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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 가운데서(주현절후다섯째주, 2017년2월5일)

하늘기차 | 2017.02.05 14:20 | 조회 1312


                      떨기 가운데서

주현절후 다섯째주                                                                                                         출3:1-14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몰고 호렙산을 오르다가 가시떨기가 타오르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양을 치다 보면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바짝 마른 검불을 한 순간에 태워 재로 변하기도 하고, 불이 번지면 양떼가 위험하니, 멀리 피하려 했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불은 활활 타오르는데, 바짝 마른 검불은 그대로 입니다. 이것은 덫이야, 낚이지 말아야지 하며 쳐다도 안 보고 부리나케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을 법도 한데,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모세는 타지않는 가시떨기 불꽃으로 향합니다. 가시떨기는 바짝 마른 시레기처럼 푸석푸석 부스러져 버릴 것 같은데, 소멸되지 않고 존재감을 보이며 활활 타오릅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내려놓은, 딱히 세상에 새로울 것이 없을 나이 80 촌노의 눈을 번쩍 뜨게 할만한 광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모세를 초청하여 부르셨을까요?

   3절에서 모세는 그 광경을 보고, 어찌하여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타지만 타지 않는 가시덤불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초청하시고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였을까요? 타오르고 있지만 타지 않는 불꽃 그 자체는 왜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시는지를 말해줍니다. 이 광경은 우리의 인식, 논리 밖에 있는 현상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식 밖입니다. 아니 우리의 인식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습니다. ‘믿사오니, 믿음 없음을 용서해 달라고 했던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모습이, 홍해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이것이 기독교적인 실존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를 우리 주님은 인정해 주십니다. 그래서 복음이고, 기쁜 소식입니다. 적선을 하지 않아도, 공과가 없어도, 설령 죽을 죄를 지었어도, 주님은 팔 벌리고 괜찮아 하십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철학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인식론적으로 규명하려 합니다. 절대정신, 제일 원인, 이데아, 자연질서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헬라철학 처럼 존재의 근원을 묻는 식의 접근을 거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요?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나요? 신을 벗으라 하신 것은 그동안의 경험, 지식, 철학, 체험을, 이기심을, 교만을 다 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세히 알려고 생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부질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알려고 해서 알려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스스를 드러내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말씀7, 9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7절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

                                 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고 합니다. 9절 역시도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고 합니다. 무엇을 보았나요? 무엇을 듣고, 그래서 무엇을 분명히 안다고 하시나요? 히브리 민족이 지금 받는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무엇을 알려고 했나요? 이제 그만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모세와 같은 방식으로는 타지 않는 불꽃의 정체는 커녕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맴 돌다가 멈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신발을 벗고 예배당에 들어 오잖아요. 신발을 벗을 때 마다. 내가 묻혀서 온 것을 그나마 숨 한 번 돌리며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나요? 히브리민족이 이집트의 왕이 바뀌면서 민족존립의 위기에 이를 정도의 치명적인 고통에 노출된 것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타지 않는 불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하나 물어볼께요? 십자가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십자가를 인식론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알수 있을까요?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사랑이지요, 그런데 우리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주와 역사와 온갖 숨쉬는 피조물과 무생물에 이르기 까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우리가 어찌 십자가를 알 수가 있나요? 우리가 어찌 타지 않는 가시떨기 불꽃을 알 수가 있나요?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모세가 다가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가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2주 전에 출34:18에서 모세가 하나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그 영광 때문에 볼 수가 없습니다. 한 여름 이글거리는 태양도 똑 바로 바라 보면 실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똑바로 바라 보지 않아도, 나무와 풀들이 자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태양의 존재와 그 소중함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앞이 아니라 뒤에서 본다고 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의 인식론이나, 존재론적인 탐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의 눈을 가리고 지나 가시면서 그 등을 보이신 것 처럼 하나님께서 어디로 향하여 가고 계시는 가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을 그나마 알 수 있는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난의 자리 한 복판을 지나 가십니다.

   가시 떨기는 이스라엘의 산야에 널려있는 마른 가시덤불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에 오래 노출되면 한 순간에 확 불이 붙어 타 없어지는 그런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나무입니다. 가시떨기에 타지 않는 불이 붙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모세가 다가 가자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디에서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시다고 하나요? 3:4에서 떨기 가운데라고 합니다. 이 가시 떨기는 누구인가요? 바로 모세이며, 히브리민족입니다. 가장 연약하고 힘 없는, 누리던 것 다 사라진, 한때 자기 백성의 고통을 풀어주겠다며 불타오르던 의협심도 다 사라지고, 하루 하루를 의미없이 근근히 지탱해 가는 가시떨기 같은 삶의 한 가운데로 찿아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이주한지 400년이 되는데, 이집트를 지배하던 아시아민족인 힉소스가 쇠퇴하면서, 이집트 민족이 다시는 이방민족의 지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강력한 외래민족에대한 배척운동이 일어나고, 이 때 아시아 민족인 히브리민족을 노예화 합니다. 1:8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은 바로 라암셋 2세이며, 셈족을 포함한 이방 족속들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할 때 강제 노역에 끌려나오며, 노예로 전락해버립니다. 노동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그럼에도 히브리민족의 숫자는 늘어나는 것에 불안해 하던 바로는 히브리가정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를 살해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끝 없는 바닥의 나락으로 떨어진 히브리 민족과 모세에게가시 떨기 나무를 통해, 모세를 그 모습 그대로, 히브리민족을 그 모습 그대로 보이시며 그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 바짝 마른 떨기 나무는 바로 모세이며 히브리민족입니다. 그동안 모세는 힘있는, 능력있는 존재를 바라며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불이 확 타오르는 그 순간, 당신 스스로를 고통하며 신음하는, 탄식하고 부르짖는 모세의 가련한 모습,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쓸모없는 바짝 마른 가시덤불이 타지 않습니다. 평상시에는 태양의 열기에 한순간에 확 타올라 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집트 바로의 태양입니다. 모세도, 동족인 히브리민족도 바로의 태양 열기 아래 한 순간에 재로변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짝마른 가시 떨기가 스스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 하며 활활 타오릅니다. 하나님의 불입니다. 성령의 불입니다. 바로의 태양은 오늘 이 시대에도 이글거리며 빛을 발합니다. 세상은 그 빛 아래 무언가를 기대하며 살아가지만 결국은 탈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소멸시킵니다. 내 안에도 바로가 깊숙히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은, 성령의 불은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받으시며, 그 모습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능력이요, 지혜인가요? 십자가의 지혜요, 능력이요, 사랑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타오르는 하나님의 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성도는 이 신비 안에 머물러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환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자리 한 가운데에 오셔서 모세에게처럼 나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불 성령의 불은 내 안의 절망, 무력감, 게으름, 욕망, 거짓, 폭력 등을 보두 불살라버리고, 내 자존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나의 존귀함을 활활 타오르게 하십니다.  다윗이 시편18:1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방폐요, 요새요, 구원의 뿔이요, 피할 바위라고 합니다. 목자이십니다. 다윗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았고, 수 많은 정적들 속에서 살아 남은, 아니 당당하게 자기 모습 그대로, 그러니까 어릴적 그 목동의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이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신비입니다.

   설마 하겠지만 하나님은 지금 떨기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타오르고 있나요.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습 그대로를 받으십니다.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든지요? 왜 그것이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는데, 그렇게 사람이 다 내려놓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활활 타오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여 달라거나, 하나님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질문에 붙잡히어 코가 꿰이는 그러한 부자유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하고 물어서 나타나 우상이 되어버리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머무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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