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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종들은 복이 있다(주현절후 여섯째주 , 2017년2월12일)

하늘기차 | 2017.02.12 17:10 | 조회 1207


                     그 종들은 복이 있다

주현절후 여섯째주                                                                                         눅17:7-10;22:27;12:37

   작50주년 희년 동안 디아코니아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보 앞면에도 계속 눅22:27 말씀을 올렸습니다. 디아코니아 즉, ‘섬기는 사람’, ‘섬긴다는 말을 1년 내내 들어 왔는데,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하면, 학생에게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공부해하면 정말 짜증나는데, ‘디아코니아라는 말이 마치 저에게는 불현듯 공부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하는 일,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봉사, 헌신인데 잘 하든 못하든 디아코니아라고 원어로 표현하지만, 역시 봉사해!’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짜증이 나드라구요. 그래서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뭐지요? 왜 디아코니아 이지요? 찬찬히 생각하니 짜증이나지요? 괜히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앞으로 공동체 식사부터 그냥..가게, 밤토실 모두 짜증난다고 하면 어쩌지? 괜히 말 끄낸 것 같습니다.

   왜 짜증이 날까요? 눅2227을 앞 뒤 다 자르고 읽으면 제도가 되고, 윤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윤리면 율법에 걸립니다. 율법에 코가 꽤면 죄가 됩니다. 아니 죄가 아니라, 죄 짐을 집니다. 성도들이 가장 잘 걸려 넘어지는 것이 오히려 죄는 작은데, 죄책감이 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쁜 소식, 복음이 아닙니다. 또 제도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에 어긋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쎄빠지게 일하고, 와서 사장님 밥을 차려줘! 이건 근로법 위반이야, 이건 착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섬기는 사람의 모습은 윤리와 제도의 모순을 담기 이전에, 그 모습을 뛰어 넘는 생명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생명의 본질적인 모습인가 하면, 생명은 본질적으로 발현, 즉 자기를 드러냅니다.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세요. 왜 반짝이나요? 나 여기있어 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다 자기 발현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놓치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주변의 꽃들과 새들과 열매 맺는 나무들을 보면, 자기 잘났다고 뽐내잖아요. 복수초, 노루귀, 현호색, 홍매, 명자나무, 그리고 민들레 등등. . .그리고 고전15장 부활장은 자기 발현을 너무나 생생하게 증언을 합니다.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이 놀라운 생명의 우주적 발현이 완전해 질 것입니다. 별은 별대로, 물고기는 물고기 대로, 발에 차이는 돌맹이 까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닮아 자기 발현을 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주님의 부활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온 역사와 우주 속에 하모니를 이루며 발현을 합니다. 예수님의 변화산에서의 변화가 그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명 아닌 것에 매여서 산지 오랩니다. 2:5-11은 생명의 본질인 자기 발현의 모습을 주님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동등함을 버리고, 낮아져, 종의 모습을 취하여 십자가의 죽기 까지 순종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어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발씻는 종의 모습에서, 또한 주인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종의 대표적인 모습을 최후의 만찬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발씻는 예수님의 모습은 단지 절기 때, 예배당 단상 앞에 교인들이 서 있고, 목사와 장로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는, 아니면 교황이 연초에 전세계 T.V로 중계를 하며 장난같은 눈물 찔찔 흘리는 가짜 포퍼먼스가 아니라, 예수님의 진짜 포퍼먼스, 세상을, 세상나라를 뒤집는 사건입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질서를 역행하는 제도 차원이 아니라, 헌신한다는 명목의 윤리가 아니라, 생명의 순리입니다. 하나님나라 역시 생명, 평화 정의의 섭리 속에 어떻게 세상나라와 다른, 세상을 뒤집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까 라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흰 말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패러디하여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하나님 나라, 생명 나라의 왕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이 얼마나 멋진 세상나라에대한 통쾌한 반전이요. 은유요 상징입니다. 발씻는 예수님의 모습 역시 이 얼마나 멋진 반전이며, 패러디이며, 은유요, 상징인가요.

   이 발씻기는 종의 모습이야말로 신음하는 피조물의 고통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생명의 본질은 자기 죽음으로 타자와 자기가 살아납니다. 지구상의 자연질서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어찌보면 자연질서는 잔인합니다. 약육강식이요, 적자생존입니다. 그 안에 종족보존의 순전함이 있구요, 그런데 이렇게 거친 야생이 조화를 이룹니다. 언어로 표현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섭리와 경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보이신 것입니다. 죽어야 삽니다. 인간들이 점점 욕망의 괴물로 변질 되어가는 것에 제동을 건 것입니다. 인류문명의 죄의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십자가를 박은 것입니다. 이제 그만 멈추라구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르라구요.

