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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것(사순절 세번째주일, 2017년 3월19일)

하늘기차 | 2017.03.19 19:41 | 조회 1371



                                 처음 것

사순절 세번째주일                                                                                  막12:41-44;출13:11-16

  예루살렘 성전의 여인의 뜰에는 각기 기름, 포도주, 곡식 등의 제사에 사용할 명목의 13개 헌금함이 놓여 있었는데, 한 과부가 두 렙돈 동전을 넣은 것을 주님이 보시고 이 과부는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요즘도 교회를 방문하면 교회 입구에 헌금 내역 별로 여러 종류의 봉투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교회는 아예 헌금 봉투가 없습니다. 그러구 보면 우리 교회는 불친절하고, 까칠합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교회는 불친절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 그 나라, 그 이름에 만 집중하려 하다 보니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2, 3년 예배를 드리며,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어수선한 것 같지만 따뜻한 내적 질서가 엄연히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헌금에 대해서 저는 두 가지입니다. 십일조와 감사입니다. 물론 구약성서는 속죄, 속건, 화목, 번제, 소제 등 여러 제사에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연보라고 하여 구제에대한 헌금도 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서, 아브라함, 그리고 말라기서 외에는 그리 많이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처음 것이라는 것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먼저라는 것에대한 비논리적인 자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교회에 갈 때면 꼭 헌금을 따로 챙겨서 교회에 보내신 기억이 납니다. 직장에 다니며 첫 월급을 받을 때, 어머니의 말씀대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데, 당연히 드리는 나도 기쁘게 드립니다.

 

 

   여러분 고등래퍼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최근 어느 종편에서 진행하는 고등학생 서바이벌 랩 경쟁프로인데, 심사위원 중에 한국 랩을 평정했다는 스윙스라는 랩퍼는 쇼미더머니라는 랩 경연대회에서 상대 랩퍼와 배틀을 하며 랩을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랩에서 치명적인 실수는 리듬을 잃거나, 가사를 까먹는 것인데, 이 친구는 그런 실수도 즐기드라구요. 그러니까 다른 경쟁자들이 그 즐기는 모습에 소름이 끼치는 거예요. 더 할 말이 없는 것이지요. 즐거워하는 모습 만큼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신앙은 즐기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의 잔치요, 축제입니다.

     제가 헌금을 기쁘게 드리는 두 가지 동기 중에 하나를 처음 것이라고 했는데, 그 근거는 출13, 무교절절기에 대해, 1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약속한 땅을 얻게 되면 처음 나온 모든 것을 주께 바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혹 ‘너희 자손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 가?’ 라고 묻거든, 주님께서 강한 팔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우리를 이끌어 내실 때, 바로가 고집을 부려, 사람을 막론하고 그 땅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죽이셨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도착을 하면 처음 난 것을 주님께 바쳐 맏 아들을 대속하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헌금은 생명입니다. 헌금은 내가 지금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일하며 활동하는 모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내가 먹어야 하고, 누군가 나를 위해 대신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순환입니다. 헌금은 이런 생명의 순환 속에 내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 헌금의 동인입니다.

   재 작년에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여기서 작가 이타루는 빵에 교묘하게 사용하는 첨가제, 영향강화제, 농약, 색소, 인공이스트, 수입되는 밀가루를 거부하고 자연농법의 밀가루를 사용하고, 순 자연 발효, 자연균을 사용하여 빵을 만듭니다. 모든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부패하는데, 인공적으로 배양된 이스트는 밀가루를 일정 기간 썩지않게 하여 인공 식품 가공물들을 부패시키지 않게 하여서 일반 가게에서 사고 파는 싸구려 먹걸이들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헤치며, 또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에게 있어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타루는 이러한 인위적으로 부패하지 않게하여 이윤을 확대하려는 것이 자본의 논리라고 하면서, 정신이 확 깨는 이야기를 합니다. 돈이야 말로 모든 피조물들이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부패하는데, 자본은 부패하기는 커녕 끊임없이 돈을 확대하며 끊임없이 불러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타루는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의 노동자의 존엄성,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는 자본의 논리와 반대되는 거꾸로의 빵만들기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의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여, 천연의 균들이 만들어내는 기분좋은 빵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빵집경제를 이타루는 ‘부패하는 경제’라고 부르면서 그 핵심은 발효, 순환, 이윤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라고 합니다. 그 빵집에서는 빵을 30가지 종류를 만든다고 합니다.

