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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는 공동체 (성령강림후 여덟째주일, 2016.7.10)

mungge | 2016.07.12 16:00 | 조회 1979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이 땅위에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전진기지와도 같은 신앙공동체입니다.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하나님의 주권만을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가늠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 나라의 표지입니다.

이제 교회가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입니다. 교회는 믿는 이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의 뜻에 합한 예배가 될까요?

 

유대교에서는 성서를 율법서와 예언서, 성문서로 구분합니다. 율법, 예언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과 그들을 역사 속에서 이끄신 하나님의 구원 행위 기록한 것이고, 성문서(시편, 지혜문학)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인간편에서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닏.

시편은 이스라엘의 예배전통에서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던 신앙고백 노래입니다. 아마도 시편을 편찬하게 된 것은 포로기 이후 제2성전시대이후(주전 516)의 필요성 때문일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제2성전을 건축한 이스라엘은 성전예배를 회복함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야훼에 대한 예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언약공동체로 재확인 하고자 했습니다.(8) 예배를 통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야훼를 믿고 찬양하기 원했습니다.

시편은 개인노래 형식을 빌리기도 하지만,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가 공적인 예배를 통해 공유한 신앙고백문과도 같습니다. 우리교회가 창립50주년 희년을 맞아 함께 만들어낸 신앙고백문과 같을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국가라는 권력과 조직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삶을 보장하고 언약을 지키시는 역사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찬양을 예배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찬양시를 통해 구약의 예배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상상해볼까요?

 

오늘 읽은 본문 시편105편은 역대기상168절부터 또 한 번 나타납니다. 역대기상 16장은 다윗왕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주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찾아오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때 올린 감사의 찬송입니다. 16:5을 보면 이들은 감사 찬양을 할 때에 거문고와 수금을 타고 심벌즈를 우렁차게 치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를 동원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렸습니다. 구약시대에 다윗왕과 그 백성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창조능력, 예술적인 창조능력을 예배에 동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역사를 시로 쓰고, 그 시에 곡을 붙이고, 곡을 여러 악기를 동원해 표현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무아지경에까지 이르러 자신의 옷이 흘러내리고 맨살이 드러나는 것도 몰랐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내 미가는 그것을 보고 건달패들이 체통없이 맨살을 드러내며 춤을 추는 듯하여 천한 사람처럼 보였다며 다윗을 비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다윗의 찬양과 예배가 얼마나 신명나고, 역동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찬양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찬양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찬양 안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이 찬양을 통해 우리는 구원의 축제로서의 살아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다윗의 예배뿐만 아리라 신약시대인 초대 교회에서도 예배는 역동적인 축제의 장, 마당이었습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의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시작된 것이 오늘 우리에게 이어지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 자체가 얼마나 역동적 사건입니까? 로마 정치권력과 유대교 종교권력에 의해 저주받은 십자가형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던 30대 초반의 청년 예수가 다시 살아났고,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부활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에게, 혹은 오병이어와 병고침의 기적을 체험했던 백성들에게, 혹은 예수를 죽여야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저항과 부정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부활사건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할 말도 많아지고, 가슴도 뛰게 만들고, 누구에게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축하는 예배 자체도 역동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러한 축제적인 예배의 성격은 오랜 역사를 통해 의식이 되고 예전이 되면서, 원래의 역동적인 성격이 희석되거나 퇴색되었습니다.

오늘날 예배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성도 여러분들은 이 예배당에서 함께 구원받은 형제자매들과 한 자리에 앉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으로 다시 결단하는 이 순간이 가슴 뛰는 기쁨의 시간입니까? 습관에 의한 교회 나들이입니까? 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면 큰 벌이라도 받을까봐 두려운 마음에 앉아 계십니까?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리는 축제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1. (2) 예배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하는 자리입니다. 앞선 104편에서 시인은 창조세계를 보존하시고, 피조세계를 보호하시며 돌보시는 주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오늘도 그 생명을 온전히 보존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일상의 구원 능력입니다. 이것을 알아차린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노래 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33) 매일 우리에게 생명의 호흡을 거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창조의 영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은 찬양받아 마땅하신 분이십니다.(29~30) 105편은 이어서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역사현장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노예였던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떠돌아다니던 이스라엘 백성을 맛나와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알지 못하면 우리의 예배는 힘없는, 역동성을 잃어버린 예배가 됩니다.

2. (5, 8) 예배는 주님이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굳게 약속하신 언약을 되새기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자신이 행하신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고, 그 약속대로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절대적인 신비의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드러내시고, 우리 삶의 인도자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 세상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계시는 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과거를 현재화 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사건을 회상함으로 끝나지 않고, 언약에 충실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오늘의 현재 이 공간 속에서도 똑같은 능력과 주권을 행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언약을 믿는 우리들이라면 이 예배를 진정한 찬양과 기도와 헌신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배는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 있는 예배 공동체의 삶의 표현 속에서 원래의 역동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지난 2000년의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중요한 시기마다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갱신하는 과정에서 항상 병행하는 것은 예배의 갱신운동이었습니다. 프랑스 남쪽에 위치한 떼제 공동체나 라틴 아메리카 기초 공동체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공동체는 1960년대 말부터 교회가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과 결단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군사 독재자들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이 극에 달할 때에 해방신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근본적으로 유럽의 교회와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그 이유는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는 가난한 자의 교회이며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들은 기초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것은 각각 10~30명 정도로 구성된 지역교회로서 성경을 연구하고 음식하수처리전기 같은 해당지역 교구민들의 긴급한 필요를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수많은 기초 공동체는 평신도 지도가가 이끌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형성되었고 이것은 한국의 7, 80년대의 민중신학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떼제 공동체는 개신교 수도자인 로제 수사가 그리스도인의 분열을 치유하고 그리스도인들의 화해를 통해 인류의 갈등을 극복하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든 공동체입니다. 19408, 스물다섯 살의 청년 로제는 동부 프랑스의 작은 마을 떼제에 홀로 와서 정착합니다. 유럽이 분열하고, 파시스트, 히틀러가 등장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인류의 희망을 잃어버린 고난의 한복판에서 매일 매일 화해를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서 온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독일군 포로들을 맞이했습니다. 그 뒤 차츰 다른 형제들이 동참하며 1949년 이들은 공동체 생활과 독신, 단순하고 소박한 삶으로 자신들의 일생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서약하고 작은 예배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21세기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국 선교사가 발을 내딛은 200년전부터 이 땅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이 아니라, 지난 5,000년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구름기둥으로 구원하여 주셨듯이, 우리 민족의 한맺힌 슬픈 역사속에서 언제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러했기에 이씨조선 500년 역사와 36년의 일제치하와 3년의 한국전쟁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으로 이렇게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경험한 구원의 경험을 가지고, 살아 뛰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배 내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동방 교회는 서서 드리는 성만찬 중심의 찬양 예배가 전형을 이루었고, 서방 교회는 무릎을 꿇고 드리는 미사 중심의 성례전적 예배가 전형을 이루었으며, 이에 반하여 개혁 교회는 앉아서 드리는 설교 중심의 듣는 예배가 전형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양에서 전달된 예배의 형식에 매여, 생동감과 역동감을 잃어버리는 예배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찬송가를 보십시오. 국악찬양과 우리의 악기로, 성도님들이 좀더 참여할 수 있는 예배를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우리를 변화 시켜 주시고, 새로운 삶의 결단을 이끌어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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