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본다(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 2021년7월25일)
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201년7월25일) 사35:1-1
지난 5월29일 정부에서 구성한 2050탄소중립위원회에 저는 KNCC,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으로 국민참여분과 위원으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위원회는 에너지 혁신, 경제 산업, 과학기술, 공정 전환 등 국가 전반에 관련하여 모두 8개 분과로 되어있고, 위원장은 당연직 김부겸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입니다. 이번 위원회는 이전의 기후위원회 등과는 달리 법적인 구속력이 있어서 의견을 수렴하는 정도가 아니라, 탄소중립전반에대한 의결권을 갖고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하고도 엄중하게 세워졌습니다. 제가 속한 국민참여분과위는 국민과의 소통·교육·홍보, 국민 캠페인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종교단체로는 카톨릭, 불교, 원불교 이렇게 4개 종단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산림 등), 제거(CCUS)해서 실질적인 배출량이 0(Zero)가 되는 개념입니다. 즉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으로, 이에 탄소 중립을 ‘넷-제로(Net-Zero)’라 부릅니다.
탄소중립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이래로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은 1997년의 교토총회에서 결의된 선진국 중심의 교토의정서 보다 더 강력한 온실가스배출감소목표를 세웠습니다. 2050년 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온도상승폭을 1.5℃이하로 낮추기 위해 중간단계로 2030년 까지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와 LEDS(장기 저탄소 발전전략)로 일컬어지는 2050탄소중립추진전략을 세워 2010년 대비 온실가스를 45%이상 감축을 하여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하였는데, 한국은 지난 2020년 12월 탄소중립전략계획에서 목표율을 37%로 정하여 국제협의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50년 까지 산업화 이전에 대비하여 지구온도상승폭을 1.5℃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해양의 산호초, 생물종대량멸종, 해수면 상승, 기후난민의 증가로 국경분쟁, 물부족, 식량의 위기로 전 지구적 재난에 처 할 수 밖에 없는데, 산업화 이후 지속되어 온 화석문명의 전환, 그것도 급속한 전환의 시기를 우리 당대에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2030년 9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의 반 이상을 줄여야합니다. 지난 14일 EU집행위원회는 한층 강력하게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 위한 패키지 정책인 ‘핏포55(Fit for 55)’를 발표하며 2026년 부터는 탄소국경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여, 이제는 탄소중립이 국가산업과 경제, 일반인의 일상의 최우선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가장 급하게 와 닿는 의제는 석탄발전소 완전 폐지, 원자력도 물론이구요 그리고 내연기관자동차는 2035년 생산중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석탄산업의 비중이 높은데, 특히 제철의 경우 에너지원인 석탄에서 수소환원제철공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수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산화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 풍력등의 재생에너지개발, 그리고 탄소포집저장이용 등 급속한 에너지전환을 우리 시대에 이루어야하는데, 이로인해 일자리를 잃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전환이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는 탄소중립을 실현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탄소 0, 넷제로의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이 번 주도 매우 덮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델타변이로 보다 빠르게 전염이 확산되고, 당분간 폭염이 계속 될 것 같은데, 최근 폭염, 가뭄, 홍수, 그리고 강추위 등 기후이변에 익숙해져 갑니다. 국민들의 피로도가 증가합니다. 기후자연생태의 위기 속에 이사야서의 말씀을 다시 읽게됩니다.
구약의 말씀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약은 오신, 그리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말씀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짓지 않고는 해석되지 않는 본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 .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 메마른 땅, 사막에 샘이 솟고, 시내가 흐르고, 꽃이 핀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해석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눅7:22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당신이 정말 오실 그 분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35과 61장을 인용하여“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는 순간,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통해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순간 이 말씀은 초시간적인, 초우주적인, 다시말해 영적인 언어요, 사건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 시어는 그냥 2,500여년 전의 이스라엘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와 온 피조세계에 구원의 소망, 회복의 은총을 줍니다. 광야의 메마른 땅, 사막이 기뻐하며, 백합화처럼 아름답게 피어나 하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누가 그렇다는 것인가요?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겠습니까? 질경이와 가시넝쿨을 내어 남을 찌르며, 아프게 하는, 광야와 같이 되어버린 우리 인류의 영적 상태입니다. 모든 신앙의 가치, 윤리가 무너져버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 한글개역 표현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4절에 무엇이라고 되어있나요?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러나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사탄 마귀에게 붙들려,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를 다 빼앗긴 우리를 치료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이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은 바로 죄악의 세력에의해 피폐해진 우리 인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렇게 피폐해져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석을 하면생명이 살아나며, 회복됩니다. 7절은 “. .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 이 길을 갈 가요? 9절 “오직 구원받은 사람”이라합니다. 롬8:18은 신음하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고 합니다. 인간에의해 피폐해진 이 참담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소망을 통해 화석문명에서 영적문명으로, 죽음의 권세에 얽매인 우리로부터 영광스러운 자유로움으로의 영적 전환을 예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소망해봅니다. 기후위기 시대, 2050탄소중립이 엄중히 요청되는 때에 영적 눈을 열어 하늘의 아름다운 영광을 보며 거짓 종말론에 미혹당하지 말고 하나님의 창조질서회복의 자리에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