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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창조절두번째주일, 2021년9월12일)

하늘기차 | 2021.09.11 15:13 | 조회 639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

창조절두번째주일                                                                                              눅17:5,6;13:3-9;31,32

     지난 화요일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이진형 목사님과 함께 가평 설악동의 가락재영성원 원장 정광일 목사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정광일 목사님은 1990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바로 가평의 현 위치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지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최근 말씀 단상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30년간 가평 숲 속에서 농사지으며 퍼 올린 맑은 샘물 같은 묵상집입니다. 모새골의 유해룡 목사, 그리고 이전 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홍천 산골짜기 하늘길 수도원의 김영락 목사와 함께 우리 교단에 몇 안되는 소중한, ...세 딱히 무어라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영성가? 녹색이라는 말처럼 너무 세속화, 상업화 되어서. . . 수도사? . . . 은둔자?가 좀 나은가. . . 그냥 기도 자리에 머무는 신앙인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하여간 모처럼 몇 년 만에 만나,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무엇보다 기후 위기 시대의 교회 신앙의 자리는 어디인가? 라고 하며 인간의 탐욕으로 무너진 자연 생태의 질서에대한 연민을 품고 자연을 벗하며 지내온 정 목사님과 함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관상기도는 여러 흐름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흐름이 프란체스코와 이냐시오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냐시오 기도 쪽에 속해있습니다. 이냐시오는 군인으로 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와 깨달음을 얻는데, 이냐시오의 기도는 규율이 엄격합니다. 기도를 시간 단위로 쪼개고, 기도 전에 기도할 내용을 숙지하고, 기도 후에도 기도를 피드 백 하며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씀에 머물며 침묵으로 3, 10, 30일의 기간을 기도합니다. 이냐시오 기도는 말씀 중심이고, 성령의 내적 감동에 따라 움직여서 개신교, 특히 우리 장로교 통합 교단의 정체성과 완전 일치합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되는 신앙, 영성입니다. 딱히 규율이 없습니다. 자유롭게 아무 주제 없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기도인데 정광일 목사님은 그렇게 가락재에서 자유로운 기도의 모습으로 지금 까지 지내왔습니다.

     한국 교회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어떻게 교회를 회복할까에 여전히 목을 메고 있습니다. 이 심각한 2년에 가까운 멈춤의 시간을 경험하였음에도 여전히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10년 안에 다가올 기후 재난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10년 이 후를 못 봅니다. 과학자들이 기후에대해 예측한 일들이 실제가 되었고, 20년 안에 1.5로 지구기온의 온도 상승을 막지 못하면 기후 위기가 아니라 기후재앙이라는 과학적 예측에대해 먼 산 보듯 합니다. 신음하는 지구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며 이제는 자연 생태계와 인간이 하나이어야 하며 우리서로같이 교회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름이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는 히브리 민족의 신음을 들으시고 내려 와, 큰 팔과 편 손으로 독수리 날개에 태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사람, 포로된 사람, 눈 먼 사람, 억눌린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와 부활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고통당하는 존재와 함께 교회인데, 8:22 말씀처럼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19절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교회가 이제는 인간 만의 교회일 수 없고, 신음하며 고통하는 자연 생태계와 우리서로같이 교회입니다. 딱 새 한 마리, 발에 밟히는 잡초, 숲과 나무들, 발 끝에 차이는 돌부리 하나, 큰 숨 으로 들이 마시는 공기, 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작은 샘 줄기, 하늘의 별과 해와 달 모두 교회입니다.

     그런면에서 가락재의 정광일 목사님 같은 분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작은 겨자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과 벗하여 자연에서 배우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니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과학문명과 자본, 그리고 편의주의로 무너진 자연의 신음 소리, 생태계의 고통을 아파하며 자연 안에서 기도에 머물며 살아갑니다. 저는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교회가 여전히 다시 회복하자고, 복구하자고 요이 땅! 하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광일 목사님과 같이 자연 안에서 기도하며 스스로 정화하고, 돌아보며 주님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기도합니다.

