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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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람, 새 사람(창조절 일곱째주일, 2017년10월15일)

하늘기차 | 2017.10.15 15:17 | 조회 409


                 속 사람, 새 사람

 

20171015(창조절 일곱째주일)                                                          3:14-21;4:17-24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거듭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반복하는 이유를 하나는 요한의 세례 밖에 몰랐던 에베소교회의 내적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 도시의 세속적인 풍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왜곡하고, 위협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계획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의 통일은 요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4절의 첫 마디는 그러므로라고 하면서 성령을 통하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4:24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는데, 세상이 무지하고, 완고하여 어두워졌으며, 수치의 감각을 잃어버렸고, 방탕하며, 탐욕과 더러운 일을 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18절에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물고기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고, 꼼짝 안고 가만히 있기도 하고, 서로 뽀뽀하며, 싸우기도 하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수초를 누비며 살아가는 것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들이 물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단지 불편하거나, 거북스러운 것이 아니라, 물숨을 쉴 수 없으니 죽음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접 호흡을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일치됨이 없다면 죽은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에베소의 사람들이 그렇게 허망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이 두렵고, 답답하며, 불만과 우울함과, 미움과 어두움이 반복된다면 한 번 자신이 살아있나, 아니면 죽었나 살펴보십시오. 어릴적 여우야 여우야~~하니~~? 밥먹는다. 무슨반찬~ 개구리반찬! 하고는 마지막에 뭐라고 묻나요? 살었니? 죽었니? 하고 묻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죽은 삶을 사나요, 아니면 생명의 삶을 사나요? 한 술 더 떠 죽었는데 살아있는 척 하나요? 종교는 살아있는 척 하기에 아주 편한 틀을 같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3, 24절에서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입으라고 합니다.

     3:16에나오는 속 사람이라는 말과 4:24에 나오는 새 사람(3:10)이라는 말이 언뜻 비슷한 것 같은데, 찬찬히 보니 속사람은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강건하기를 구하는 내용이고, 새 사람과 관련해서는 욕망에서 벗어나 새사람을 입으라는 윤리, 도덕을 말하고 있습니다. 속사람은 기도와 관련되어있고, 새사람은 행함으로 이어집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속 사람은 성령을 통하여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기를 기도하고 있고, 새 사람은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며 성령을 통해 새롭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사람, 새사람, 참사람 모두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광적인 것 말구요. 전체주의적인 것 말구요.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1:10에서 하나님의 뜻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한 통일이라고 하였는데, 3:6에서는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1장이 거시적이라 한다면, 3장은 미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의 그 미시적인 계획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바라보는 하나됨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서의 하나됨의 시대적 요구는 무엇일까? 라고 묻는 것은 합당합니다. 3: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하나됨을 복음이라 하면서 이 복음의 일꾼이 된것은 하나님의 능력에따라 나에게 베푸신 은혜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10절에서는 영원전부터 감추어져 있던 이 비밀의 계획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교회를 통하여 알리시려 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신비로운 뜻과 계획이 교회를 통해 드러나며, 세워져 나간다고 하는 것을 끝까지 놓치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탁월한 비죤이요 시대적인 절실함이 묻어나는 문장인가요? 우리가 몸담고, 함께 사랑의 띠를 띠워 세워지는 그리스도가 머리되시는 고기교회는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가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참 탁월한 하나님의 이 세상을 위한 통일됨과 하나됨, 우주와 역사의 하모니의 계획이 교회의 안과 밖에서 왜곡되고 방해를 받아 어렵다는 것을 알고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3:8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하는데, 이것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의 자기 정체성입니다. 은혜입은자의 모습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성도들이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 못합니다. 내가 왜 죄인이야!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렇게 됩니다. 자연인으로, 사회인으로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비기독인들은 죽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 그렇게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냐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죄인이라 고백하는 것이 긍정적이며,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 부정적입니다. 기독인은 거꾸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고백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그리고 속 사람을 성령을 통하여 강건하게 하여달라고 기도합니다. 속 사람이 강건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다음 말씀에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신다고 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면 강해집니다. 요일5:1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는데, 그 믿음이 금방 사라지지 않고 깊이 뿌리를 내리기위해 사랑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달을 수가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빈다고 합니다.

