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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맑은 샘(성령강림절후열번째주일, 2017년8월13일)

하늘기차 | 2017.08.13 14:12 | 조회 391


                       기다림의 맑은 샘

2017813(성령강림절후열번째주일)                                                    15:22-25;4:6-7

     마음 공부는 볼 수 없어서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미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사람과 같이 되어 종의 모습으로, 그리고 자기를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가난한 마음을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외적으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누추한 마굿간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비우고 낮추고 불쌍히여기는 마음이 모든 피조물을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복음입니다. 내 공과와 업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도는 이 은혜로 살아갑니다. 이 은혜의 샘을 퍼올려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믿음의 조상 이삭이 어떻게 샘을 팠는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됩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면 블레셋의 목자들이 와서 그 우물을 메꾸었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불평하지 않고 다시 우물을 파는데 몇 개를 팠는가 하면 이름이 붙여진 우물만도 에섹(다툼), 싯나라(대적함), 르호봇(장소가 넓다)입니다. 이삭의 우물파는 이야기의 결정체는 창26:32입니다.

                “그 날, 이삭의 종들이 와서, 그들이 판 우물에서 물이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우물을 팔 때 마다 메꾸고, 싸우고 하며 방해하던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도 이삭의 목자들처럼 우물을 판 것입니다. 근데 그들이 판 우물에서 샘이 솟아나온 것입니다.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내 우물이 아니라, 원수같은 사람들이 판 우물에서도 같은 샘이 솟아납니다. 어떤 같은 샘인가요? 28절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똑똑

                             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당신 사이에 평화조약을

                   맺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같은 평화의 샘을 블레셋도 판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심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물을 파는 과정과 모리아산에서의 제물로 드려지는 이삭의 모습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과 낮아짐이 보입니다. 보아야 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 같이 평화의 샘을 퍼올립니다.

     지난 주에 이스라엘이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다고 하였는데 약속의 말씀은 보지 않고 길 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길로 들어서기 전에 이미 물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길 보다 더 근원적입니다. 물을 찿지 못했습다. 물은 찿아야 하겠지만, 보아야 찿아질 수가 있습니다. 마라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서 겨우 물을 발견하였는데, 물이 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오염되었습니다. 23은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한다고 말씀합니다. 인도하셔야 제대로 보고 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을 어떻게 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찿는 물은 마라일 수 밖에 없지 않나 십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가 자기일 하고는 핑계는 하나님에게 돌립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뭇가지 하나를 들어 던지라고 하여 쓴물을 단물이 되게 하여 갈증을 풀 수가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도저히 이 홍해를 건널 수 없을 때, 요단강을 만났을 때도 그렇습니다. 홍해를, 요단을 건널 수 있는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지난주에 신금숙집사님이 개업하는 자그마한 가게를 여는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교우들에게 늘 들려주는 말씀, 16:1입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

                  시는 분은 주님이시다라고 합니다. 삶의 지혜요, 믿음의 지혜입니다. 우리들의 생각, 계획들은 수시로 바뀌며,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결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정을 주님께서 하신다고 하며, 발걸음을 인도합니다. 이 지혜가 어디서부터 흘러올까요? 그래서 빌4:6,7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

                 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의 평화가 지켜주며, 하나님의 평화의 실마리는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나의 보잘 것 없는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마음이라 했습니다. 마음의 샘의 실마리는 감사에서부터 옵니다. 이 감사가 바로 우리의 계획, 나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설사 우리가 생각을, 계획을 잘못하고, 길을 잘 못 들어섰어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려워 힘들 때, 원망이나 불평, 또는 두려움이나 염려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밖에서 흐르는 건수를 겉어내고 마음 깊은 곳에서 말씀을 통해,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감사를 퍼 올린다면 복이있습니다.

