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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밀당하기(2017년1월15일)

하늘기차 | 2017.01.15 16:18 | 조회 1290


                       하나님과 밀당하기

주현절후 둘째주                                                                                                          출33:12-23

   오늘 말씀은 황금송아지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한 땅으로 올라가라 하시며,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모세가 하나님과 나눈 대화내용입니다. 12, 13절에서 모세는 이름을 불러주실 만큼 저를 잘 아시는데, 저 더러 이 백성을 이끌고 올라가라고 하시는데, 그럼 나와 같이 갈 자를 가르쳐 주시고,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주님의 계획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계획은 무슨 계획인가요?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말입니다. 이건 모세가 하나님과 밀당을 하는 겁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밀당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성도는 이렇게 하나님과 밀당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연인사이에 밀당이 없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지요. 하여간 모세는 처음에 그렇게 자기와 하나님과의 친분관계를 빌미로 하나님을 자극하여,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결정에대해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멋진 반전을 끌어낸 것입니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라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런데 15,16에 보면 모세가 다시 간청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가겠다고 하는데, 왜 다시 간청을 할까요? 14절을 자세히 보면 모세와 함께 간다고 했지, 이스라엘과 함께 한다고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의중을 정확히 간파한 것입니다. 그래서 15, 16절 내용을 보면 12절과 그 내용이 다릅니다. 12, 13절은 그 중심이 저, , 모세입니다. 그런데 15, 16에서는 그 중심이 우리, 이스라엘입니다. 참 모세가 지혜롭습니다. 12, 13절에서는 자기와의 친밀감을 내 세워 하나님을 설득하여 자기와 함께 하겠다는 말을 끌어 내고는, 16절에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우리, 즉 모세 자신,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관계로 넓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과 떼어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두 손 든 것입니다. 이런 종을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진정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중보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죄 값으로 심판한다면,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 주변 이방나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시내 광야에서 모두 몰살시켰다는 누명을 쓸 판인데,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이 모습은 소돔과 고모라를 앞에 둔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문에 조카 롯을 멸망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하나인데, 어떻게 아브라함의 하나 밖에 없는 조카를 죽음으로 내 몰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과 하나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모세의 간구가 이스라엘의 구원의 물꼬를 튼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신앙이라는 것이 그저 나와 하나님, 내가 윤리적으로, 내가 마음이 하나님에게 깊이 머무는 것을 넘어 우리라고 하는 공동의 우리로 넘어가야 합니다. 역사요, 교회요, 지역이요, 민족이요, 온갖 피조물과 우주로 뻗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17절에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영광 보여달라는 것은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와 모두 멸절당할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참 답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그럼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이지?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이 자기 안에 체휼화되지 않자 하나님을 끝 까지 물고 늘어져 씨름을 합니다. 지금 모세의 모습은 처음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실제 16절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는 모습은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 내가 이스라엘에게 가서 당신을 무어라 소개할지, 이름을 가르쳐 달라는 모습과 참 비슷합니다. 좀처럼 하나님에게 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선뜻 나서지 않았던 처음처럼 말입니다. 모세의 진득하고, 신실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그 모습을 좋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죽 끓듯하는 모습과는 좀 다릅니다. 이미 모세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떻게 임재하는지 체험한 바가 있습니다. 모세가 처음 언약을 맺고자 산에 오를 때,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으로 산을 뒤 덮으며, 마치 산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임하였는데, 모세는 그 영광에 들어가 40일을 머물렀습니다. 모세는 그 체험을 다시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이 섰을 지도 모릅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19절에서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

                           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고합니다. 여기서 번역의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의 성경은 영어성경을 포함해서 나의 모든 영광을 나의 모든 선한 형상으로 번역을 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그대로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 거룩을 대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22, 23에서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

                           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영광을 보여달라고 할 때 모세는 하나님께 무엇을 원했을까요? 모세는 12, 13절 그리고 15, 16절에 이어 3 번째 탄원을 합니다. 34:9입니다.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 사실이면,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이 고집이 센

                            백성인 것은 사실이나, 주님께서 우리의 악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

                            시고, 우리를 주님의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제서야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새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과 3번에걸쳐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얻은 약속입니다. 1)함께 하시고, 2)죄를 용서해 주시고, 3)주님의 소유로 삼아달라고 합니다. 특히 세 번째 탄원은 우리 성도 모두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다윗도 그렇게 고백합니다. 16:5에서 다윗은 레위지파도 아닌데

                                    “,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본질적인 고백입니다. 모든 것을 자본화하여 하나님 마저 소유하려는 시대에 이 근원적 믿음을 우리 삶 전체에 바탕화면으로 깔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모세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진지함과 진정성과 신뢰가 물신 묻어납니다. 밀당도 서로를 재 보는 그런 밀당이 아니라, 좀 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는 밀당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좀 더 깊은 신앙의 자리에 들어오기를 원하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어디에 잇는지 헤아립니다. 하나님은 영광 보여달라는 그 말을 허튼 소리로 듣지 않으시고, 모세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찬찬히 모세의 질문에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영광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영광의 얼굴이 아니라 등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등을 보게될 것이라 할까요? 지지난주인가 세월호가족기도회 밴드에 실린 글 하나를 전합니다. 성문밖교회의 김회룡 목사님이 쓴 글입니다. 영광에대한 글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말한다(45,15). 이스라엘의 구원자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을 숨어 계신 분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곧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로 인한 인식불가능성에 대한 고백이다. 그렇다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방법은 하나님의 얼굴이 아닌 하나님의 등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영광과 부유함과 권능을, 하나님의 등은 비천과 가난과 무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길은 영광과 부와 권능의 자리를 찾아가는 긍정의 길 via positiva이 아닌 비천과 가난의 자리,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하는 자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부정의 길 via negativa이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얼굴이 아닌 하나님의 등을 봄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다는 말씀의 의미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이 어찌하여 화려한 헤롯의 궁에서 나시지 않고 차갑고 초라한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나시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왜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향해 걸어가셔야 했는지 깨닫게 된다그리고 우리 성문밖교회가 세상의 구세주인 아기 예수가 태어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왜 이렇게 차갑고 초라한 아스팔트의 동양시멘트 농성장을 찾아와야 했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곳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  부정의 길via negativa이기 때문이다.

 

                                                                             ‘등뒤를 돌아보자

                                                                                                                   박노해

12월에는 등뒤를 돌아보자

앞만 보고 달려온 동안

등뒤의 슬픔에 등뒤의 사랑에

무심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자

 

눈내리는 12월의 겨울나무는

벌거벗은 힘으로 깊은 숨을 쉬며

숨가쁘게 달려온 해와 달의 시간을

고개숙여 묵묵히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그립고 눈물나는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기 의한 것

내 그립고 눈물나고 사랑하는 것들은

다 등뒤에 서성이고 있으니

 

그것들이 내 등을 밀어주며

등불같은 첫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

12월에는 등뒤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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