     지난814일 벽제 동광원의 박공순원장님이 87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는데, 늘 몸소 농사일과 공동체 집안일을 다 해온 원장님은 노환으로 거동이 어려워지자 한 달 반 동안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하고선 귀천했습니다. 맨발의 성인, 고아들을 품으신 이현필 선생님의 제자인데, 밝고 맑은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갔습니다죽음을 마지하는 모습은 우리 생명의 고귀한 마지막 모습이 아닌가 십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까지 주님이 주신 생명을 다 소진하고 왔던 곳으로 다시 가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강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 느껴봅니다. 집사람하고 어쩌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마지막에 그렇게 가자. 누구든 먼저 곡기를 끊을 때, 그렇게 옆에서 보아 줘야해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주님 만나러 가는 길, 기쁘고 즐겁지 않겠나 싶습니다. 고후4:16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죽음이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 유치원아이들이 함께 줄맞추어 걷는데, 한 아이가 열에서 나와서 땅에 있는 나무 잎파리를 주어서 선생님께 보여주는 거예요.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지요.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주변의 것들에대한 인식을 확장시켜 갑니다. 그래서 살아있어요. 아이들에게는 풀 한 포기, 밤 한 톨, 하늘의 구름 한 조각이 다 살아있어서 자연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눕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하나님 나라 사람입니다. 근데 그 새로움, 낯설음이 아이들의 전유물 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이 우주와 역사를 보며 그리고 이 사회 속에 비밀스럽게 세워져나가는 하나님 나라를 보면 날마다 새롭지요. 거기서 하나님을 보거든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는 것을 보거든요. 그러면 새롭지 않겠습니까?

   요즈음 살인 사건이 거듭 뉴스에 올라오고, 자살 사건도 끊임없이 회자되는데, 도를 넘는 것 같아 암울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렇지 않았겠나 십습니다. 사도 바울은 속사람이 강건하여 새 사람이 되라고 기도하며,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참기름, 참나무라고 하듯이 참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회 소속의 정일우신부의 다큐영상이 곧 개봉될 것 같습니다. 정일우 신부는 한국의 빈민들과 함께한 사람입니다. 저는 정일우 신부를 2번 가까이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흑석동 교회의 청년전도사로 있을 때, 상계동 개발에따라 청개천에서 이주 해 온 사람들이 또 밀려날 때, 청년들과 함께 철거현장에 라면박스 들고 찿아갔던 기억이 선합니다. 그리고 한 번은 서강대 이냐시오연구소에서 열었던 영성지도자 학교 때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동영상 예고편에서 인상적인장면을 보았습니다. 진짜 사람이 되고 싶었던 파란눈의 신부라는 자막이었습니다. 인종, 국적, 나이, 성별 빈부차이 모두 상관없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평생예수님을 따른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어떻게 따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이를 때 까지 평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이라든가, ‘이라든가, ‘라는 접두사를 사람 앞에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사도바을은 성령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전2:9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라고 하는데,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 합니다. 이 깊은 사랑, 속 사람이 강건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결국 영의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님이 1944년 종전을 한 달 앞두고, 사형되기 직전에 가족을 위해 쓴 마지막 시에, 독일 기독교 음악가인 지그프리트 피에츠가 곡을 붙인 노래가 있습니다. <선한 능력에 감싸여>라는 곡입니다. 작년에 홈피에도 올렸었는데, 듣고 싶은 분은 교회홈피 신앙의 자리 처음자리 묵상으로 들어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운률에 맞춘 가사를 잘 들으며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한능력에 감싸여(Von Guten Maechten)

            1. 선한 능력에 고요히 감싸여 / 놀라운 보호와 위로 속에

                여러분과 오늘을 살고 싶고 / 또 새로운 해를 맞고 싶소.

            2. 아직 옛 것은 우릴 괴롭히고 / 버거운 짐 되어 짖누릅니다.

                오, 주여, 내몰린 내 영혼 위해 /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3. 어둠 속에 주께서 켜신 촛불 / 오늘도 밝게 타오르소서.

                주 항상 어둠 밝히심 아오니 / 우리 다시 하나 되게 하소서.

    <후렴> 선한 능력의 보호 받으며 / 믿음으로 모든 일 기다려.

                주 우리 곁에 늘 함께 계시어 / 또 새로운 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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