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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의 여정(창조절 네째주일, 2017년9월24일)

하늘기차 | 2017.09.24 14:41 | 조회 419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의 여정

2017924(창조절 네째주일)                                                                            4:18-25

     성경은 아브라함에대해 이야기할 때 조카 롯도 함께 기록을 합니다. 롯은 할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할 때 까지 삼촌 아브라함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가축들이 많아져 함께 키울 수 없게 되자, 갈라서게 되어, 아브라함은 헤브론 광야를 택하고, 롯은 소알 평야를 택합니다. 아브라함이 택한 땅에대해서는 말이 없는데, 롯이 택한 땅에 대해서는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 같았다고 합니다. 그 후 롯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다가 소돔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데 13:14절 기록을 보면 느낌이 확 차갑게 다가옵니다. ‘롯이 떠나간 뒤에라고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찿아와 네가 보는 모든 땅과 땅의 먼지와 같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한 후에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곳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무슨 말로 일단락을 짓는가 하면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 바쳤다고 합니다. 롯에대해서는 땅에대해 기록을 하지만, 아브람에대해서는 예배에대해 기록을 합니다. 항상 물질이 문제입니다. 가축이 많지 않고, 그저 가솔들이 먹고 살만한 정도만 되었다면 롯은 항상 아브라함과 함께 살지 않았겠나, 그러면 함께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중동에 큰 전쟁이 일어나자 롯이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잡혀가는데, 아브람은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사병들을 데리고 뒤 쫓아가 롯과 롯의 가족들, 그리고 몰수된 재산들도 도루 다 찿아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하는데, 성경은 19:29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여 롯을 그 재앙에서 건져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아브라함과 롯은 보다 극명하게 삶이 다르게 기록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 사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인 이삭을 바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반면에 롯은 술에 만취하여 딸들의 종족 보존을 위한 욕심에 두 딸과 동침하여 자손을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계속 이스라엘과 갈등을 일으킨 모압과 암몬 족속이 됩니다.

     롯에대해서 성경은 딱히 기록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쨌든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계속 관계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롯에게도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있었을텐데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사업을 하고, 집을 짓고,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는 사라져 없어질 것들이 전부입니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 일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삶이 먹고 마시는 일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점점 차이가 벌어집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게 먹고 마시며 일상을 살아가지만 인상적인 2가지 장면을 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는 2가지 축이 있습니다.

     나는 중동의 큰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카 롯을 그의 가족들과 잃어버린것 까지 모두 회수하며 구원한 혁혁한 전과를 얻은 후인데, 15장은 아브라함이 매우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하였음에도, 나이는 먹어가는데, 후계자는 아직 없고 하니, 여러 가지 생각들 속에 두려워 급한마음에 그의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으려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네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며 하늘의 별처럼 네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주님을 믿으니, 아브라함이 그 믿음을 인정해주십니다. 그 후에도 자식은 없고, 부족은 점점 후계자를 원하고 하자 불안해진 아브라함은 이집트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습니다. 그 때 나이가 86살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지 11년이 되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완전하지 않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신 것인데,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 안에 심기어진 믿음의 씨앗을 보고 아브라함을 인정해 준 것입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고, 그 후에 물을 주고, 거름 주고, 잡초도 뽑고, 속아주고, 그리고 햇빛도 듬뿍 받고 해서 열매를 맺듯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셔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의 또 다른 축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때입니다. 이 때는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어,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이 13살 쯤 되는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십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흠뻑 이스마엘에게 쏠렸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이제 99세의 나이에 물건너 간 것 같고, 이스마엘이 건강하고 똑똑하게 잘 자라서, 비록 여종에게서 났지만, 자기에게서 난 아들이니 후계자로서 부족함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며 하나님과의 언약이 가물가물 할 즈음에 주님이 찿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17:17에 보면 혼잣말로 내가 100살이고, 마누라가 90인데 하며 쓴 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마엘이나 잘 자라게 해주셔서 복을 듬북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의 상속자는 아내 사라에게서 태어날 이삭이라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시한번 자신의 계획을 철회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는다는 증거로 모든 가족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렇게 이스마엘을 보고 하나님에게 어긋장 놓다가 퇴짜맞고 다시 약속을 새롭게 갱신한 직후입니다.

     18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 곁에 한 창 더운 대낮에 앉아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사람이 셋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 그들을 맞이합니다. 보통 중동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매우 친절합니다. 그러나 부리나케 달려나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는 것은 지나친감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이 이제는 하나님의 깊은 자리에 까지 나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하나님의 것에 더 가까이 내면에서 다가서지 않나 싶습니다. 두 번의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 확실히 알았을 것 같고,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래는 노인네가 이제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고개를 드니 앞에 불현 듯 세 사람이 서 있습니다. 올 것이 왔다는 직관이 오지 않았겠나. 맨발로 뛰어나가 그들을 영접하였고, 내년 이 맘때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언약을 받습니다.

     롯은 세상적으로 보면 좀 더 좋은 삶의 조건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롯에대해 성경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그 멸망 한 복판에 있었고, 구원의 손길을 뻗쳤을 때에도 세속의 일상에 젖어버린 롯은 빨리 빠져나오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도 끄물거렸다고 기록합니다. 롯에 일상은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잔잔한 호수, 잘게 부서지는 파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삶은 드라마입니다. 아마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찿아오셨을 때, 무심했다면, 그저 자기 좋은 일 꾸준히 해 나갔다면,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찿아와 도전을 줄 때 끊임없이 자기를 내려놓고, 비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니 삶이 요동을 칩니다. 99세에 아브라함은 내년 이맘때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이미 경이 끊어진 사라와 동침을 합니다. 김현주 목사는 이 모습을 후계자에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소망하는 숭고하며, 아름답기 까지한 사랑의 동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롯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딸들이 종족을 보존키 위해 술취한 아버지를 속여 동침하여 자손을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계속 이스라엘과 갈등을 일으킨 모압과 암몬 족속이 됩니다. 약속의 사람과 약속이 없는 사람의 삶이 이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로 갈라섭니다.

     , 영화에는 감독이 있고 연기자가 있습니다. 연기자는 연출가의 앵무새가 아닙니다. 그 작품에대한 감독의 해석을 혼신을 다하여 무대에 표출하며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독의 역할 중에 가장 큰 역할은 역시 캐스팅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영화는 전혀 캐스팅이 잘 못되어 영화의 반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믿음의 시작점에서 아브라함을 캐스팅하였는데 기가막힌 캐스팅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롯이 더 나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바라보는 관점은 다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성경이 펼치는 파노라마에서는 신앙의 배우가 얼마나 하나님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표출하는가에대한 이야기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고기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펼쳐나갈지는 캐스팅된 사람이 하나님이 고기교회를 통해 뜻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느끼고, 그러니까 성령의 내적 감동을 따라, 이름 없이, 빛없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혼신을 다하여 자기 역할을 해냈습니다. 마지막 이삭을 바치는장면은 어느 드라마 보다 극적인 반전인데, 아브라함이 해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구약에서는 예언자 하박국으로 이어져 합2:4에서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당시의 모든 것이 무너진 때

에 하나님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신앙고백이 되었고,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롬1:17에서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며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드러내며, 그리고 종교 개혁시대에 이르러서는 루터를 통해 오직 은혜, 오직 말씀,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당시에 만연한 카톨릭의 타락을 가로지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역시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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