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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곤경, 하나님을 아는 기쁨(창조절 둘째주일, 2016.9.11)

mungge | 2016.09.18 17:11 | 조회 1696


(2016.9.4. 광화문에서 단식중인 세월호 유가족 방문, 기도회)

설교자: 김준표 목사

제목: 큰 곤경, 하나님을 아는 기쁨

본문: 사무엘상 301~6, 시편143

 

다윗의 곤경

이번 주는 이상하리만큼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자살소식이 많이 들려 왔습니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어렴풋이 짐작해보면 거대한 장벽에 둘러싸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의 공포와 무기력감, 끝 모를 어둠의 터널을 지나갈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까닭모를 죽음의 공포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삶의 고통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있으십니까? 덫에 걸린 새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힘찬 날갯짓을 하지만 그때마다 날개가 부서지고, 무기력함에 덫에 무릎 꿇고 절망감만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다윗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어떤 인물로 그려집니까?

다윗은 가장 부유하고 강력했던 통일 이스라엘 국가의 이상적인 성군입니다. 그는 이미 어렸을 때 블레셋 군대의 9척 장신 골리앗 장군을 돌팔매질로 쓰러뜨렸던 이스라엘의 영웅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은 예루살렘을 마저 정복해서 이스라엘의 수도로 만들었고,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기 위한 준비로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옮겼습니다. 밧세바를 아내로 얻기 위해 죄를 범하고, 그 벌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겪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평생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휘황찬란한 궁전 생활을 한 왕으로서 그려집니다. 다윗은 가나안 땅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 복종시켜서,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이스라엘을 만든 왕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미래의 메시야가 그의 후손 중에서 나올 거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성서 이야기를 들여다보십시오. 다윗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는 왕이 되기 전이나 그 후에도 언제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장 비참하고 위험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잘 보도되고 있는 사무엘상하를 읽어 보십시오. 평안한 축복의 삶보다는 온갖 전쟁터에서 쫓기 쫓기는 인생을 살며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맛보는 것이 일상적인 다윗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서른 살에 왕이 되었고,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전합니다.(삼하5:4) 그런데 다윗이 예언자이자 사사였던 사무엘에게서 처음 왕으로서 기름 부음 받은 시기는 아주 젊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아직 살아 있을 때에 기름 부음 받은 것이지요. 그때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윗은 사울의 뒤를 이어 정식으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기 전 10여 년 이상을 사무엘상에 나와 있는 대로 사울왕의 살기띤 눈을 피해 살아야 했습니다. 다윗이 경험한 죽음의 순간을 나열해 보면, 바로 눈앞에서 던지는 사울의 살기 띤 창을 두 번이나 피했습니다.(삼상18:11) 자신을 죽이러 집으로 찾아온 사울의 병사들을 간발로 따돌리고 창문으로 도망쳤습니다.(삼상19:12) 이스라엘과 원수 맺고 있던 블레셋 땅으로 망명을 가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미친 척 하기도 했고, 때로는 이스라엘을 배반하고 블레셋 왕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에 망명을 가기 전에는 동굴에 숨어 살고, 광야에 도피해서 600명의 무리들과 도적떼처럼 다른 성읍을 약탈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고통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눈을 피해 동굴과 광야에 숨어 살다가 결국 못 견디고 원수의 나라 블레셋에 망명합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 14개월 동안 머물며 살면서 그의 충신처럼 가장하며 산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드 왕 아기스가 이끄는 블레셋과 사울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이 큰 전투를 벌입니다. 이때 아기스는 다윗을 자신의 충신으로 여기고 함께 전쟁터에 데리고 나가지요. 다윗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데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기스 왕의 신하들은 전쟁터에 나가 다윗이 갑자기 돌변하여 반역을 하면 더 큰 일이 일어난다면 다윗을 자신들이 머무는 성으로 돌려보내라고 항의합니다. 결국 다윗은 조국을 배반한다는 꼬리표를 갖지 않게끔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그들이 거주하는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니, 그런데 아뿔싸.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집트로 내려가는 사막에 머물며 살고 있는 아말렉 족속이 그새 다윗이 머물던 성을 침입해서 온 성에 불을 지르고, 성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잡아 간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다윗이 아말렉 족속으로 가 그들을 약탈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다윗의 부하들은 더 이상 울 힘이 없어 지칠때까지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들의 재산과 가옥이 사라진 것은 견딜 수 있으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이 사로잡혀 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광야로 몸을 피했을 때 다윗에게 몰려든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 압제를 받거나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서 도망친 사람들이었고,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였으나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한 밑바닥 사람들이었습니다.(삼상22:2) 이들은 그동안 다윗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삼고, 잘 따랐지만 결국 이 시련앞에서 마음이 돌아서고 강팍해졌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분노와 원망으로 변하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그들의 다윗을 죽이자고 웅성거립니다.

