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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식에 귀 기울이기(창조절네번째주일, 2021년9월26일)

하늘기차 | 2021.09.25 20:39 | 조회 652

 

                    참 지식에 귀 기울이기

창조절네번째주일                                                                                                        롬10:1-4;13-17

     사도 바울은 태장과 돌로 맞음, 감옥 수감, 배가 파선되고, 강도 만나고, 추위에 떨며, 굶주림의 고난 속에서도 전 세계를 돌며 복음, 십자가와 부활의 기쁨, 값없이 받은 은혜를 값없이 전하며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늘 동족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믿음에 얼마나 열심인 것을 사도 바울은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열심이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결국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이스라엘을 향한 간절한 소원, 기도의 내용은 동족의 구원이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고 탄식하며 그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려면 자기를 생명의 책에서 지워달고 까지 애원하였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저는 이 로마서 본문을 보면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통해 조선의 해방을 꿈꾸었던 김교신 선생님이 생각이 나며, 통일의 꿈을 이루고자 감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북한으로 들어가 당시의 김일성을 만나고 삼팔선을 걸어 남으로 내려온 꿈쟁이문익환 목사님, 그리고 사상계라는 월간지를 내며 군사독재와 싸우다가 암살당한 돌베게의 장준하 선생, ‘씨알의 소리함석헌 선생님, 그리고 그의 벗 녹색십자가부산의 장기려 박사, 원주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장일순 선생님 등 이름 만 들어도 설레이는 전설 같은 어른들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동족들이 가던 율법의 의, 인간의 의, 자기 의에서 돌아섰습니다. 10:2에서 이러한 모습에대해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최근 뜻하지 않게 2050탄소중립위원회 위원으로 2달 여 활동을 해 왔습니다. 온실가스배출을 얼마나 줄여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완화시켜 기후재앙에서 돌아설 것인 가 라는 의제에 나름 시민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오늘 말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읽으니 답답하였습니다. 그동안 인류가 뿜어낸 온실 가스는 성장, 개발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번 국회에서 통과한 탄소중립법의 명칭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입니다. 기필코 성장이라는 말을 넣어서 법을 만들었습니다. 2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 그리고 시민활동가들, 무엇보다 종교계는 한결같이 탈성장 하지 않고는 탄소중립은 요원하다고 하는데, 유럽도 그렇고 모든 나라들이 성장하며 온실가스를 줄이려고 소위 기술력을 동원합니다. 수소에너지, e-fuel, 온실가스 채취, 매립 활용 기술, 페기물 재활용 등, 물론 탄소중립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온실가스를 다른 나라에 팔고, 살 수 있는 배출권거래제도 등, 본질적인 것은 뒤로하고 기술력에 몰입하며 여전히 경제적 가치로 문제에 접근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력과 경제적 접근을 통한 탄소중립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에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아프리카의 원숭이가 목이 좁은 호리병 안에 들어있는 바나나를 먹으려고 손을 넣어 바나나를 웅켜 잡았는데, 사냥꾼이 다가옵니다. 얼른 바나나를 놓고 도망가야 하는데, 바나나를 놓지 못해 결국 사냥꾼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지금 인류가 인류문명역사에 최초로 대하는 기후중립은 마치 인류가 호리병 안의 자본, 성장이라는 바나나를 웅켜잡고 있는 꼴입니다.

     바나나 이야기는 탄소중립위원회 카톡에 제가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고 조심스럽게 짧은 글을 올렸는데, 녹색생활분과의 명지대 건축학부 이명주교수가 자기는 건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면서 저의 글에 답을 주었는데, 정말 온실가스저감을 위해 건물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분으로, 실제 이 분은 그린건축, 에너지제로 하우스 건축에 인정을 받은 분으로 설계기간, 인허가기간, 시공기간을 고려한다면 8년이 너무 짧다고 하며 전문가 입장에서 실제적인, 경제적인 면에대해 어려움을 이야기해주어 감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탈성장하지 않고 정말 기후중립이 가능한지에대해 재차 질문을 던졌습니다. 본인도 다른 에너지, 산업 등과 관련하여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며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나라들의 그래프를 보면 탄소중립과 성장이 같이 갑니다. 산업화 이후 자본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씨스템을 바꾸지 않고 탄소중립이 가능한가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책임자들이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야하는데, 고민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냥 숫자 맞추기만 합니다. 이명주교수가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답답하다고 하며 기후위기는 매우 심각합니다. 당장이라도 뭔가 안하면 안되는데...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라는 말에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신앙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는 언어 체계가 다릅니다. 굳이 구별하자면 신앙은 하나님의 언어이고, 과학은 사람의 언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 구원의 신비이듯이 신앙과 과학은 하나입니다. 쌍둥이입니다. 중세 때에 종교가 과학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종교가, 교회가 진화라든지, 동성애에대한 과학적, 의학적 지식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 번 과학자들의 모임인 ipcc 6차 제1구룹의 보고는 1.5상승 연도가 2050년이 아니라 2040년으로 10년 더 앞당겨 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지식에 귀를 귀울여야 하는데 세상은, 더 정확히 정부와 산업은 귀를 닫고 있습니다. 이명주 교수가 기적이 일어나야 하겠다는 말이 절실히 다가옵니다. 간절하면 통한다구. 예수 그리스도가 기적이요 구원 아닌가요? 죽음에서 생명으로, 십자가에서 부활로, 하나님이 사람으로의 완전한 전환, 이제 지구는 체제 전환이 없으면 살 길이 없습니다. 그동안의 문명은 내려놓고 새로운 체제 전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치 바울이 죽음의 율법체제에서 복음으로 전환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듯이, 지구 모든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 화석 문명에서 새로운 생태 자연적인 삶의 체제로 어렵고 힘들겠지만 돌아서야 합니다.

     바울은 14, 16에서 부름을 받아 보내심을 받아야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이 선포되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으며, 10절 말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처럼, 믿어야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 구원을 받는다고 구구절절 구원의 과정을 전하여 줍니다. 사도 바울은 그 복음을 선포하며 전하는 발걸음에대해 이사야52:7을 인용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합니다.

     그런데 16절에서 그러나!”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하지는 않는다고 하며 율법에 붙들린 자기 동족에대해 안타까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불복종의 이스라엘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바로 그 이방의 기독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다시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구원은, 생명은, 복음은 기적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적은 간절함을 통해 드러납니다. 기적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기 안의 간절함과 절실함, 함께하는 것들에대한 사랑이 믿음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로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했던 그저 말씀만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로마의 백부장, 귀신들린 아이의 병을 고치고자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하고 외쳤던 아이의 아버지, 예수님의 겉 옷자락을 살며시 만졌던 혈루증 앓던 여인, 딸이 귀신이들려 예수님에게 찿아와 멀리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을 때, 자녀들의 빵을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자 주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는다고 하며 치료를 간절히 구했던 수로보니게 여인 등 이렇게 믿음입니다. 간절함에서 오는 사랑의 믿음. 어찌보면 믿음은 사랑의 힘입니다. 인류 역사에 처음 경험하는 문명전환의 시대에 인간중심, 세상 중심의 내 삶을, 내 언어를, 내 행동을 나의 인간관계를 자연생태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전환하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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