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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셨다(성탄절후첫번째주일, 2017년1월1일)

하늘기차 | 2017.01.01 15:30 | 조회 1180


                             시작하셨다.

 성탄절후 첫 번째일                                                                                                마4:12-17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오늘 본문 말씀을 세례 요한이 마3:2에서 예수님과 똑 같이 선포합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말씀을 전하면서 선포하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와 하늘 나라를 선포한 것과 예수님의 그것과는 무슨 차이가 있나? 이미 시작이 되었는데, 무엇을 시작했다는 것인가? 더군다나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기 전 예수님은 친히 요단강으로 나아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오르자, 하늘에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소리가 납니다. 예수님이 세례받는 것을 하늘이 좋아합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마3:5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부근 사람들이 다 요한에게로 나아가서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단지 요단강 한 동네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유대 전체를 뒤 흔드는 운동이었습니다. 이 느낌을 저는 요즈음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촛불은 단지 서울 광화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 제주도에서 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지 정치적이거나, 개인적인, 어떤 집단의 이해 관계나, 한 가지 잇슈로 타오르는 촛불이 아니라, 이 나라 전반에대한 변화를 열망하는, 아니 단순히 지금 우리 시대 뿐 아니라, 이 역사 자체의 적폐를 끊고, 새로운 나라를 열망하는 바램에서 타 오르는 촛불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도 그렇게 변화의 열기가 활활 타오를 때에, 세례 요한이 그 불을 지핀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3:22은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요한의 세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살렘 근처 애논에서는 요한과 함께 세례를 베풀었는데, 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제자들이 요한에게 사람들이 모두 예수에게로 간다고 황당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을 보면 요한처럼 회개를 외치며 세례를 베푸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언제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할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까요? 아니 요한은 왜 유대광야에서 낙타 가죽옷을 입고, 바위에서 꿀을 따 먹으며, 광기어린 삶을 살아가며 소리가 되었을까요? 왜 요한도, 그리고 요한의 운동에 동참한 예수도 기존의 집단에 속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 당시 참 곤욕스러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으로 유린되고, 헤롯대왕은 로마에 구걸하여 왕권을 얻어, 그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도시와 성전 건축에 온 힘을 다 쏟아 경제를 파탄나게 하고, 대제사장은 로마의 총독에 의해 임명되어 그 정통성이 상실되고, 사두개파, 바리새파, 그리고 제사장들은 헤롯대왕과 로마 총독에 붙어 자신들의 기득권 만을 챙기고, 로마총독은 당시 헬몬산으로부터 예루렘으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로를 건축하는데, 그 비용을 성전세에서 충당하려 하자, 유대인들의 저항이 강하게 타오르던 때 였습니다. 정치, 경제, 종교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고, 그래서 누가복음에서 보면 예수를 당시 저항의 지도자였던 갈릴래아 출신의 유다로 착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유월절기가 되면 그 열기가 종종 폭발하여, 안디옥에 주둔한 로마수비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주둔하던 때인데, 예수님은 3번째 예루살렘 방문 때, 체포당합니다. 그러한 시대적 혼란기 속에서 여러 집단들이 등장을 합니다.

