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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기쁨에 초청받은 기쁨(성령강림네번째주일, 2021년6월20일)

하늘기차 | 2021.06.20 10:28 | 조회 581


                주인의 기쁨에 초청받은 기쁨

 

성령강림네번째주일(2021620)                                                            15:1-7;10:27-28,34-36

     오늘 말씀에서 바리새파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못 마땅해 합니다.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세금을 100 걷어 오라고 하면 예를 들어 120, 130을 걷어 나머지는 자기가 착복하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고, 또 죄인들은 그 수 많은 율법의 규정들, 예를들어 산채의 1/10까지, 안식일에 의자를 몇 m 옮기면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괜찮고, 나귀를 안식일에 강가에 데리고 가서 물을 먹이면 괜찮고, 물을 떠다 먹이면 위반이고 할 정도로 사사건건 일상을 율법화하여, 특히 땅의 사람들, 목동, 소작농, 이방인 등의 사람들은 그 규례를 지킬 수 없어 자동으로 죄인이 되었는데, , 글쎄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당시 이방인, 노예, 여성은 투명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복음은 예수 탄생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엘리사벳, 마리아, 안나, 나인성 과부,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붓는 여인, 마리아와 마르다 등 여성의 관점에서 성경을 기록 합니다. 뿐만아니라 이방인과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사마리아인 문둥병자, 스로보니게 여인, 로마의 백부장, 그리고 삭캐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할 때 사마리아에는 가지 말라고 하는데, 누가에는 그 문구가 없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에대해 이사야서를 인용할 때에도 마태, 마가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주의 길을 예비 하라고 하는데, 누가는 골짜기는 메우고, 산과 언덕은 평평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며 십자가 아래에서의 만인 평등의 인류애를 추가합니다.

     최근 차별금지법에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계에서는 특히 성에대한 조항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데,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종교학자 한승훈님은 성경은 지금의 관점에서 성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고 하며, 레위기와 바울 서신 등에 명시된 남성 간 성교 금지 구절들이 당시의 이교적(異敎的)이거나 억압적인 성문화를 다루고 있을 뿐 동성애와 연결될 수 없다고 합니다. 성경은 동성애라는 개념을 알지 못하며, ‘동성애라는 일반 개념은 19세기에 처음 등장했고, 이것이 질병이 아닌 성적 지향의 유형으로 확인되고(이 말은 치료할 수 없고, 바뀌어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당사자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성경이 동성애를 반대 혹은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시대착오입니다. 이번 차별법은 성뿐만 아니라, 나이용모지역·학력혼인 상태종교정치적 성향가치관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입니다.

     성을 포함한 차별법 전반에대해 교회는 법이나, 윤리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걸려 넘어지기 십상입니다. 주님처럼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법이나, 윤리를 완벽하게 지킬 수도, 행할 수도 없으며, 교회는 행함에 근거한 종교가 아닌 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며 성령을 요청했는데, 자꾸 윤리와 법으로 가려고 합니다. 교회가 제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19일 헤른후트 본문 말씀에 가이사랴의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만난 베드로가 행10:28에서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부정

                    하다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고 합니다. 법과 주님의 지시가 상충합니다. 마치 홍해와 이집트의 군대 사이에 끼어있는 히브리 노예들과 같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히브리 노예들이 모두 홍해를 건너 자유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약속과 명령 사이에 끼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손에 든 칼이 이삭을 죽이는 것처럼 목에 상흔을 남기며 살짝 비켜 갔다면, 아니면 정말 이삭의 목을 칼날로 따 버렸다면 그것은 둘 다 믿음의 행위가 아닙니다. 명령도 언약도 모두 무너지고 불신앙의 아버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명령에 따라 이삭의 목에 칼날을 꽂으며 이삭에게서 자손을 볼 것이라는 언약에대한 믿음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하나님께서 어이쿠! 그만!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이긴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해 모두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은 예수그리스도 사이에 위치해 있지만 자유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사람이 양 100 마리를 키우는데, 그 중에 1를 잃어버리면 99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찿을 때 까지 찿아 다니지 않겠느냐?", "찿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찿았습니다."하고 말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누가는 4:18에서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

                        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

                        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

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며 희년을 전합니다. 기독교의 기쁨은 희년의 기쁨이요, 회복의 기쁨이요, 돌아서는 기쁨입니다.여러분 기쁜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닌가요? 남편 때문에,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자녀문제로, 잘 못 얽힌 파트너쉽 때문에, 병으로 인해서, 말 못할 사정으로, , , 그리고 나 자신 때문인가요? 기쁨없음은 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나에게 집착을 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요?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집안에 오리 한 마리 잃어버리면 온 동네를 돌며 찿아나서는데, 마음 잃어버리면 찿을 줄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내 마음 중심이 아니라 한 쪽 곁에 놓아두고, 자기 자신에 몰입되어있지는 않는지요?

     언젠가 한 번 말씀드린적이 있는 일산 호수교회 백경천 목사님이 이달 말에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혈당, 페절단, 백혈구 부족, 콩팥기능저하, 끊임없는 검사. . . 반복되는 입퇴원 그럼에도 목사님의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기쁨과 자유로움, 삶에대한 사랑은 우리 모두를 생명에대해 새롭게 보게 합니다.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속에서도 여전히 병상이 일상이 되어 신학탐구와 글쓰기, 그리고 차별법에대한 연대운동의 글을 SNS에 계속 올리며, 교회 개혁에대한 외침을 멈추지 않습니다. 주님이 백목사님 중심에 계신 것이 보입니다. 주님 십자가 사랑에서부터 끊임없이 생명의 기운이 살아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기쁨이 누구의 기쁨인가요? 목자가 기뻐합니다. 혼자 기뻐하나요?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 할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 군복무중에 성전환수술로 강제전역을 당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고 변희수 하사, 택배노동자, 지하철노동자, 건설현장, 난민들, 노숙인들 등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자리를 생명의 활력이 넘치는 삶의 자리로 바꾸어보자는 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입니다. 이것은 마치 양 한 마리를 어느 죽음의 골짜기에서 찿아 어깨에 둘러 메고 덩싱덩실 춤을 추며 마을로 돌아 온 목자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함께 기뻐하자고 한 말씀 그대로입니다. 끝 까지 찿아가서 구해오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기쁨은 나 혼자의 기쁨이 아니라, 목자의 기쁨의 자리에 초청 받아 모두 함께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내 개인을 포함해 희년 회복의 기쁨이 우리서로같이 교회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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