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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쪽으로 돌아서기(창조절여섯번째주일, 2021년10월10일)

하늘기차 | 2021.10.09 16:42 | 조회 606


                          벽쪽으로 돌아서기

창조절여섯번째주일                                                                                                               사38:1-20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히스기야가 병에 걸려 거의 죽게되었는데, 한 술 더 떠서 하나님의 예언자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이 너는 죽을 것이니 너의 집안 일을 모두 정리하라고 하면서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헤른후트 기도서 이 번주 설교본문이어서 힘들어하며 보았는데, 여러분들은 이 본문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무슨 하나님이 너 죽을꺼야 할 수 있나요? 그런 하나님이 어디 있나요? 이것을 그냥 상징적인 비유로 해석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 분명한 시대적 상황이 있어서 추상적으로 해석할 수도 없는 팩트 그 자체입니다. 병이 회복되자마자 당시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바벨로니아의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왕의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친서와 예물을 보내 온 것을 보면 역사적 fact입니다. 그러니 난감합니다. 죽으라니. 이것 참. 생명의 종교요 부활의 종교인데 말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참을 머뭇거렸고 마지막 날 까지 답이 나오질 않았는데, 일단 인간의 논리로는 오늘 본문을 풀 수 없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는 오늘 본문을 조심스럽게 합리적인,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신앙적인 사고로, 아니 그냥 편하게 신앙적으로 생각해 보니, 둘째로 신앙 자체가 역설, 아이러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설하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이라는 믿음, 하나님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역설의 믿음에 초청을 받았는데, 이렇게 깜빡깜박 잊어버립니다. 죽음과 생명, 십자가와 부활이 모두 하나라는 것을 어떻게 논리로 풀 수 있을까요? 그래서 히11:1은 믿음을 한글개혁으로 함께 고백해 보겠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는 것의 증거입니다. 11장은 그렇게 산 사람들에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충돌이 아니라 조화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저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너는 죽는다라고 하는 이사야도 정말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로는 못할망정 죽어가는 사람에게 너 죽어야 해하는 사람은 어떤 정신의 소유자 일까요. 목사가 중병에 걸린 성도에게 너 죽을 거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유혹이 있습니다. 대신 반대로 값싼 위로도 끼어들면 안됩니다. 죽음은 죽음이고, 생명은 생명이니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최소한 이정도의 솔직한 경계를 지킬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부목사 시절 참 독실한 집사님 한 분이 암에 걸려서 온 교회가 기도하였는데, 돌아가시던 날 새벽 기도 마치고 연락이 왔는데 응급으로 병원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리나케 집사님 댁으로 달려갔는데, 앰블란스 침대에 올라가 집사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려는데, 기도하는 중 이었는지, 기도 하기 전 이었는지 지금 확실하지 않지만 눈을 감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또 어떤 성도님은 갑자기 팔에 마비가 오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이 있어서 기도원에도 가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는데 수술로도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이갔는데 문제는 계속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함께 기도하였고,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 제목이 하늘 태양이 멈추듯이 성도님의 뇌신경손상의 진행이 멈추어지기를 기도했는데, 얼마 후 병원에서 실제 병이 진행되지 않고 멈추었다는 진단을 받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병석에 누워 있는, 그리고 병과 씨름하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기도합니다.

