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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창조절 셋째주일, 2016.9.18)

mungge | 2016.09.18 17:28 | 조회 1600


(2015.10.26. 추수감사예배 전경)

설교자: 김준표 목사

제목: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본문: 마가복음 1228~34, 요한1416~18

 

1. 추석명절의 가족풍경: 사랑이 넘치는 가족

우리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연휴를 보냈습니다. 귀향길, 귀경길 모두 안전하게 잘 다녀오셨는지요? 뉴스에서 전해주는 연휴기간 중의 사건, 사고 소식은 다른 때보다 더욱 안타까움을 갖게 합니다.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끼리 화목한 시간을 보내기보다, 재산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다투다가 결국엔 불까지 질러서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했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실제 우리가 주변에서 둘러보면, 그런 다툼과 불화의 가족보다는 웃음꽃이 피고, 진한 가족애를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성도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 형제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시는 부모님의 손길을 어루만지며 가슴이 아파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형제자매들이 고맙고 자랑스럽지 않던가요? 저는 가족들을 만나며 가족이 주는 큰 사랑과 믿음에 다시 한 번 삶의 용기를 한 아름 안고 온 기분입니다.

가족은 어느 이익단체와는 다르게 혈연으로 묶여 있고, 그래서 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바탕이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가족을 만날 때마다 사랑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고, 사랑의 나눔이 있는 식탁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표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사랑의 공동체, 가족

그래서 가족 안에서는 나의 허물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가 뻔뻔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부족하고 연약한 점을 가족들은 손가락질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내가 그동안 저질렀던 실수와 잘못보다는 앞으로 감당해 나갈 선한 일에 대해 무한히 격려해 줍니다. 어릴 적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든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가족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허물보다는 가능성을 더욱 크게 믿고 바라봐주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고전13:7)“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러한 사랑이 나눠지고 경험되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과 관계가 가족입니다. 이 우주에 종말이 오고, 온 세상이 무너져 내려도 끝까지 사랑의 공동체를 유지할 기본단위는 가족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더욱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한평생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고 애쓰며 사신 그분들의 삶을 볼 때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요즘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매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부모만큼 자식의 인생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님이야말로 자녀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험한 파도가 물결치는 세상에서 자녀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항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3. 죽음과 맞바꾼 사랑(효모세포의 선택)

부모님은 자녀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입니다. 무언가를 되받기 위함이 아닌, 계산 없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통해, 혹은 부모가 되어 가면서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위대한 것은 인간이 죽음과 맞바꾼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금은 어렵지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먼 옛날, 그것도 아주 먼 옛날, 신이 지구상에 생명을 탄생 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지구라는 에덴동산에는 세균들이 세포분열을 통해 무한한 자기 복제를 하면서 영생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자신을 복제해내는 일에만 열중해 있던 세균들은 평소와는 달리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생각에 잠겨 있는 효모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왜 그러니?” “모르겠어. 그냥 사는 게 지겹고 시들해.” 별소리 다 들어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세균들은 곧 다시 자신들의 일에 열중합니다. 하지만 효모균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균들은 효모균이 미쳐버렸다고들 수군거렸고, 그 소문은 조물주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왜 그러느냐?” “매일이 똑같고 모든 게 뻔한데 이런 식으로 영원히 살면 뭐 하나 싶어 그럽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조물주가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습니다. “좋다. 그럼 너에게 짝을 만들어주마. 그런데 문제가 있다. 너는 이제 그 짝과 사랑이라는 것을 나누게 될 텐데, 그러려면 네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하는 지금의 방식과는 달리, 네 유전자와 네 짝의 유전자를 번갈아 복제하는 교차복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에는 염색체의 맨 끝부분이 복제가 되지 않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따라서 일정 횟수에 달하면 더 이상 세포분열을 할 수 없게 되어 점점 늙어가고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대신 유전자를 나눠 가짐으로써 네 후예들은 한없이 다양해지고 점점 더 진화하게 될 것이다. , 어떻게 하겠느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효모균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택을 합니다. “사랑을, 그리고 죽음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래서 효모균은 다른 세균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의 짝과 더불어 죽음으로 향하는, 그러나 사랑이라는 가치를 품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번역한 이상해님이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인간 게놈 6부작>중에서 생명시계의 비밀편을 보고 한낱 세균이 죽음을 전제로 한 교차복제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오늘날의 인류로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과학적 사실과,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설의 내용을 엮으면서 창세기 1장의 내용을 나름 다시 써본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진화론이니 창조론이니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로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자기복제를 통해 영원을 살아가는 단세포와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몸은 수십조의 세포들로 이뤄지는데, 매일 백억개의 세포가 새롭게 생겨나고 사라지면서 인간은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인간은 무한히 분열하며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대장균과는 달리 띠모양의 DNA를 가지고 있는 효모균처럼 언제나 후손에게 재조합된 새로운 가능성의 유전자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제한된 수명을 받아들이는 운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를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생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혹여나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먹을까봐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범한 최초의 인류에게 내린 벌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조그만 신체적 노화 현상에서도 죽음의 현기증을 쉽게 느낍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 없이 죽음의 자각을 분명히 한 인간만이 삶의 가장 으뜸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세포도 우리 귀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무한한 자가복제를 통해 불로장생하는 것보다 유한한 교차복제를 통해 사랑을 나누며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라고 말입니다.

부모님과 우리 선조들은 몸 그대로의 영생을 꿈꾸지 않고, 사랑을 통해 그분들의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을 낳고 기르셨습니다. 부모님들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태우고, 그 에너지로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게 밀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추구하고 목표해야 할 가치가 사랑임을 깨닫게 합니다.

4. 예수님의 사랑과 죽음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간 후 당시 이스라엘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 바리새인들과 논쟁하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앞 본문에서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이어서 서기관 한 사람이 나와서는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시험하듯 물어봅니다. 이때 예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관통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와 하나님과 다른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모든 번제물보다 나은 것이라고 질문한 이가 맞장구를 치자,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이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나요? 성서를 보면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이다 하고 비유로 많이 말씀하시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비유로 이야기 하신 것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 몸으로 분명히 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음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의 죽음과 맞바꾼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달콤한 말로만 속삭이는 거짓 사랑이 아닌, 죽음과 맞바꾼 진실한 사랑입니다. 자기중심에서 쓰여진 자기만족적인 사랑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나누는 그런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기 안에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필요함을, 나의 결핍을 고백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게 자기 속을 비우고, 자아를 죽이고, 다른 이들을 내 생명의 중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에 혼자 완전한 상태가 되어서 홀로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의 우리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이 힘들게 느껴집니까? 불가능하다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본이 되어주신 예수님이 이미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이 사랑을 전해 주셨습니다. (요한14:18)“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우리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을 선택합시다. 우선 우리의 가족을 사랑의 공동체로 만듭시다. 그리고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우리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웁시다. 이 사랑의 길 위에서 만나는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생명의 부활이라는 환희와 기쁨의 그것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 정호승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너는 어찌되었던지

나만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마음대로 네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다가 죽어야 하는데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죽어야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나를 살리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너를 살리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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