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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하나: 십자가의 어린 양(성령강림후네번째주일, 2017년7월2일)

하늘기차 | 2017.07.02 14:09 | 조회 503


                문은 하나: 십자가의 어린 양

 

201772(성령강림후네째주일)                                                   15:1-7;10:1-9;13:23-24

     오늘 말씀에서 잃어버린 우리 밖의 양을 찿아 돌아오며 기뻐하는 목자의 모습을 봅니다. 이 양이 엉덩이에 뿔이 난 양인지, 병약한 양인지에대한 이야기는 없고, 함께했던 한 마리의 양이라고 합니다. 하나, 하나에대한 소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요셉 목사님에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잘 아시는 김장환 목사님의 아들이고, 혼혈입니다. 초등학교 4년 때 아마도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선교사의 아들로, 선교관이 있는 교회의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어의 A, B, C, D도 모르는데, 첫 날 첫 수업이 공교롭게도 어려운 단어의 스펠링을 복습하는 시간이어서 선생님이 단어카드를 보면서 다음 차례 아이를 보는데, 요셉이를 본 것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카드를 내려놓으시고는 앞으로 나오라고 했답니다. 얼굴 빨개져서 나온 어린 목사님에게 칠판의 백묵을 잡으라 하시는데, 말도 못하는 나에게 쓰라는 것인가 하며 속으로 이 선생님 진짜 잔인하구나 생각하며 칠판을 향해 등을 돌리는데, 선생님이 요셉이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말로 공부하였어 라고 하면서 오늘 스펠링을 공부하는 시간인데 하면서 샤프선생님은 너 한국말로 선생님 이름을 쓸 수 있어라고 하기에 자신있게 샤프라고 칠판에 썼다고 합니다. 학급이 난리가 났데요. 아이들은 무슨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쓰는 줄 알았다는 거지요. 반 아이 중에 토미라는 아이가 손을 번쩍들고는 내 이름도 한글로 쓸 수 있어 라고 제안하기에 토미라고 썼다고 합니다. 김요섭 목사는 그 이후로 반 아이들 속에 한글을 아는 유일한 아이로 자존감을 살리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10년 전쯤인것 같은데, 간혹 옛 기록들을 봅니다. 명훈이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청년이구요. 가끔 수지 이마트에서 일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당시는 중학생이었는데, 당시 중등부는 명훈이 한 명이었나 봅니다. 중등부 성경공부시간에 세례요한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래 보아야 명훈이 혼자입니다. 그래서 사실 성경공부를 한다고는 하지만, 명훈이가 글을 읽지 못하니 내가 성경읽어주고, 교재 보고 이야기하고, 내가 답하고 내 느낌을 명훈이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은 나의 성경공부 시간입니다. 내가 중등부 아이들을 위해 풍요롭게 준비는 못 하더라도 이 시간만은 꼭 지켜야 하겠다는 마음인데,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그 지키는 마음을 귀하게 보시어 저에게 또 새로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자기 보다 낫게 여겼다는 구절이었습니다.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어떻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자존심이 있는데, 그리고 그 것 자체로 귀한데, 나보다 어떻게 남을 더 낫게 여긴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이 낫다는 말을! 그래! 남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말이야!”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 과연 나는 나의 존귀함 만큼 남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가족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존귀하게 여기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부끄러웠고, 적지않은 우리의 삶의 어려움이 남을, 아니 가까이 하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또 하나는 문에대한 말씀입니다. 문은 우리에게 세상을 어떻게 보고, 켜켜이 놓여있는 벽들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목자와 양이 함께 드나드는 문입니다. 10:2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고 합니다. 절도나 강도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데로 넘어갑니다. 문은 어느 일정한 곳으로 가는 길에 있는 통과점입니다. 집에도, 영화관, 놀이시설, 모든 곳에 문이 있습니다. 남자는 성인이 되려면 국방의무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법관, 의사 등 전문직일수록 그 문은 좁고, 어려워 아무나 통과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은 어떤 문일까요? 바로 십자가의 문입니다. 주님께서 기필코 십자가라고 하는 문을 세우셨습니다. 왜 하필 십자가일까요? 십자가가 아니면 안될까요? 주님이 공생애 3년 동안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52어의 기적도 베푸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기 까지한 기적과 표적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지만, 그 많은 놀라운 일들을 뒤로하고 왜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 높이 달려야 했을까요? 여기에 생명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기적으로 치면 모세에 비길 수가 있겠습니까?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으로는 엘리야가 이만 못 하겠습니까? 그러나 바로와 대적하는 모세가 끝내 감당할 수 없는 일, 자식을 바치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이 할 수 없는 일, 바로 어린 양의 죽음입니다.

