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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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 속에서(사순절 다섯번째주일, 2017년4월2일)

하늘기차 | 2017.04.02 14:13 | 조회 1274


                     이런 일들 속에서

사순절 다섯번째주일                                                                                             창22:1-4;5:7,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는데, 아버지 데라는 노아의 세 아들 중 셈의 자손으로서 나무를 깍아 우상을 만들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우르를 중심으로 금속공예가 발달하여, 도금을 입힌 화려한 우상이 등장하면서 나무조각 우상이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셋째 아들 하란을 잃고, 장남 아브라함에게는 아이가 없어 고향에 남아 있을 이유를 상실하여 우르를 떠나 하란에 정착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의 후손인데, 원래 셈의 자손들은 아라랏산 주변인, 지금의 아르메니아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하며, 그렇다면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도착한 곳은 사실 데라의 고향이며, 갈대아 우르에서의 생활을 접고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창세기의 족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거의 대부분 우상숭배에 젖어들었고, 그나마 셈의 자손들이 하나님 신앙을 근근히 이어 왔는데, 데라 역시 달의 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는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며 살았던 것입니다. 데라가 우르를 떠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물론 아들을 잃고, 직업을 잃기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당시 가장 화려한 최고의 문명을 구가하던, 우상으로 가득했던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낸 것입니다. 그러나 데라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다가 세상을 떠났고, 아브람 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조카 롯을 데리고 아내 사래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이렇게 아브라함에대해 추론한 것은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 중에서도 오늘 본문과 연관된 자녀를 바치는 몰렉숭배는 이스라엘에서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 왔습니다. 왕권시대에도 아하스왕과 므낫세 왕은 흰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녀를 공공연히 바쳤습니다. 소머리 모양을 한 거대한 동으로 된 동상에 불을 피워 자녀를 바치는데, 아이들의 고통소리를 들으면 부모의 마음이 바뀔까봐 사제들이 북을 계속 쳤다고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 일정부분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자녀에게 투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의 분신인 자녀를 희생시키며 까지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모의 목적 때문에, 자신의 못 다한 욕망을 자녀에게 투영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식이 내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자식은 내 것이 아닙니다. 자식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1927년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SF영화인 메트로폴리스라는 무성영화를 보면, 뉴바벨탑이라는 거대 도시에 상류층 사람들이 사는데, 지도자의 아들 프레드가 지하세계의 한 여인을 사랑하여, 지하세계로 내려갑니다. 프레드는 지하세계 공장에서 기계결함으로 뜨거운 가스가 분출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상해를 입고 괴로워하면서도 강제로 공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보자 '몰렉!'이라고 외칩니다. 그 순간 공장의 입구가 거대한 몰렉 상으로 서서히 변하면서 노동자들을 집어삼키는 환상을 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희생을 통해 누군가 이익을 얻으며, 목적을 달성하는 시스템이 작동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오늘 말씀 속에서 더 이상 자녀희생은 그만 이라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은 제사와 번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10:10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희생을 종식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일상 속에 우상숭배는 항상 넘쳐나고, 인간들의 전체주의적인 시스템과 도시문명은 힘없는, 소외된 자들의 끊임없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당신 하나로 족하다는 선언입니다  

 이 달 24일 부산에서 열리는 '마을을 섬기는 시골·도시 교회 워크숍'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기교회 소개 글에서 그냥..가게를 나눔가게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것, 나에게 있는 것, 아니면 여분의 것을 나눈다는 좋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인들은 한 번 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것, 나의 여분의 것을 기부하는 것이 라고 하는데, 성경은 내 몸의 일부를, 아니 내가 누리고 있는 것, 더 나아가 내 생명을 내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이 그렇게 자기 생명을 내어 나눕니다. 교회가 나눈다는 말을 합니다. 무엇을 나누나요, 먹을 것, , ,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 그렇게 할 때 낸다는 말이 맞습니다. 기부가 아니라 내 몸을 내는 것입니다. 궁극에 내 생명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피조물의 먹이 사슬 피라밋의 최 상위에 있다 보니 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너무 오만해 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그러한 내는 일을 잘 소통케 해야 하는데,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상 기후도 역시 그러한 인간의 오만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생명을 내는 것을 잊어버린 인간들에게 내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첫 부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협상하기 위해 찿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주 해 온 초라한 난민입니다. 그런데 강해진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자고 찿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24절에서 맹세합니다라고 선언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렇게 세상과 맹세를 하고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찿아오셔서 시험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들의 삶 속에 개입해 들어오십니다. 이 역사 속에 분명히 찿아 오십니다. 아니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이 번 탄핵도 하나님이 오늘 이 시대의 수 많은 몰렉제사에 희생된 바벨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였을까요? ‘이런 일이라는 서두는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우리는 세상 약속과 하나님과의 약속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상일이 늘 파도처럼 왔다가 가곤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수 많은 이런 세상의 일들, 가치들, 소리들 속에 파묻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세상일에 익숙해져 갑니다. 협상하고, 타협하며, 아들 이삭도 족장으로서의 역할하기에 부족함 없이 잘 자랍니다. 가나안의 대표되는 부족의 수장인 아비멜렉이 찿아와 화친을 하자고 합니다. 그렇게 잘 나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모리아땅으로 가서 아들을 바치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였을까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리 세상의 일이 다 잘되고 순탄하여도, 이런 일들 중에 하나님이 빠져있다면, 우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리아산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고 합니다. 4절에서는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흘길에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하나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필립 그로닝이라는 독일 감독이 제작한 위대한 침묵(Die Große Stille)이라는 다큐가 있습니다. 프랑스 알프스 정상에 있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에 사는 수사들의 일상생활을 담고 있는데, 1984년 필립 그로닝은 수도원 측에 수사들의 삶을 담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제의를 하자, 수도원측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였고, 그로부터 16년 후, 필립 그로닝에게 그가 여전히 영화를 찍고 싶은지 여부를 물어본 다음 마침내 영화를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해줍니다. 그로닝은 2002년에 6개월 동안 오직 혼자서만 촬영하고 녹음하였고, 인공조명도 일체 쓰지 않습니다. 영화는 거의 나레이션이나 음향 효과를 넣지 않고, 단지 수도 생활의 영상과 소리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는 그 다큐를 찍어 세상에 내어놓는 긴 과정, 무려 18년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독이 수도원의 침묵을 찍은 것인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침묵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의 말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끊임없이 벌레, 바람, , 교회 종소리, 찬양, 기도의 소리가, 그리고 고요히 침묵의 소리가 들립니다. 침묵의 소리 들어보셨나요? 우주가 움직이는 소리 말입니다. 너무 커서 안 들릴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소리는 얼마나 클까요? 오직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침묵할 때 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은 침묵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으로 향하는 사흘간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침묵의 소리에 집중을 하였을 것입니다. 주님도 체포되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침묵하십니다. 빌라도가 진리이신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물으셨을 때에도 역시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의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적인 소리만 내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꼭 기억해야할 것은 세상은 몰라도 성도는,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 침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침묵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시험당하는 사람과 그 함께하는 모두를 살리는 생명으로의 초대입니다. 그 때 이런 일들, 소리들, 가치들, 관계들을 끊고 침묵으로 말씀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께 나도 침묵하며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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