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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성령강림절후네째주일, 2017년7월9일)

하늘기차 | 2017.07.09 14:39 | 조회 417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201779(성령강림절후네째주일)                                                             50:15-21;18:21-35

     42장에 보면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그의 형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형들이 간첩으로 오해를 받자, 왜 이집트에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4210절에 보면 그저 먹거리를 사러 왔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을 만났을때 오늘 본문19절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삶의 차이가 보입니다. 삶의 중심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긴급조치로 구속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1.7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9명의 장정이 함께 살아갑니다. 화장실도 함게 붙어있어 불결하고, 비좁고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잘 때에는 칼 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힘들었었던 것은 그 곳 에서도 빈 부의 격차있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선 돈도 못 쓰는데 무슨 빈부의 격차가 있나 하겠지만, 사용하는 물품을 적게 가진 사람과 많이 가진 사람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비누, 칫솔, , , 비누가 없으면 맹물로 빨래를 하고, 치솔이 없으면 손가락으로 양치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방 사람들에게 우리 이 좁은 방에서 니꺼, 내꺼 따지지 말고 가지고 있는 물건 다 합쳐서 즐겁게 나누어 씁시다.”했더니, 치약을 많이 가진 사람이 당신 이북에서 오지 않았어!”하더랍니다. 그리고 없는 사람은 당신 누구 약올려! 되지도 안는 말 그만해!”하며 불쾌해 하더랍니다. 빈부의 격차가 이곳에 까지 있는 것에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그곳에서 한 가족처럼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물건을 공동으로 나누어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방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언제나 밖에 나가면 어떻게 한 탕 할까하는 범죄에관한, SEX에대한 이야기만 하던 분위기가 장래걱정, 가족 걱정 그리고 출옥하면 나가서 사람구실해야 할 텐데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분위기가 발전하여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는 방으로 발전하여 그 좁은 방에서 다투고, 불화하고 하더니 이제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화기 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좁고 답답하던 방이 넉넉하고 넓어졌다고 합니다. 기적입니다. 52어의 기적입니다. 있는 것 가지고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갈등, 싸움, 원망, 시비...이런 것들이 어디에서 비롯 될까요? “내 것”,“라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요셉은 형들을 만났을 때 얼마든지 형들에게 받은것을 되 갚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요셉은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삶의 중심이가 아니라하나님입니다. 요셉은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그 모두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합니다. 형들이 자신을 해하려 했던 일들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20절에 보면 요셉이 형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요셉의 말 속에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어 죽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 죽음을 부활로 바꾸어 온 인류의 생명의 구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요셉의 말에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삶의 중심은 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나라”,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형들은 그저 먹거리를 사러 왔을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그저 먹고 사는 일, 내 의식주, 가족의 의식주를 위해 살아갑니다. 비죤도 없고, 꿈도 없습니다. 약속도 없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싸움, 원망, 내 것, ‘가 전부입니다. 그러니 삶의 주제가 생을 다할 때 까지 입니다.

     저희 부부도 종종 다툼이 있습니다. 간 혹 싸운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어떻게 싸워? 목사님도 싸워? 마치 별동별에서 온 사람 보듯이 묻습니다. 신혼 초에는 참 자주 다투었습니다. 다투고 말 안하면 4,5일 간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싸움이 그저 그렇습니다. 감정이 격해지고, 말소리가 좀 커지고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옵니다. 싸워 봐야 덕될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련된 것이지요. 그런데 싸울 때는 여지없이입니다. 왜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시 돌아갈 때 까지 결국 인간은 를 외치다가 죽지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자연 생태계는 그렇치 않습니다. 가만히 자연을 돌아보면 모두가에대해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서로 생명을 주고 받습니다.

     풀 한 포기, 미나리 한 포기가 오염된 물을 정화시킵니다. 연어가 생명을 낳기위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마지막에 자기 몸을 새끼들에게 내어놓는 광경은 숭고합니다. 우리의 몸을 보아도 눈이 눈을 위해, 발이 발을 위해, 위가 위를 위해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체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유독 인간만이 욕심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온 지구가 서로 상생하며, 나누며 사는데 인간만이내 것’, ‘내 생각하면서, 이 생명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창조의 세계를 음미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대한 해답이 나옵니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건강이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누군가를 위해 나에게 있는 것을 함께 나누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요셉의 형들처럼단지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살아가는삶이 아니라 피조된 세계 속의 한 일원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청지기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귀한 은혜를 줍니다. 한 왕이 1만달란트를 빚진 자에게 그의 몸, 처와 자식들 그리고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빚을 갚습니까? 왕은 그 종이 불쌍하여 그 빛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1만달란트는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1달란트가 3억이니까 1만달란트면 얼마입니까? 무려 3조원입니다.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인류가 하나님께 진 빚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 인간이 물질 문명으로 만든 모든 재화를 다 합하여도 인간이 지은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 단연 으뜸으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으뜸은커녕, 일평생 죄의 빚에 허덕이며 단지 먹을 것을 위해살아 가는 인생으로 추락해 버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세상에 나가 단지 1백달란트 빚진 자기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후에 왕이 이 사실을 알고, 그 사람을 불러 악한 종이라 하며 1만달란트를 갚을 때 까지 감옥에 살게합니다.

     거지왕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지가 왕자가 되고, 왕자가 거지가 되었습니다. 왕자가 거지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이 거지는 결코 왕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자가 거지가 됨으로 이 거지는 왕자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참 복음적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나라의 자녀로 결코 부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그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인 것입니다.

     먹을 것을 위해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 세상 창조의 섭리와 경륜, 우주 역사의 주관자를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으니 이제 그 도리를 다 해야 하겠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대로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할 때, 받은 은혜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오늘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세상 속에 살면서 받은 은혜를 나누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마땅히 해야만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감옥에서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누었을 때 거기서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보리떡5개와 물고기2마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겠다고 느낀대로 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했을 때 그 것이 마땅하여 그렇게 하니 축제요, 잔치였습니다. 우리는 빚진자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 어느 것을 다하여도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은 자들입니다. 여전히 죄인이지만 죄 없다고 감싸 안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서 어떤 존귀한 것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가? 그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베푸시며 그 일로 홀로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받은 자, 빚을 탕감받은 자, 은혜입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어찌 형들을 내 감정대로, 내 생각대로, 받은 고통대로 처리하겠습니가? 요셉은 그저 지금 마땅히 해야할 일, 하나님이 우리를 좋게 하실 일을 마땅히 할 뿐인 것입니다. 그저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

     교우여러분! 그저 먹을 것 사러 이집트까지 내려온 형들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해서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누리며 나누는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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