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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의 신비 : 교회Ⅱ(창조절 세째주일, 2017년9월17일)

하늘기차 | 2017.09.17 13:35 | 조회 383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 : 교회

  2017917(창조절 세째주일)                                                                            4:11-16

    에베소서의 앞 부분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것들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수요일 김준표 목사님을 통해 마침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에베소교회에대해 들었습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거듭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반복하는 이유를 2가지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아볼로라는 전도자를 중심으로하는 에베소교회의 분위기 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의 에베소라는 도시의 풍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왜곡하고, 위협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울은 3차전도 여행 때에 에베소에 2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아볼로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알렉산드리아 태생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볼로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추측컨대 헬라학문에 익숙하여 매우 학구적이지 않았겠나, 더구나 유대인이었으니 율법에 정통하였을텐데, 18:25에 이미 주님의 를 배워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배워서 알았나요, 들어서 알았나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한 1장 내용을 보면 5절에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들어서 알았는데, 바울이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고, 6절에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복음은 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전해집니다. 복음의 전파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의 아볼로에게는 학구적인, 그래서 라고 기록한 지식체계 만이 보입니다. 역시나 행25절에 보면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 밖에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볼로에게서 보여지는 분위기는 에베소교회 전체의 분위기였습니다. 아볼로가 복음을 세례요한의 세례로 가르친 것입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2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좀 더 충분히 전하지 못한 것이 빌미기 된 것 같습니다. 실제 18:20에서 에베소교회는 바울에게 에베소에 좀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며 2차 전도 여행 마무리 합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동안에는 2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게 되는데, 아마도 아볼로는 바울의 2차와 3차 전도여행 사이에 에베소에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 밖에 몰랐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합니다. 아볼로 뿐만아니라 에베소교회 자체가 성령의 세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성령을 구하니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말하였다고 합니다.

     지적으로, 세상의 가치로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교회는 혼란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직 모르고, 복음에대해, 기도에대해, 그리고 교회가, 신앙생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익숙치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3040년을 교회에 다녀도 자기 생각과 경험에 붙잡혀서, 그리고 자기가 어디서 예수를 믿게되었는데 하며 그 옛 신앙, 옛 자세를 그대로 가지고 교회를 바라볼 수도 있는데,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 교회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지향성을 갖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교회가 서로 사랑의 띠를 띠며 연결되어 성전으로 자라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18: 26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따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누구인가요? 천막짓는 노동자였습니다. 당대의 뛰어난 학자요 구약에 정통한 아볼로가 천막 제조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복음의 도를 배웠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만일 아볼로에게 이같은 겸손함이 없었다면 세례 요한의 율법에 묶여 평생 복음의 진수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복음 앞에, 교회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바울이 거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이야기한 또 다른 이유는 에베소 도시의 풍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베소는 당시 로마제국의 소아시아 거점도시 로서 정치, 경제, 문화,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특히 에베소인들은 아테네여신을 생명과 풍요의 여신으로 숭배를 하였는데, 신전은 그 길이가 130m, 넓이가 67m(축구장 105X68), 높이가 18m에 기둥이 127개나 되는 불가사의한 거대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에베소는 온 도시가 아테네신전을 중심으로 우상과 세상적인 풍요와 즐거움으로 넘쳐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도한 시대적 흐름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 이름을 흉내내어 귀신을 쫓아내려다가 오히려 귀신에게 꾸지람을 듣고 혼비백산하는 사건에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에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권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술을 부리던 사람들이 회개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책을 불살라 버리기도 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자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귀신이 쫓겨가는 것을 보고, 제사장의 아들들이 바울과 같은 하나님을 부르니 자기들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버리는 객기를 부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짜인 것을 귀신이 알아버립니다. 바울의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마술처럼 여긴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 놀라운 능력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에 4번째로 알기 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기 원하는데, 1:20에서 사도 바울은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발휘하신다고 못을 밖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그냥 크다고 하지 않고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라고 합니다. 그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에게 강한 능력으로 활동하시는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아주 강한 수식어를 붙였을까요? 에베소의 인구를 그 당시로 따지면 25만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아마도 수지구 정도 되지 않을까요? 그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은 그 도시 모두가 금방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시 전체가 하나의 가치, 아테네여신을 섬기는 아데미신전을 중신으로 매우 두터운 카르텔, 기득권을 층층히 쌓았을 것입니다. 에베소의 극장에서 그 소란을 피운 것도 기득권층이 누리고 있는 경제권이 무너지는 것을 견딜수 없었던 것입니다. 에베소는 모든 것이 아데미신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그로부터 거짓 생명과 풍요를 얻는 거대한 허구의 도시였습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지금 이시대도 역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종교에 이르기 까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두터운 세속가치의 틀이 우리의 삶을 곤고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의 삶 속에 하나님 아닌 가치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처음에 눈사람을 만들려고 눈을 굴렸는데 그 눈덩이가 커져서 아이 보다 몇 배나 더 큰 눈덩이가 되는 것처럼, 이 시대의 풍조와 흐름이 그렇게 우리의 삶의 주변에서 점점 커져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교회도 그런 세속가치에 힘을 보태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에베소의 흐름을 바라보며 사도바울은 아니다!’ 라고 합니다. 독일어로 칼바르트라는 독일의 위대한 신학자는 그 시대의 흐름에대해 ‘NEIN!’이라고 외친 것이 떠올랐습니다.

     아테미여신의 능력은 허구이며 보잘 것 없다. 아니다! 신의 참 능력은 너희들이 손으로 만들거나, 어느 신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되며,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하늘 오른쪽에 앉으셔서, 로마의 권세가 아니라, 아테미의 신전이 아니라, 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또 이 세상 뿐만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이름 불러질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제외하고는 에베소야말로 지중해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갖었을 것입니다. 아테네여신 덕분에 지금 지상 최고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연코 아니다!’라고 합니다. ‘진정한 풍요로움은 교회에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오늘 마지막절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온 세상을 충만케 하는, 다시 말해서 넘치게 하는, 다시말해서 피조물의 유한함 속에서 품어져나와 넘치는 충만함을 다 드러내도록 충만케 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오늘 말씀에 교회가 그 분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충만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3:19을 보면 역시 알아야 합니다.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우리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고기교회는 어떻습니까? 그러니 알아야하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혜와 게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을 알기 원합니다.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 청나게 큰지를 알기 원합니다. 그래야 충만합니다.

     그러니 교회에 거칠게 대하지 말고, 섬세하게 정교하게 머리카락을 세듯이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사랑의 띠를 띠고 함께 세워가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러면 복입니다. 그러면 생명입니다. 우리가 교회이며, 내가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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