   오늘 말씀 눅17:7-10의 말씀을 보면 종이 양을 치거나, 밭에 나갔다 돌아와서 주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 식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주인을 위해 음식 준비를 하여 상을 올리고 주인이 식사를 마칠 때 까지 식사 수종을 듭니다. 주인이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수고했다고 사례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이 명령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주권에대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함의 핵심은 생명에대한 것이어서, 생명의 주권과 관련해서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티끌 하나라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온 인류 역사가 쌓아 온 과학 문명과 재화를 다 합하여도 하나님의 창조질서, 생명의 섭리와 경륜에 더하거나 보텔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쓸모가 없는 종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말은 믿음이라는 의미가 따라 붙어서, 기독인에게는 바로 믿음의 종이라는 말과 동의어 이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종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와 같이 가부장적이고, 교조적인 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종은 이상하게 절대적 타자가 되어서, 교회에서 목회자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종님이 되는 경우가 요즈음에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인들 역시 하나님 앞에 종인데, 목회자를 종님이라 부르니, 묘한 뉴앙스의 종의 계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아도, 그리고 십계명을 하나님에게로부터 직접 받은 율법의 종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을 받을 때, 무조건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해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과 일대 일로 인격적인 존중함 속에 대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질문에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는 것을 우리는 창세기나 출애굽기를 통해, 그리고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볼 수가 있습니다. 종은 상명하달식으로 주인이 말하는, 또는 명하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성서의 내용을 보면 말입니다. 이런 인격적으로 존중히 여기는 관계 속에서 믿음의 종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일하는 자리에 까지 나아갑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있을 수 없는 불합리한 명령을 대면하고, 모세는 온갖 모진 고난 끝에 가나안 땅에 이르렀는데, 가나안 땅을 밟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모세도 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입니다. 또한 예수님도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로 향하는데,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 밤새 하나님과 이 문제로 씨름하며,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하나님께 물으며,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에대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말 만큼 아름다운 표현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종인 우리를 바라 볼 때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격에대한 존중함이 있고, 종인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 볼 때에는 하나님에대한 두렵고 떨림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스스로의 자기낮춤이 있습니다.

   자기낮춤을 습관적으로, 겉으로 하는 것은 자기낮춤이 아니라, 자기비하입니다. 자기낮춤은 상대방의 의견이나, 입장, 뜻에대해 스스로 그 말이 맞다, 공감하며, 존중한다는 마음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비하는 어찌 보면 자기 교만의 열등적인 발로이며, 표현입니다. 성경은 진정한 종의 모습을 자기 스스로의 낮춤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기 낮춤에대해 빌2:5-12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

                        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

                        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

                        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

                        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어, 세상의 주권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종과 주가 하나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섭리와 경륜입니다. 자기낮춤과 영광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생명의질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종의 모습 속에는 두렵고 떨리는 자기 구원의 모습이 있습니다. 자기 구원은 궁극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며, 그 영광을 맛 보며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권자이며, 종입니다.

    그렇게 볼 때 눅12:37이 이해가 됩니다.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

                         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이것은 역설이며, 패러디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나라에대한 반전이며, 역설입니다. 그래서 섬기는 사람, 종의 이야기는 우리를 정신이 버쩍 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지금 우리 시대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왜 주인이 시중을 들까? 이것은 깨우침이고, 역설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합니다. 얼마나 갑이 을과 병을 굴욕적으로 대하는지 모릅니다. 기업에서, 장터에서, 어디서든지 말입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 .인간이 얼마나 못되먹었는지 가축과 조류들에 갑질을 하며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듭니다. 인간 스스로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다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것을 뒤집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역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마지막으로 주님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교회절기에 교회행사로 목회자가, 아니면 장로가 아랫사람의 발을 씻기는 가짜 포퍼먼스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속에 진짜 을이 되어, 어떻게 을이 될 수가 있나요? 가능할까요? 이사여11:1 이하에 보면 한 싹이 나서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이리와 어린 염소, 표범이 새끼 염소 어떻게 지내는 지에대한 비죤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그렇게 왜 갑이 종이 되어야 하는 지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되지요? 성경에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믿음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시늉만이라도 좀 하면 어떨까요? 부모는 자식이 부모 따라하는 것 만으로도 흐믓해 하잖아요. 그 주님의 삶의 낮아지심, 생명의 몸짓을 어떻게 이 세상 속에 고백할 수 있을지를 마음에 새기며 고기교회 공동체가 오늘 이 시대 속에서 함께 희년을 펼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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