     히스기야의 병과 관련된 정황은 일반적인 논리적 사고로 바라 볼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이라 하였는데, 믿음하면 아브라함입니다. 100세에 얻은 외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길래 이런 매몰찬 명령을 내릴까요?아니 100세에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하늘의 별 같이,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셀 수도 없는 자손의 은혜를 뒤로 하고, 어떻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미치면 더 이상 답이 없습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아들을 제사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침묵 속에 그 명령을 행하고, 그 명령이 진행되는 동안 말 없이 그 행위를 받아들이는 이삭은 또 어떤가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아브라함에대해 믿음이라 고백을 합니다. 다시말하지만 죽어가는 히스기야에게 너 죽어!’라고 말하는 정황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것은 하나님 영역 안에 머물러 있기입니다. 그러니까 너 죽어!’라는 말은 인간의 논리적 언어가 아닙니다. 믿음의 언어입니다. 믿음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체계는 우리의 오염된 세상 언어로 이해불가입니다. 이 믿음의 영역 안에는 오직 생명이신 하나님, 십자가와 부활이 함께 자리합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주님께서 11 번이나 머물러 있으라고 한 바로 그 기도의 자리인데, 우리는 자꾸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벗어나려 합니다.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이기적입니다. 정치, 경제, 외교, 국가, 민족, , , 등 특히 신자유주의의 거대 담론에 둘러쌓인 세상의 가치 언어 체계에 태어날 때부터 익숙한 우리로서는 좀처럼 믿음의 자리에 머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정치 외교적인 거대 담론의 세상 일에 둘러쌓여 있는 히스기야를 불러내어 하나님의 영역으로 밀어넣은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이렇게 믿음의 영역 안에 불러 넣을 때는 자기 연민이나, 값싼 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답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곳은 개인의 인간적인 노력이나, 정신, 의지나, 논리, 감정등이 주도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 자리에 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평생에 주님께서 이러한 자리에 우리를 부르실 경우 세상적인 언어에서 벗어 나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이사야와 히스기야는 함께 그 믿음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그 믿음의 영역의 언어에 익숙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합니다. “너 죽게되었어!”가 단순히 세상의 언어로,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이구나가 아닙니다. 이것은 초청이요, 부르심입니다. 물론 히스기야에게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앗시리아, 이집트, 바빌로니아의 세상 담론에 붙들린 히스기야를 머물러 있어야할 믿음의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으로 그 초청에 응답합니다.

     히스기야는 이 말을 듣고서’, 두 말 없이 바로 벽을 향하여 주님께 기도합니다. 바로 이 모습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입니다. 그동안 스스로 살아 온 모습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진실하게 전심으로 선하게 살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실제 히스기야는 모든 우상 숭배의 산당을 부수고, 우상을 모두 찍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것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하나님께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또한 얼마 전 까지, 38:1처럼 그즈음에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벼랑 끝에 내 몰렸던 상황 속에서 히스기야왕은 앗시리아왕 산헤립이 다른 나라의 신들이 나에게 무릎을 꿇었듯이 너희도 너희 하나님에게 아무리 구하여 보아도 전혀 소용 없을 것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자 바로 그 편지 내용을 들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던 히스기야였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모멸차게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가는지 히스기야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동안 하나님과 함께 했던 삶을 다 드러내 놓고 나서 한참을 흐느껴 울었습니다. 아마도 이 울음은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대한, 애뜻한 하나님에대한 연민 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이신 하나님! 어쩌란말인가요? 이 것은 감람산에서 새벽을 맞도록 기도하며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며, 또한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짓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아버지의 뜻에대해 멈추어 부르짖는 예수님의 모습이 히스기야의 기도 모습과 겹쳐집니다.

   교우여러분! 바로 그 영역, 세상가치에 찌든 우리가 그 믿음의 자리에 초대되었다는 감동이 올 때 바로 벽으로 돌아서서 기도합시다. 그렇게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에게 값싼 위로를 구하지 마시고 벽을 향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흘리는 눈물도 보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모르는 아픔, 고통, 슬픔, 답답함, 억울함을 모른다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의 자리에 머문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의 목숨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고, 국가적으로는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고 합니다.

     믿음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들려오는 내적 감동은 기도를 응답해 주고 안해 주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우리의 삶을 꽁꽁 묶어 꼼짝 달싹 못하게 하는 거대담론의 세상 가치를 뛰어 넘는 자리이며, 우리 삶이 세상의 곤고함으로 찌들어갈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화를 거저 베푸시며 날 마다 새롭게 하시며, 새 힘을 주시는 거룩하고도 선한 믿음의 자리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이 믿음의 영역을 종교의 영역으로 퇴락시켜 값싼 위로에 익숙한 세속종교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기도의 자리에 머무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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