우리의 복과 우리의 안녕을 위해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순간 그것은 곧 사라질 안개와도 같은 우상이 됩니다. 우상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셋째,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알기 위해서 모두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착각은 선교현장의 뜻밖의 사건을 만나면서 거룩한 영,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변화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이 교회 안에 머물고, 내 주관적인 경험에 머문다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나를 통해 타자나 선교현장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치열한 고난의 선교현장을 통해 나와 우리 신앙공동체가 도전을 받고 건강하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보혈로 온피조물을 깨끗게 하셨음으로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 부정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그 한계와 끝을 정할 수 없는 부정한 존재임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를 신뢰하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선교현장에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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