다윗에게는 정말 난감하고,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 상황입니다. 다윗 또한 부하들처럼 아내와 자식을 잃어서 똑같은 고통과 절망을 겪고 있는데 서로를 위로해 주고 그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지도자가 되는 다윗에게 모든 책임의 화살을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윗의 상황이었다면 참지 못할 괴성을 지르며 더 큰 분노를 부하들에게 돌렸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무엘에게서 기름 부음 받아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축복의 예언을 받았고, 사울왕의 젊은 장군으로서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서, 많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던 20대의 전도유망한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기와 질투의 영에 사로잡힌 사울왕에 의해 매 순간 죽음의 위협을 당하며 10여년을 광야에서 숨어 살거나 적군의 땅에서 빌붙어 살게 되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잠시 블레셋의 북쪽 전투지역에 출정했다가 와보니 사랑하는 모든 가족과 재산을 잃었으니 얼마나 큰 슬픔에 잠겼겠습니까? 게다가 자신에게 도망쳐 온 그 잡다한 무리들을 훈련 시켜서 용맹한 군사로 만들어 주고, 가족을 꾸릴 정도로 먹을 것과 살 곳을 마련해 주었는데, 이들이 갑자기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로 돌변했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분통한 상황이겠습니까?

이때 다윗의 태도를 보면 우리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곤경에 빠진 다윗은 이 상황에서 분명 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6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이 본문을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번역합니다. 다윗은 이 절망과 분노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말이 쉽지 어떻게 이 순간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 상황을 극복할 용기를 얻었을까요? 물론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되어 잃었던 모든 가족들을 되찾게 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다윗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고, 절망적인 순간입니다. 믿었던 부하들과 동료들에 의해 언제 죽음의 절벽으로 밀쳐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보여주는 다윗의 태도는 분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의지함으로 용기를 얻었고, 그 다음에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고 움직여야 할지를 하나님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에게 이 사건과 문제의 결과에 대해 묻고 희망적인 답변이 주어지니 용기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어떻게 끝나든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은 것입니다. 다윗의 이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쓰고 찬양으로 불려진 시편을 펼쳐보았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을 읽으며, 곤경에 빠진 다윗도 우리처럼 똑같이 두려움과 절망감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57:4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들 한가운데 누워 있어보니, 그들의 이는 창끝과 같고, 화살촉과도 같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과도 같습니다.”

142:4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고, 내가 피할 곳이 없고, 나를 지켜 줄 사람이 없습니다.”

143:4, 7 “내 기력은 약해지고, 놀란 심장은 박동조차 멎어 버렸습니다.숨이 끊어질 지경입니다.”

 

하나님을 알다

그런데 다윗은 놀란 심장이 멎어 버리고,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를만큼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34:1~2 “내가 주님을 늘 찬양할 것이니, 주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내 입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 블레셋 왕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다윗의 시

57:8~9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주님, 내가 만민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뭇 나라 가운데서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 사울을 피하여 동굴로 도망하였을 때 지은 다윗의 시

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멈추지 않는지 또 그의 시 속에서 찾아보았습니다.

8:3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9:10 “주님, 주님을 찾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므로,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

11:4,7 “주님은 그의 눈으로 사람을 살피시고 눈동자로 꿰뚫어 보신다.주님은 의로우셔서, 정의로운 일을 사랑하는 분이시니, 정직한 사람은 그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

22:24 “그는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다윗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의 선조들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그의 일상의 삶속에서 분명히 체험해서 깨닫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옛날 자신의 백성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건져 주셨는지,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생명의 선물을 어떻게 자신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지 다윗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이 우주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이 피조세계의 참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고통받고 억압받고, 억울한 이들의 애통함과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찾는 사람을 눈동자처럼 살피시고, 그 얼굴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는 이들의 피난처 되시고, 굳건한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진정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에,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그 어리석고, 위태로운 호들갑에 동조하지 않은 것입니다. 히브리 성서에서 알다라는 뜻의 단어는 야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의미가 아니라 경험을 내포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창세기41절에서 아담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니라고 할 때 동침하다의 뜻으로 야다히브리어가 쓰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무엇을 안다는 것은 삶의 가장 은밀한 것조차 나누고 공유하고 실제로 체험해서 분명하게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물어보겠습니다.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그분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체험하고, 어떻게 고백하고, 어떻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로 고백할 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한다면 그 분을 알려고 노력해야지요.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역사가 구구절절 신앙의 선조들에 의해 고백되어진 성경의 말씀에 귀기울여야죠.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와 역사로 임한다는 믿음이 있어야지요. 하나님이 이끄시는 자유와 해방과 구원의 현장에 달려가서 그 분을 만나야지요. 그러니 언제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과 진실이 그지없으신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위대했던 것은 큰 권능이 있고 뛰어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과 해방의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어떤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그 분을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16:2,5 나더러 주님에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20:7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다윗의 이러한 진실한 고백이 우리 삶에서도 찬양과 기도로 이어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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