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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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성령강림후열세번째주일, 2021년8월22일)

하늘기차 | 2021.08.21 15:48 | 조회 489


                                에바다 !

성령강림후열세번째주일                                                                                           마7:31-37; 9:1-6

     코로나의 발현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지구상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존재 양식과 가치 체계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자본에 편승한 인간의 모든 산업, 문화, 사회, 그리고 종교도 멈추어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종종 어느 교회들이 대면 예배에대해 종교 탄압이라고 하며 지금의 20% 제한을 강하게 반발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거리두기 4단계를 통해 소상공인들, 자영업, 그리고 중소기업들이 자신들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지도 못한 체, 폐업을 하거나 근근히 버티어 나가고 있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성도는 예배드릴 때 나에게 있는 것 중에 1/10을 감사로 드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9/10은 어디에 있나요. 세상에 두고 하나님께 나아 온 것입니다. 그러면 9가 있는 세상이 그렇게 힘들어하며 파산하고, 죽어가는데, 멈추라하시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1/10인 교회의 예배를 9/10를 무시하고 드리겠다는 것은 너무 유아기적이고, 생각 없는, 철없는 이기적 모습이 아닌가 십습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릴 명분이 없습니다. 9/10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무슨 낯으로 뵐 수 있나요?

   그럼에도 하나님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멈추라 하였지만, 멈추면 죽을 수 밖에 없어, 염치불구하고 살려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서의 말씀처럼 너희들의 제사는 신물이 난다’, ‘불살라바치는 가축들의 타는 냄새가 역겹다고 하시지만, 생명이 하나님에게 있어서 무뢰함을 무릅쓰고, 살려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죽어도 주님 앞에서 죽겠습니다는 심정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예배를 안 받으셔도 그래도 주님 만이 희망이니 주님께 어린아이처럼 마치 잘 못을 저지른 아이가 회초리를 든 엄마에게 달라 붙어 치마폭에 안기는 심정으로 고기교회는 그렇게 주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멈추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충한 마음으로 교회 건축을 하고, 가정 예배를 드린지 16개월이 넘어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력이 더 강해진 바이러스로 진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이 90%이상 면역이 되면, 중증이나 사망률이 떨어져, 독감 같이 일상적인 면역체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만간에 모여서 예배드릴 때가 오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펜더믹 상황이 오면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찿아가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의 핍박 속에서 놓지 않았던 것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에대한 배려였습니다. 우리 고기교회도 현장으로 찿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두로에서 시돈으로, 그리고 데가볼리를 지나 갈릴리로 버려진 이방지역을 두루 돌아 갈릴리로 돌아 오셨는데, 쉴틈도 없이 예수님은 언어장애인을 고쳐달라는 간청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그 장애인을 외 딴 곳으로 데려 가서 귀와 입에 손을 대시며 에바다하자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똑바로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을 붙잡으려고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 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는냐?”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고 그 후에 시력을 잃게 되는데, 사람들이 다마스쿠스로 사울을 데리고 가, 그 곳에서 아나니아라는 주님의 제자를 만나 다시 눈을 뜹니다.

     가평에는 가락재라는 피정 공간이 있습니다. 정광일 목사님이 30년 전 그 곳에 자리잡고, 자연과 더불어 농사와 말씀 묵상을 하며 느낀 영적인 기록들은 영적 각성, 영적 눈을 뜨게 하며, 영적 귀가 열리게 합니다. 정목사님은 불어오는 바람, 빛 나는 태양, 흐르는 시간과 계절에 맞추어 숲과 나무와 흙, 그리고 밭 고랑을 다듬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의 구름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결에서도 문득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듣는 것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합니다. 눈을 감으면 보는 것을 중단할 수 있지만, 귀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항상 열려있으므로 언제든 불시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훈련하는 것이 기도이며, 제자의 도리라고 하면서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생긴다며 하나님이 사람의 말을 듣고, 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도라 합니다. 세미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보는 것을 멈추고 듣기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눈은 감으면서, 정녕 생각의 눈을 여전히 감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미세한 영적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들음이기 보다는 들림이라고 합니다.

     아람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포위하자 시종이 기겁을 하고 엘리사에게 알리자 엘리사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시종의 눈을 열어 도단성 주위 언덕에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게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닥쳐오면 그 실제에 근심하며 두려워합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님이 앞에 계시는데도 풍랑을 보고 두려워 바다에 가라 앉은 것과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주님을 놓치고 풍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눈이 많은 것들, 특히 집어삼킬 것 같은 큰 파도의 위협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기 싶상입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듣는 것입니다. 정광일 목사님은 생명이 태어나려면 찢어지는 아픔이 있다고 합니다. 흙이 갈라져야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껍질이 갈라져야 연한 가지가 나와 거기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고 하면서, 살이 찢어지는 진통을 통해 생명이 태어나며, 역사의 살이 찢어져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니, 껍질 때문에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치 잠잠해질 바다의 풍랑같은 것이니, 포장이 찢기고, 갈라져야 그 안의 소중한 물건을 볼 수 있다고 하면서 겉사람은 낡고 병들지만 속사람은 그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야한다고 합니다.

     송강호 박사님의 개척자들의 류복희님이 아프카니스탄의 어느 마을에 도착하여 알게 된 할머니는 촌장의 누님이신데, 함께 마을 길로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 마다 모두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에서 이 할머니가 얼마나 존경을 받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슬람으로 사셔서 평생 자기 얼굴을 내 보이지 못하고 사신 분인데, 어느 날 히잡을 벗고 사진을 찍어달라 하여서 여러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함께 즐거워하였다고 하며. 이 할머니의 소녀시절은 어떠했을까, 어떤 꿈을 꾸었을까? 보통 이슬람은 신랑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60세가 넘은 할아버지에게 15, 6세 소녀가 시집(팔려)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억울하고,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어떻게 지켰나. 그리고 이제는 존중 받는 아내와 어머니로 당신의 말을 하시게 된 이 삶을 얻기 까지 얼마나 외롭게 자기 자신을 지켜왔을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굳은 살 베긴 손 마디 마디에서 그 동안의 얽매인 삶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이 할머니는 함께 있으면 편하고 즐거워질 만큼 그 말과 움직임 속에서 따뜻함과 배려가 베어나오는지? 평생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주어진 삶 속에서 스스로와 함께 한 모든 것에 충실했고, 불의하고 불공평했던 물론 그 부당한 제도와 관행에 대항하며 싸우지 않았지만- 삶을 당당하게 마주하며 당신 안에 있는 빛을 소멸시키지 않고 자신의 주변을 따뜻하게 밝히며 평생을 살며 웃음을 선사하는 삶을 사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어떤 조건 속에서도 소멸시키지 않고 선하고 아름답게 발현하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는 등불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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