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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에(창조절일곱번째주일, 2021년10월17일)

하늘기차 | 2021.10.16 17:24 | 조회 487


                               그 무렵에

창조절일곱번째주일                                                                                               사38:1;왕하18:13-17

     지난 주의 히스기야왕에대한 이야기는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살펴 보면 조금 씩 차이가 있습니다. 역대하 31, 32장에기록된 히스기야 왕은 종교개혁은 물론, 그의 치적을 매우 고무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열왕기서는 히스기야 왕의 탁월한 업적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가 2 번 씩이나 치명적인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가 하면 기록 시기가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서는 유다 민족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왜 하나님의 백성이 망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결론으로 유다민족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열왕기 역사는 역대 왕들의 죄를 낱낱이 폭로하고,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반면에, 역대기서는 열왕기보다 한참 후대에 유다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친 후 고국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때 과제는 어떻게 하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느냐에 있었기 때문에 역대기 저자는 모범적이고 본받을 만한 인물로 다윗과 솔로몬을 내세웠고, 백성들로 하여금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열왕기서가 반성의 역사라면 역대기서는 본보기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서가 심판을 염두에 둔 예언자적인 관점으로 보았다면 역대기서는 소망을 바라는 제사장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실제 히브리서 원본 성경은 열왕기서를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와 함께 전기예언서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왕하18:2절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25세에 왕이되어 예루살렘에서 29년 동안 다스렸는데, 처음에는 조상 다윗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본 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산당을 헐어버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고, 모세의 구리뱀도 산산 조각내며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을 섬깁니다. 모세에게 명한 모든 계명을 준수하여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서 함께하여 히스기야 왕은 하는 일 마다 잘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던 히스기야 왕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히스기야 왕 6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합니다. 그 후 히스기야 왕 14년 무렵에는 앗시리아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남쪽 유다의 모든 성읍을 예루살렘성 만 남겨두고 점령합니다. 처음 왕이 될 때만 해도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 왕에게 조공을 안했는데, 왕하18:14에서는 앗시리아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우리가 잘 못 하였습니다. 철수만 해 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다고 하자, 앗시리아는 히스기야 왕에게 은 삼백,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합니다. 히스기야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다 내어주고 성전 문과 기둥에서 자신이 직접 입힌 금을 모두 벗겨서 시리아왕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앗시리아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약속을 깨고 병력을 인솔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산헤립의 군대장관인 랍사게는 유다가 혹여나 이집트를 의지하려고 하지만 이미 우리 산헤립 왕께서 너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허락받았다고 하며 어느 나라의 신이 앗시리아왕의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느냐고 히스기야가 하나님께서 구원해 줄 것이라는 꾀임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며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울분을 참지 못하여 베 옷을 찢으며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의 신앙을 이어받았다고 할 정도로 오직 하나님 만을 섬기는 왕이었음에도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상황에 맞딱뜨리자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의 산헤립과 화친을 맺고자 하며, 씻을 수 없는 치욕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 병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것은 죽음을 선언 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 세상의 논리나 가치, 경험과 무관한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으로의 초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정치 외교적인 거대 담론에 매몰되어 가는 히스기야를 불러내어 하나님의 영역으로 밀어넣은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의 영역은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던 에스더처럼 죽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는 자리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자리에 까지 나아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번에는 병이 회복되면서 나라가 부강해져 온갖 보물과 가축과 곡식이 넘쳐나니, 역대기서 32:29는 하나님이 재산을 그렇게 많이 주셨다고 기록하고,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 왕이 히스기야 왕의 회복을 축하하는 사절을 보내옵니다. 역대기서는 바빌로니아 사절단이 어떻게 그렇게 부요한 나라가 되었는지 그 기적을 물어 볼 때에, 그마음대로 하게 하였다는 정도로 기록을 합니다. 역대기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더 이상 추궁하지를 않습니다. 제사장적인 관점인 자비, 용서, 화해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목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교회가 예언자적인 관점과 제사장적인 관점을 균형있게 잡아야 하는데, 한국의 교회는 거의 대부분 제사장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드러난 왕권, 제사장, 그리고 예언자, 또한 목자의 모습을 균형 있게 잡아 나가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 양극화가 심화하는 시대에는 더 더욱이 예언자적인 비젼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하여간 역대기서와는 달리 열왕기하서20:12 이하에서는 히스기야왕이 앗시리아에게 했던 것처럼 또 한 번 바벨론의 사절들에게 궁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사야 예언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찿아와 묻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말을 하였고, 임금님의 궁궐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자, 히스기야 왕은 나의 궁궐, 나의 창고 라고 하며 못 본 것이 없이 다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바벨론에게 두 손을 든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의 언어 속에 교만함이 묻어납니다.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궁전이며 하나님의 창고가 아니라 의 것이라 합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우상은 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히스기야에게 왕궁의 모드 것들과 조상이 물려 준 모든 보물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주변의 국가들이 추풍 낙옆처럼 쓰러져 가는데, 신흥강대국 바벨론은 그 세력을 점점 더 확장해 가고, 그나마 믿을만한 이집트는 입으로만 동맹을 말하는 정도여서 좌우어디를 보아도 이스라엘이 이 강대국의 압박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의 병은 아마도 주변 강대국의 침공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중압감으로부터 온 것 같은데, 아니 그것은 세상적인 관점이고, 교회는 첫 신앙을 잃어버린 히스기야왕을 하나님께서 믿음의 영역, 처음 신앙의 자리로,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으로 밀어 넣으신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금의 한 반도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강대국 미국, 그리고 떠오르는 중국, 그리고 몰락해가는 것 같지만 호심탐탐 한 반도를 발판으로 대륙으로 뻗어나가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는 여전히 경제 대국 일본, 그리고 북한과 대치중인 상황 속에서 우리는 히스기야 왕의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합니다. 간혹 구국 기도회 자리에 미국 깃발이 적지않게 나부끼는 모습은 히스기야왕 때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히스기야왕의 삶의 여정, 믿음의 여정을 보면 그 끝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히스기야도 그렇지만 지혜의 왕 솔로몬 역시 마지막에는 우상숭배로 빠져 버립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늘 평가하고 판단하며 역으로 평가받고 판단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다른 사람이 보는 시각 관점에 맞추어 살기가 십상입니다. 세상의 일이 내 모든 것을 압도해 버리기도 하는데, 하나님은 그 일 보다 항 상 크신데, 세상의 관점으로 만 바라보니 위대하신, 보다 큰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처음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처음 복음을 받을 때의 십자가 앞에서의 순전함, 가난함, 온전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신앙,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유영모 선생님 말처럼 사람들은 집의 거위 한 마리 없어지면 온 마을을 돌며 수소문하여 거위를 찿지만, 마음 잊어버린 것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이기적이고 교만한 우리가 하나님 뜻을 따라, 주님의 거저 주시는 기쁨의 풍성함을 누리며 나누며 살고자 한다면, 늘 주님 안에 기도로 머물러 주님의 말씀 처럼 늘 깨어서 기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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