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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성령강림절후일곱째주일, 2017년7월23일)

하늘기차 | 2017.07.23 14:23 | 조회 405


                  

                  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2017723(성령강림절후일곱째주일)                                                                              7:6-12

     오늘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거룩하다는 말의 히브리말 카다쉬에는 구별하다, 깨끗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 민족과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구별이란 무엇인가요? 우리 교단의 올 해 표어가 이 번 여름성경학교의 주제에서도 보듯이 다시 거룩한 교회로인데, 이 주제의 말씀 레19:2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한다고 합니다. 내가 어떤 대상과 구별된다는 것이지? 무엇을 근거로 구별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구별되지? 또 왜 내가 거룩해야 하지? 그리고 거룩의 실체가 무엇이지?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성서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거룩을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타지않는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할 때 역시 하나님과 만나는 장면인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합니다. 그정도 입니다. 그 이상의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서는 거룩에대해 계속 말씀합니다. 구약의 거룩에대한 대표적인 성경은 레위기서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서의 성막, 제사, 절기 등에대한 제도와 법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을 일상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신약의 대표적인 거룩을 중요시하는 성경은 역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성결법이 완성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히브리서 2: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언어나 사고 구조로는 하나님의 거룩을 알 길이 없지만, 그나마 하나님의 거룩을 힘입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련한 제도와 장치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을 제도와 법과 규율로 접근하다가는 숨이막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거룩하라 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까 너도 거룩하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일방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런식으로 표현을 할까요? 이러한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표현을 한 번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우리와 하나이며, 그리고 하나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계셨고, 그 하나됨을 즐기셨습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하나님과 인류는, 아니 온갖 피조물은 하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하나됨의 조화를 깨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좀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많이 부담스럽지요. ‘믿기는 믿지만 좀 거리를 두고 믿어야지, 어떻게 하나야!’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하나가 되는 것은 뒤섞이거나, 내 정체성이 하나님에게 흡수되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섞여서 하나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하나님처럼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신이신 성령이 삼위이면서 일체인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전체가 자기 개성을 가지고 자기를 드러내며 조화롭게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그 하나됨을 잘 말해줍니다. 아버지는 농부이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가지입니다. 이 셋이 다 따루이며 하나입니다. 그래야 꽃이 피고 열매를 잘 맺습니다. 그래야 기쁨입니다. 11절은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

                              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 합니다.

나됨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거듭 하나됨에대해 10:30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하며, 17:11에서도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 하나됨의 거룩함에 머물러 있으려면 지나칠 수 없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어찌보면 성경 전체는 이 한가지에 집중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다 잘라버리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게 하려고 손질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두렵고 떨리는 말씀인데, 바로 정결함, 거룩에대한 말씀입니다. 부담스럽지요. 열매 맺는다는 쪽 보다는 열매 맺지 못해 잘려버릴 것 같은 쪽으로 우리 마음이 갑니다. 말씀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말씀아닌 쪽으로 갑니다. 이것이 우리 죄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3절에서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해방이요, 자유요, 평화입니다.

     복음은 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죄 없음을 선언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부터 오는 자유입니다. 사랑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죄 보다 큽니다. 그래서 이미 깨끗하다고 하시며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자녀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저 먼 곳에 따로 있는 범접할 수 없는 거룩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아니 삶 자체가 거룩입니다. 어떻게 이 거룩함, 구별을 살아가나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머물러있으라고 하시는 것같니다. 주님의 지혜입니다. 어떻게 머물러 있나요? 15: 9,10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

                            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지

                            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우리가 자유롭게 조화로이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하나입니다. 하나가 아니면서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거룩한 삶을 살아야하지요? 왜 구별되어야 하지요? 2:1은 왜 거룩해야하는지를 단편적으로 말해줍니다. 2:3에서 하나님은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