    로마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독립투쟁을 하는 열심당원들, 당시 제사장 계열을 거의 장악한 종교적 기득권 세력인 사두개인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들, 그리고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연구와 준수를 주창하던 바리새파사람들, 헤롯대왕의 정치, 경제의 손발 노릇을 하던 헤롯당원들, 그리고 유대사회를 떠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어두움으로, 자신들을 빛의 자녀로 보며, 결혼도 거부하던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에세네파 사람들, 등 여러 집단들 속에 요한은 어디에 속하였을까요? 본래 요한은 부친의 계열을 따르면 제사장집단에 속하는 사람이어서, 성전 안에 머물며, 자신이 당연히 누릴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었는데, 광야로 나갔습니다. 금식하며, 세례를 주는 것을 보면 에세네파 사람 같기도 하고, 출신으로 보면 제사장 계열인데, 당시의 정치 종교에 저항하는 모습은 그 정신에 있어서 열심당원들과도 함께할 만한 모습을 보이는데, 요한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고, 예언자의 전통을 따라 광야로 나가 임박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회개를 해야 한다고 외치다가 결국 헤롯의 치부를 드러내 예언자들처럼 스스로 죽음을 초래합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같으면서 달랐습니다. 묵시문학의 전통에 따라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외칩니다. 한 종파를 창설하거나,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으며, 여러 집단을 규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는 누구이며, 요한 또한 누구인가요? 요한의 운동이 유대 전역을 뒤흔들자 예루살렘에서 사람을 보내어 묻습니다. 1:19에서 당신은 누구요?’ 요한은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예언자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도 답답해서 예루살렘에서 보낸 사람들이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달라고 하자 사40:3을 인용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고 합니다. 그러자 또 묻습니다. 그러면 왜 세례를 주냐고 묻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는 할례가 유일한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왜 제사장가문의 사람이 이방 우상숭배자들의 의식을 집행하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또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한 분 계시는데, 나는 그 분의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다며, 예수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선언합니다. 그나마 이스라엘에 유일하게 메시야대망의 신앙이 남아있었는데, 그래서 다윗 왕권의 영화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기로 가득찬 그 때, 요한은 백말탄 기사가 아니라,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에대한 말씀 사53:7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을 예수님의 모습으로 드러냅니다. 예수님을 정확히 봅니다.

 

    예수님도 요한을 정확히 압니다.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 더 큰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 보다 크다고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을 하였고, 그러나 그 일은 아직 시작이 아니라는 것. 세례 요한으로 지칭되는 이 땅의 모든 일을 다 합쳐도, 이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호리 라도 첨가할 수 없다는 하나님 나라의 질적 차이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이 전에 시작된 적도 없고, 이미 시작되었으니 다시 시작될 일도 없는 그 유일한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요한의 길에서 방향을 바꾸었을까요? 바꾼 것이 아니라, 그 길에 요한의 길도 포함이 되어 있었겠지요. 요한은 하나님의 책망, 심판을 보았다면, 예수님은 그들 속에 함께하시는 용서, 사랑, 축제를 본 것입니다. 마태는 그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운동을 본 것입니다. 당시의 금욕적인 공동체였던 기도와 말씀과 공동 생활의 에쎄네 공동체, 로마를 유대를 몰아낼 열심당원의 투쟁, 예루살렘 성전에 있으면서 펼칠 수 있었던 정화 운동, 개혁 운동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는 이 시작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출생과 마지막 십자가에 까지 나아가며 무엇을 하였나요? 무엇을 했다구요? 예수님은 무엇을 했나요? 복음서는 무엇을 기록하고 있나요? 예수님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보셨습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15,16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

                      들의 갈릴리,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

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체포되자, 어두움에 쌓인,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동네로 가셔서, 함께 살며, 백성들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 어디 인가요?

 

    예수님은 그 동네를 어떤 마음으로 보았을까요? 작년 수요성경공부에서 이사야서를 공부하며, 이 전 예언자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어린양 메시야 표상, 온 피조세계와 역사와 우주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돌리는 이 탁월한 비죤이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라고 물으며, 그 때 느꼈던 것은 이사야가 이러한 비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스불론과 납달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음입니다. 마음이 보게합니다. 그래서 눈멀고, 말 못하고, 귀먹은, 중풍병걸려 누워있는, 문둥병에걸린, 귀신들린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만지며, 잃어버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일깨우셨습니다. 네 믿음 대로 될 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겨자씨 만한 믿음 만 있어도. . .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연민을 가지고 보았고,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십자가에 까지 이르러, 십자가 넘어의 부활의 희망을 본 것입니다. 마태는 이렇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를 본 것입니다.

 

    작년 5월 말, 세월호가족들, 마을분들, 지인들과 함께 50주년 기념 음악회를 열었는데, 그 때 불렀던 또 다른 숲을 시작하세요라는 노래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사실 그 노래의 앞 부분은 굉장히 아프고, 슬픈 노래입니다. 평화의 저 반대편의 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노래입니다. 51년을 맞이하는 우리 고기교회는 무엇을 시작할까요? 아니 무엇을 보아야할까요? 우선 예수님과 요한이 상호 간에 정확히 상대를 알아보고, 인정해 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십자가의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을 서로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어떨까요? 그러한 시작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각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서로 간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볼 수 있어야지요? 그리고 무화과 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온다는 것을 알 듯이, 이 시대의 표징을 읽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며, 그 길을 따라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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