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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찿고 있느냐?(성령강림절후다섯째주일, 2017년7월16일)

하늘기차 | 2017.07.17 10:38 | 조회 461


                       

                                  무엇을 찿고 있느냐?

 

2017716(성령강림절후다섯째주일)                                                                                                                 1:3542

     이스라엘에 말씀이 끊어진지 400년이 되었을 때, 세레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낙타옷을 입고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3:5

그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부근 사람들이 다 요한에게로 나왔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인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케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사람들은 요한의 세례는 알지만 성령의 세례는 모른다고 할 정도로 세례요한의 영향력은 초대교회때에도 매우 깊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요한은 자기를 광야의 소리라 하며 신발끈을 맬 자격 조차 없다고 스스로를 낮춥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에게 돌립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소개하자 옆에 있던 두 제자가 그 소리를 듣고 예수를 따랐다고 합니다. 복음은 논쟁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길을 갑니다. 그러면 듣는자가 그 말씀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너희는 무엇을 찿고 있느냐?”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너희는 무엇을 찿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찿아 고기교회에 오셨습니까? 이 질문은 존재의 근원을 흔드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 다음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첫 기적이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요한의 제자들은 당연히 금욕적인 생활에 익숙해 있었을 터인데, 가나의 사건으로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따랐던 모든 체계와 전혀 다른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2:18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잘 말해주고, 한편 예수님이 어떤 공생애를 살았는지를 말해줍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

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요한의 제자들은 처음에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금식할 수 있느냐 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똑 같았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입니다. 임박한 종말입니다. 그러나 같으면서 다릅니다.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의 회개는 기쁨이요, 잔치요, 구원의 축제라면 세례 요한의 회개는 장송곡을 부르는 장례식 분위기입니다. 심판이요, 저주요, 파국이지만, 예수님은 구원이요, 축복이요, 완성이었습니다. 실제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불의 심판을 기대했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먹고 마시는 것이어서 제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오실 그 분인가?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봅니다. 조상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종교 2000년의 역사 속에 없던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그 현상 중에 하나가 안다는 것이 아니라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의해 눈을 뜨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들이대며 안식일에 어떻게 병을 고치냐며 믿지 않습니다. 그대신 부모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묻자, 부모는 날 때부터 눈이 먼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들이대며 다구치자 부모는 금방 모른다고 합니다. 그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그 눈뜬 사람에게 찿아가 예수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9:25에서 이 청년은 <안다, 모른다>라는 프래임에 갖히지 않고 <본다>로 넘어갑니다. 이 사람은 예수가 죄인인지는 모르나 내가 아는 것본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은 예수님에의해 일단락됩니다. 출교를 당한 이 사람에게 예수님이 찿아와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묻자, 이 사람은 주님, 내가 믿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안다, 모른다는 논리적인 차원입니다. 깨닫는다는 것도 자기 경험의 테두리에서 나오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9:25에서 이 청년은 안다, 모른다에서 본다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9:28,29에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하면서너는 그 사람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논리로 안다고 하면서 자꾸 본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본다고 하니 너희들의 죄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못 본다고 하면 주님이 보게 하실텐데, 판단하고, 평가하고, 심판하고, 비교하는 never ending story에 머물지 말고, 이제 그만 주님을 바라 봅시다. 이것을 종교적으로는 다시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52어의 기적 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 왔을 때에도,

너희가 나를 찿는 것은 표징을 본 것이 아니라 먹고 배불러서라고 하면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자,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사람들을 찿으려 하지않고, 보려고 하지 않고, 무엇을 하려고 합니다. 종교의 전형적인 특성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 하자, 그만하면 알아들어야 할텐데, 볼 수 없으니 또 종교적 질문을 합니다. 무슨 기적을 보여주어 우리를 믿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우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고 하면서 모세의 기적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에게 내린 빵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라 하면서,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생명을 준다고 합니다. 주님은 여기서 안다 모른다의 never ending story를 멈춥니다. 사람들이 그 빵을 달라 하자, 주님께서 내가 그 빵이다라고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서는 믿음에대한 논쟁의 프레임을 깨며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라 합니다. 믿는다에서 먹는다로 넘어갑니다. 함께한 사람들이 발칵 뒤집힙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니,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보지 못합니다. 말씀이 육화되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안다, 모른다는 모든 종교적 논쟁을 종식시킬만한 말씀이었습니다.

     본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오늘 말씀 1장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라고 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요한은 계속 보았다고 하고, 제자들은 그 보았다는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제자들은 전혀 다른 세계, 세상의 종교가 아닌 예수가 주인이신 ,어린 양 예수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봅니다.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5년 전 가이드포스트에 실렸던 노숙인다시서기 진료소원장 최영아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릴적 교회 선생님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3 때 시험에들어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정말 자기 어깨를 짓 누르는 고통을 느껴 예배를 드릴 수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넌 여기 오면 안돼라는 내면의 어두운 영의 소리도 듣고 해서 방에 걸려있는 예수님의 성화를 보는 것 조차도 꺼려할 정도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도할 엄두도 나지 않고, 불안, 극심한 불면증, 안면마비, 온갖 약을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할 때 까지 거의 2년을 그렇게 우울증 까지 겹쳐 자살충동 까지 느끼며 살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같은 학원의 소아마비에 걸린 한 학생이 가방을 힘겹게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 당시 너무 힘들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가방을 들어주었는데, 그 때 그 친구가 고마움에 성경암송카드를 몇 장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그 말씀이 보이지 안았다고 합니다.

     대학입학시험 치는 날이 다가오는데,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숨쉬기 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정말 살기위해 그 성경암송 카드를 집어들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 구절이 사41:10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

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순간 자기 몸 속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놀라운 평화가 임했고, 그 후 그렇게 짓눌리던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의대에 합격했고 그동안 자기를 괴롭혔던 증세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한 그는 의대 내 선교동아리에서 헌신적인 활동을 하였고, 청량리 밥퍼 사역에도 참여하였는데, 비라도 오면 진흙바닥에 앉아 흙탕 물이 밥에 튀는 것도 모르고 무료급식을 받아 먹던 이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 세상에는 경험의 범주를 넘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난과 학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구석진 자리에 마음이 끌렸다고 합니다. 그 후 2009년 부터는 서울역에서 노숙인다시서기 진료소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근본적 요인은 가정의 해체라고 합니다. 그래서 houseless가 아니라 homeless라며, 집이 없는게 아니라 의지할 가정이 없어 고립과 고독, 불안감에서 오는 정신적인 황폐함과 자살 충동, 그리고 그에 따르는 신체적 질병에 고통받고 있는데 그나마 자기가 그런 노숙인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 2년여를 그런 비슷한 상태에서 보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술을 먹고 자해하여 병원에 데리고 와서 소독을 하고 봉합하면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자해를 해서 다시 꿰메기가 일 수 인데, 그렇게 죽지 못해 악을 쓰며 살아가지만 그 절망의 심연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비록 지금의 삶이 보기에 누추하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기며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제가 최영아님의 이야기를 한 것은 많은 말들과 수 많은 회의와 일들을 할 때,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바로와 홍해 사이에서 구하는지를 보라고 한 모세의 이야기처럼, 눈 뜬자가 나는 그가 죄인인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것은 지금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52어의 기적 후에 먹고 배불러 주님을 쫓는 것이 아니라 표징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과 생명, 회복의, 평화의 역사가 나에게서, 교회 공동체에서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야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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