                           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쉼인가요, 영적 숨, 영적 호흡,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성도의 교제의 호흡, 숨이 있는 쉼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에너지는 예배에서 옵니다. 하루를 온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직장다니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올 수가 있는데, 자영업자나 농사짓는 사람들이 이 숨쉼을 못하면 어찌 구별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온 세상이 자본으로 물들어 사람들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돈이 아니라, 생명의 삶을 살라고 부르셔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그리고 보물처럼 여기시는데, 어찌 주일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굴욕적인 삶을 살다가 모세를 통해 출애굽하여 자유를 얻었다면, 오늘 자본의 시대에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것은 자본에 얽매여 상처받고, 지치고, 고통받는, 소외당하는 사람들 속에 자유와 평화를 삶으로 선언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거룩과 구별의 장치는 예물드림입니다. 성경은 제사를 통한 죄의 씻음, 화해의 예물을 이야기하며, 구별하여 드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병든 것, 버리는 것, 낡은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게 구별을 일상화합니다. 또 하나는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첫 예물을 통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기억하라 합니다. 처음에 난 것을 봉헌하는 이유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이집트의 처음난 모든 것들이 희생당한 것을 기억하라 하며, 처음 것을 드리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통은 규례가 되어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가 주일에 드리는 헌금에도 그렇게 구별의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헌금은 자선단체의 기부금이나, 시민단체의 회비가 아닙니다. 생명을 주시고, 자유케하시며, 우리의 삶을 평화롭고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과의 하나됨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니 꼭 구별하여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종종 개혁적인 생각을 가진분들이 십일조는 구약의 산물이라고 일축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십의 일의 정신 속에는 죄 사함과 희생에대한 감사와 감격과 스스로에대한 자기확신이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돈으로부터 자유케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그냥드리지 말고 구별하여 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7:6은 이스라엘에대해 그냥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합니다. 구별은 나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룩한 것은 하나님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엿장수 맘대로 택한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에 사랑하셔서 라고 하는,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하면,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7절 말씀에 수가 가장 적어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편견이 있습니다. 소수자를 사랑하십니다. 소수자를 사랑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소수자는 누구일까요? 성적소수자들입니다. 저는 아직 성적소수자들에대해 어떤 입장도 아직 공식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이 사랑하는 소수자들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오늘은 얼마전 시청광장에서 있었던 퀴어축제에 맞추어 어느 기독교인터넷매체에 올라온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성소수자인 승연이라는 여자청년의 동성애 커밍아웃에대한 기사 속에 한 단락을 전합니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이 그 삶을 '선택'했다고 말해. 2015년 김조광수 감독이 우리 동네에 와서 강연한 적이 있었어. 그때 한번 듣고 싶어서 가 봤거든. 그때 김조 감독이 "동성애가 선택 가능한 부분이라면 누가 이렇게 혐오받는 삶을 선택하겠느냐"고 말하는 거야. 지금 나는 그 말의 많은 부분이 공감돼. 선택 가능한 것이라면 동성애자로 사는 게 좋을 일이 하나도 없어.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J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거야. 언젠가 네가 성소수자 기사를 보며 지나가는 말로 "불편해요"라고 그랬지. "싫은 건 아닌데 불편하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불편하다'는 건 이미 감정적인 동요가 있다는 것 아닐까? 불편해도 괜찮아(창비)라는 책 제목처럼 정말 불편해도 괜찮아. 다만 '내가 불편하니까 사회에서 사라져 달라'는 건 이기적인 부탁 같아. 차별의 역사는 언제나 있었대.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이 결혼할 수 있게 된 건 불과 몇 십 년 전 일이야. 여성·장애인 등 약자들이 사회적 위치를 회복하기에도 계속 시간이 걸려. 약자가 아닌 동등한 역사 주체로 인정되기까지 몇 백 년이 걸렸어. 나는 네가 내 딸이 불편하게 느껴져도 괜찮아. 다만 불편하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더 알려고 노력하고 찾아보면 좋겠어

     그런데 소수자들은 성소수자만인가요?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가정, 이슬람 같은 종교 소수자, 장애인 소수자들, 탈북샛터민들 등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이 바로 소수자들이었습니다. 그 소수자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택하시어 보배롭게 하셨습니다. 고후4:7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됨의 거룩한 구별, 그리고 소수자를 사랑하는 구별이야말로 오늘 자본에 묶인 이 시대를 역동적으로 살게하여, 자유와 평화와 생명으로 나눔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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