     자본이 우리의 삶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 어디 빵집 만이 겠습니까? 핵발전소, GMO식품, 기후온난화, 제주도의 구렁비가 어떻게 무지막지하게 파괴되었는지, 지금은 사드, 세월호, 백남기 농민 . . .이런 세상의 정황 속에서 생명을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에대한 자기 고백 없이는 내가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바침은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연결 고리입니다. 그냥 늘 소비적 삶에 지쳐 욕망을 분출하는 일에 매여 살다가, 헌금을 드릴 때면 나를 생명의 사람으로 우뚝 세웁니다. 즉 생명 정의, 생명 평화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그 절정에 다다른 자본의 시대 속에서 ‘나는 자본에 휘들리지 않는다’라는 자기 고백입니다. 하나님 만이 자본우상을 극복케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자본으로 자본을 거부합니다. 구제하는 연보 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종종 교회 헌금은 연보로 족하다 라고도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생명입니다. 물질 우상의, 도시가 만들어 놓은 욕망의 소비지향적 삶에서 나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답고, 선한 장치입니다.

   자본가치의 시대에 나를 자본에서 탈출시키는 또 다른 장치는 안식일입니다. 십계명 중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4번째 계명은 첫 번째 계명과 열 번째 계명을 잇는 중간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계명이 무엇이지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러면 열 번째 계명은 무엇인가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탐욕 사이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정표 같습니다. 여러분 어느 길로 가면 좋을 것 같습니까? 남에 것 탐내지 말라 했으니, 나는 여태 껏 한 번도 남의 것 탐한적 없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신자본주의 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수도 없이 남의 것을 탐하며 살게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지킴의 숨고르기가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려는 시간적인 장치라 한다면, 십일조는 공간적인 생명의 장치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안식일은 저항이다’라고 책의 이름을 정할 정도로 강력하게 안식일이 단지 계율의 의무 조항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피력합니다. 자본의 시대에 자본의 속도감을 멈추어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축복입니다. 물론 십계명도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에게 사느냐 죽느냐 이지만, 오늘 우리 시대에는 우리의 삶과 동 떨어진 것 처럼 보이지만, 안식일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구체적으로 하루를 쉼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생명의 에너지가 아니면 어떻게 오늘 물질 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하는 자본을 극복하며 나와 이웃, 그리고 동식물들과 함께 생명의 축제와 잔치마당을 펼치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쉼과 하나님께 바침은 천연의 빵을 만드는 이타루가 자본을 탈출하듯이 우리로 하여금 물질 가치로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극심한 가믐으로 모든 것들이 죽어가던 아합 왕 때,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고 합니다. 성문으로 들어서며 땔감을 줏는 한 여인을 만나 물을 좀 달라 합니다. 내친김에 먹을 것도 좀 달라구 하는데, 이 여인이 자기는 아들과 함께 땔감을 구해 마지막으로 남은 밀가루 한줌과 기름 몇 방울로 음식을 해 먹고 죽으려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천연덕스럽게 먹고 죽겠다는 과부에게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온 다음에 아들과 음식을 해 먹으라고 합니다. 아니 자기에게 주면 끝인데 사르밧 과부가 진짜루 엘리야가 말한 그대로 그렇게 합니다. 엘리야도 그렇구, 사르밧 과부도 그렇구, 하나님은 더 그렇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실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먹고 죽으나, 안 먹고 죽으나, 차라리 좋은 일 한 번 하구 죽자 라구 할 수도 있지만, 먹은 귀신 떼깔도 좋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하여간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 예언자의 말씀에 따랐고, 그 말씀대로 놀라운 것은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가믐이 끝날 때 까지 떨어지지 않았고, 죽어가던 아들도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루밧 과부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두렙돈 드린 여인처럼 전심으로 헌금하라고 말해야 하나요? 말이 안되나요. 에이 결국 헌금하라는 거구나?

   그림을 좀 크게 그려 봅시다. 사르밧 과부가 차려준 음식을 먹고 기운을 회복한 후에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가서 950명의 거짓 우상숭배자들과 싸웁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과부의 딱한 사정을 알고 계셨겠지만, 이 과부만 죽어가나요? 지금 이스라엘이 모두 가믐으로 죽어가는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물질우상숭배 이지요? 엘리야는 지금 그 싸움을 싸워야하는데, 다른 이스라엘과 똑같이 먹지를 못해 싸울 에너지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의 그 헌신을 받아 엘리야를 살려 우상숭배자들과 싸워 이겨, 비가 오게 하여서 가믐을 해소 시키시고,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왕상17:13을 찬찬히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면 ‘우선 나에게 먼저’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논리적으로는 모르겠는데, 생명에는, 하나님 나라와 뜻의 질서에는 맞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집트 바로의 거대한 태양이 이제는 아합왕 때에 실제 가믐으로 모든 생명을 앗아가려 할 때, 그리고 모든 것을 태워 없엘 것 같은 거대한 자본의 태양이 높이 떠 올라, 온 세상을 불태우려 하며,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는 때에, 이집트의 히브리 산파 처럼, 사르밧의 사렙다 과부 처럼 ‘아니다’라고 하며 ‘우선 나에게 먼저’를 쫓는 거룩한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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