     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뽕나무를 옮길 수 있다고 하며 비유를 풀어주실 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주인에게 고백을 하는 마음, 모든 주권이 주님에게 있어 불쌍히 여겨 달라며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마음이 바로 좋은 마음 밭입니다. 그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면, 13:8에서 처럼 100, 60, 30배의 결실을 봅니다. 결실은 종말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추수의 결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30, 60, 100이 아니라 그 순서가 100, 60, 30으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 알의 씨앗 안에서 종말론적인 마지막 추수를 보는 것은 맞지만 3, 6, 9/ 3, 6, 9가 아니라 100, 60, 30배입니다. 점점, 성장하고 번영하는 느낌이 전혀 아닙니다. 흔히 교회 성장에 맞추지만, 전혀 아닙니다. 한 알의 씨앗의 종말론적인 이미지는 마13장 뒤에 31절에서 또 한 번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어떤 씨 보다 더 작은 것이 자라 어떤 풀 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듭니다. 바로 이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상징은 100이라는 양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 알의 씨앗이 커져서 온 우주 만물을 품는 하나님 나라, 모든 것이 찿아 와 깃드는 생명, 사랑, 평화, 쉼을 얻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시80편에 나오는 포도나무가 온 땅을 채워, 가지가 지중해에까지 뻗고, 새 순은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이르는 비젼 입니다. 좋은 밭에 심기운 한 알의 씨앗이 자라서 온 우주와 역사를 가로 지르는 하나님 나라 나무가 됩니다. 이것은 농부가 밭에 뿌리는 수백, 수 만 개의 씨앗이 아니라, 씨앗 한 알, 말씀 하나가 좋은 마음 밭, 기도에 임하는 마음 밭에 심기어져 싹이나고 자라 하나님 나라가 되는 형상입니다

     시작과 끝이 씨앗 안에 담겨있으며, 시작과 끝이 다 같이 하나입니다. 죽음과 부활이, 창조와 종말이 하나입니다. 말씀의 씨앗은 여럿이 아니라, 한 알의 말씀이 하나의 마음 밭에 뿌려져 온 우주와 역사로 뿌리가 내려 가지가 뻗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니 새들이 와서 깃듭니다. 이 새들은 이 방인, 이슬람, 성소수자, 장애인, 불가촉천민, 난민, 소상공인들, 노숙인들 등 평범한 우리 모두 입니다. 이 나무는 사랑 없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생명은 사랑으로 건강하게 자랍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하나의 하나님 나라 비젼이 기도 자리에 머물러 묵상되는 말씀으로 심기워져 사랑을 타고 자랍니다. 한 아이가 있어요, 아이가 무언가 부족하고 모자란 듯 해요. 아니면 늘 가는 곳 마다 말썽을 일으켜요. 사람들이 혀를 찹니다. 근데 그 아이의 부모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아니 모르더라도, 모르죠, 그런데 믿고 사랑합니다.그래서 믿음은 하나님 믿음입니다.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그 믿음입니다. 그 사랑과 신뢰가 그 아이의 생명 씨앗에 감추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에 싹을 튀우고 뿌리가 내리고 물론 우리들의 시간 보다 늦을 수가 있지만 가지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많는 살아있는 존재들과 교감을 하는 멋진 커다란 나무로 자랍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요15장 포도나무 비유에서 11번이나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6절은 머물러 있지 않으면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 말라서,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버린다고 하며, 5절은 머물러 있으면 열매를 맺고, 더 나아가 11절은 계명을 지켜 사랑 안에 머물러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을 뿐 아니라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연생태기후위기의 시대에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우리서로같이 한 알의 씨앗으로 하나의 좋은 마음 밭에 뿌려져, 우주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하나님 나라, 성령도 하나요,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요, 그리스도도 하나요, 우리서로같이 하나의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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