     이 십자가의 문은 우리가 만드는 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 놓은문입니다. 이 어린양의 피흘린 죽음이 없었다면, 모세는 바로와 대적하다가 결국 지쳐서 백기를 들고 바로의 왕국을 스스로 걸어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붙잡으심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인륜을 거역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모세와 바로와의 처절한 싸움을 멈추게 한 것도 어린양의 피였고, 아버지가 자식을 제물로 드려야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돌이키게 한 것도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어린양 피흘린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그 애쓰고 수고함이 헛될 수 밖에 없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주시려고, 온 인류 모두에게 유일한 생명의 문인 십자가를 기필코 세우신 것입니다. 좁아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찿는 사람이 적지만 결국 문은 하나 어린양 피흘림의 십자가입니다.

     혹 죽음에 대해, 고난에 대해, 희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 이거 부담스럽네, 못하겠네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그런데 십자가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워 남들이 하기 싫은 일 내가 하고, 내가 모든 것을 희생하여 무엇을 이룩하는 그런 수고와 애씀이 아닙니다. 모세가 바로에 대항하여 애쓰고 수고하는 것, 아브라함이 우리로서는 흉내낼 수 조차없는 인륜을 거스르는 순종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십자가가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바로와 대항하여 치열하게 싸울 때, 그 싸움을 결정적으로 모세에게 붙여 싸움을 멈추게 하신 것은 어린양 피흘림의 죽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인륜을 접어두고 자기 아들 이삭을 야웨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바치려 덤벼들 때. 아브라함의 칼을 든 오른 팔을 붙잡은 것은 덤불 숲 속에 준비해 둔 피흘릴 어린 양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기필코 통과해야 할 문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감내하고 내가 죽어야지 하며 가슴을 치며, 다른 사람이 차마 엄두도 못 내는 일을 오직 믿음을 갖고, 오직 신실함으로 감당해 내는 것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에 좌우의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시어 밑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 보시면서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말씀하시는 그 사랑, 생명을 다 내어 놓으시며, 사랑의 눈길로 우리의 죄와 아픔, 슬픔, 고통을 바라보시는 그 사랑의 어린양 피의 문을 통과할 때 모든 세상 짐을 은혜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은 좁고, 찿는 이가 적다고 합니다. 좁다고, 그리고 찿는 이가 적다고 했지, 고통스럽거나,참고 견디어 내야 한다거나,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거나, 그래서 남들과 다르게 영웅적인 결단과 노력과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한 특별한 문이라고 생각하나요? 마땅한 것 아닌가요? 라고 생각하나요?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십자가의 죽으심의 사랑의 문은 단지 좁고, 찿는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 통과할 때에야 우리는 비로서 진정 생명의 구원과 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문을 통과해야만 우리는 푸른 초장의 맛있는 무공해의 오염되지 않은 꼴과 시냇가의 맑은 물을 마시며, 또한 이 어린양의 피흘리심의 문을 통과해야 평안한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우리에서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꼭 십자가의 문으로 출입하시기 바랍니다. 개구멍이나, 담치기 할 때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사이비 장사치들, 뚜쟁이들과 부로커들 그리고 사기꾼들과 도적들 밖에는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망서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친히 문을 세우셨고, 주님이 친히 출입할 때에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된 목자는 또한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갑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에 목자는 자기 양을 다 불러낸 다음에, 앞서서 가고, 양들은 뒤 따라 갑니다. 양들이 목자를 따라 가는 것은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양을 칠 때 자기 개인의 우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인의 양들을 한 우리에 함께 넣어 키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꼴을 먹이러 양 우리로 목자가 들어 가서는 자기 양을 데리고 나올 때 목자는 독특한 자신의 소리로 신호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는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온다고 합니다. 한 마리도 예외없이 모두 다 따라 나온다고 합니다. 세상 속에 세상과 함께 살지만 어느 순간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면 하던일 다 내려놓고 그 목소리를 따라 나서는 것이 어린양 성도의 삶입니다. 양은 아주 온순한 동물인데 아무런 재주가 없습니다. 싸울 줄도 모르고, 하소연 할 줄도 모르고, 그런데 한 가지 재주가 있는데, 그것은 오직 주인의 싸인, 주인의 소리를 알아 봅니다. 말씀할 때, 소리낼 때 알아들을 수 있는 것 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지혜입니까? 생명의 지혜입니다.

     세월호참사 3주기 때 안산 화정교회의 박인환목사님이 예상치 못한 일을 했습니다. 당시 교감선생님과 돌아가신 잠수사님 것 모두를 포함하여 모두 306개의 원목 책받침을 만들어 세월호가족들을 위한 전시 판매를 한 것입니다. 근데 그 306개의 나무 하나, 하나, 그리고 그 책받침에 새긴 이름 하나 하나의 아이들을 다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도 아닌데, 재난당한 한 가족, 한 가족을 기억하며 마음으로 자르고, 갈고, 칠하고 새기며 1년여 동안을 전력하여 3주년을 기념하였습니다. 광화문에 첫 전시를 하는 날 예은 엄마는 그 길게 펼쳐진 전시대를 보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가 이해할래야 할 수도 없는 분들의 마음이 자기자리 찿아가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와 양과 문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머물러 있는 하나의 믿음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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