   예전에 10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포천에서 그나라 공동체를 이끌며 청소년 대안학교인참나무청소년배움터를 꾸려나가던 목사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느티나무 박영숙관장님과 함께 돌보던 희주를 데리고 포천에 갔었습니다. 윤공부 목사님이셨는데, 그 당시 7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계셨는데, 그 중 한 아이는 초등학교 1년 때부터 줄 곳 그곳에서 함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늘 손버릇이 있는데, 자기 영역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자기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을 많이 베푼 사람의 지갑도 여지없이 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속이 상했겠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아무래도 귀신이 들린 것 같다던 기억이 납니다. 윤공부 목사님이 어떤 한 사람을 그렇게 단정짓는 분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습니다.“이 아이는 돈이 어디있는지 귀신같이 알어요! 정말로 귀신이야하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아이의 손버릇을 고치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지 눈에 선하였습니다. 한 번은 한 없이 두드려 패 보기도 했는데,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3때인가, 그 때로 치면 작년에 그 귀신같은 짓을 멈추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도 놀랐지요. 때가 된 것이었습니다. 10년 동안 마음조리며, 저는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그 당시 지하실에 있던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지역의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했거든요. 부모가 없어서 방에 들어가면 까먹은 생선 통조림이 수북하던 기억. 어떤 아이는 한 겨울 추울까봐 전기장판을 사가지고 집으로 찿아갔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전기 선풍기를 이불곁에 세워두고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기가막혀 했습니다. 발로 툭 치면 그냥 불로 번지는 것이지요. 그런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조주현 집사님이 품고있는 디딤돌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아이들이지요. 그 손버릇이 있는 아이를 이렇게 해 보아도 안되고, 저렇게 해 보아도 안되어서 쫓아내 보기도 했는데, 목사님은 마음 졸이면서 정말 떠날까? 하면, 몇 일 안되어 공동체로 꾸역꾸역 들어와서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는 아이를 다시 끌어안기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렇게 아이와의 씨름을 반복하면서 때가 찬 것입니다. 윤공부 목사님은 그 아이를 보면서 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야기가 자기도 힘들었지만, 그 아이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 스스로도 얼마나 이 나쁜 손버릇을 고치려 했을까요? 이 손버릇이 멈추어지기 전 까지 이 아이의 인격은 인격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의 됨됨이가 자기 안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질서가, 내적 자아가 그 손버릇 하나 때문에 망가진 것입니다. 이 아이가 10년 만에 회복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그러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아이는 어느 누구가 사랑을 베풀어도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를 안는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 깨어진 신뢰가 회복이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10년 농사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을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인격이 망가진, 지금도 아쉬운 것은 그 때 좀 더 그 사람을 강하게 붙들었어야해 하는 안타까움이 제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윤공부 목사님은 10년 동안 아무것도 한게 없을까요? 기다림의 샘을 판 것입니다. 목적없이, 덫 없이가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물며, 주님을 향한 소망가운데, 아이를 끌어 않은 것입니다. 욕하고, 미워하고, 인격모독을 주고 했으면 이 아이는 정말 공동체를 떠났을텐데, 윤공부목사님과 공동체는 기다림의 샘, 감사의샘, 낮아지고, 비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샘을 팠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샘이 이 곳 저 곳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삭이 여러 샘을 파지않았습니까? 마음의 샘 중에 여러 샘이 있는데, 기다림의 샘이야말로 하나님이 일 하실 수 있게 하는 샘입니다.

      기다림? 언제까지, 언제까지 라니요? 주님 오실 때 까지지요? ~. 어휴라구요. 왜요. 지겨워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였길래 지겨워요. 주님 오셔서 늘 천국잔치 벌였는데. 잔치를 벌여야지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만 있으면 되요. 6개의 물항아리와 퍼서 나를 물과 순종의 마음 만 있으면 됩니다. 어휴 그래도 세상은 늘 싸움, 고통, 갈등, 차별, 서로 미사일 쏘겠다구 하는데요. 그건 건수에요. 그 물은 곧 말라요. 그 마르는 지표면에 흐르는 물 마시지 말고 지표면 밑 깊이에서 흐르는 생수를 퍼 올려야합니다. 그러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퍼서 나누어주다 보면 그들도 같은 샘 퍼 올리겠지요. 감사와 기다림으로 말입니다. 비움과 낮아짐으로 말입니다. 건수는 허상이에요. 결국 건수도 지하로 들어가 깊은 생명의 샘과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이 샘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다른 데 기웃거리지 말고, 여러분에게 있는 샘 퍼올리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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