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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배 만들기 : 영적 권위(어버이주일, 2017년5월14일)

하늘기차 | 2017.05.14 15:17 | 조회 451


                                   산 위에서 배 만들기 : 영적 권위

2017514(부활절다섯째주, 어버이주일)                                                           6:13-22

    24:34 이하에 보면 무화과나무의 잎이 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면서도 인자의 때에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합니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즐거움에 바쁩니다. 문제는 그것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라, 그것 만 합니다. 세상일에 매여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창6:8은 노아에대하여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노아는 의롭고, 완전한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거칠며, 온전한 삶의 기쁨 보다 쾌락을, 도덕이나 의로움 보다는 돈을 좋아하며, 싸우고, 무정하며, 배반하고, 조급하며, 자고하여, 자기자랑을 일삼는 때였는데,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때,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음성에 귀기울입니다. 6:14에서 노아는 하나님께서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보기에 황당하기 그지없는 미친짓을 합니다. 산 위에서 배를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가족이 한 마음으로 아버지 노아를 따르지 않았다면 산위의 집짓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산위의 집짓기를 완수하였습니다. 그러면 노아에게 무엇이 있었기에 온 가족이 그 미친짓을 따라했을까요? 아마 산 아래의 사람들은 노아의 가족이 내려올 때 마다, 끊임없이 조롱하고, 멸시하였을 것입니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합니다. 그 무수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노아를 따라 산위의 집짓기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노아의 영적 권위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가족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를 수 있도록 한 노아의 영적 권위는 어디에서부터 왔을까요? 권위는 스스로 세운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노아를 은혜입은자라고 합니다. 은혜를 입었다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6장 마지막절에서 창세기 기록자는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고 하면서 꼭 그대로 하였다고 한 번 더 강조를 합니다. 그리고는 7:5에서 다시 한 번 노아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고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다 내려 놓고 낮아져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 노아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는지를 봅니다. 여러분 자녀들은 무관심하고, 안보는 것 같지만 부모의 하나님을 향한 언행을 체휼하고 있습니다. 영적 권위는 낮아지는데서 옵니다. 말씀에대한 낮아짐입니다. 그렇게 낮아짐의 신비한 권위를 통해 가정이 대홍수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문제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사람들을 감동합니다. 왜그럴까요? 권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권위가 없어서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권위는 어디서 오나요?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권위는 낮아짐, 십자가에 달리어 죽기 까지 낮아짐에서 옵니다. 구원의 신비이며, 교회의 신비입니다. 낮아지지 않으면 말씀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문제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어서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고 합니다. 공항에 찿아가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낮아짐 속에 십자가의 모습이 스칩니다

   하여간 하나님이 노아에게 10개를 명하였다면 노아는 그 중에 9개 만을 한 것이 아니라, 10개를 행한 것입니다.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이야기 하지만, 복음은 그 앞의 수식어에 달려있기가 십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할 때, ‘먼저구하지 않고 나중에 구하면 복음이 아닙니다. ‘먼저라는 말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인간의 모든 정황들, 이유들, 믿음 아닌 것들이 다 떨구어집니다. 나중은 긴장감이 없습니다. 먼저는 긴장합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기도 합니다. 출세의 길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1:2에는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라고 할 때, 즐거운 일이 많지만, 그 많은 것들 중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오로지 즐거운 것이 복음이지, 여러 가지 중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과 저것이 함께 뒤 섞인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살전5:16~18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바로 세상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은혜로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 있습니다. 어떻게 매일 웃나요. 실성한 사람이 아니기 전에는 말입니다. 매일 웃으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슬픔의 일들이 나를 벽처럼 둘러쌓여 있을 때에, 마음 속에 하나님 향한 성령의 내적 감동의 기쁨이 어김없이 나를 생명의 길로 견인합니다. 기도하라는데, 쉬지말라고 합니다. 삶의 모든 일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과정이 기도의 여정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기도 중에 인도하지 않은 길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기도자의 삶의 결과는 기도의 결과물입니다. 기도 만큼 신앙하는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이 어디있나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평화의 실마리입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노아는 라고 합니다. 10개 중에 9만 한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은혜가 아닙니다. 바닷가에 왔으면 모래사장에서 모래찜질도 하고,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기도 하지만, 배를 타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깊은 대로 나아가야하지 않겠는가 십습니다. ‘노아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고 합니다. 입니다. 어휴 어떻게 해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복음이 어디 나에게서 온 것이 있나요? 은혜가 나에게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늘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엊그제 새벽기도회 때에 시62:11,12에서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

                      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라는 말씀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권세와 사랑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7곱번씩 70번을 용서하라 하니까, 제자들이 어휴 했거든요. 은혜를 사람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어휴 라는 것은 자기가 무언가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 나는 말씀에 감동하여 동행하는 것입니다. 바닷가에 배를 짓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먹고 마시는 세상의 일입니다. 은혜는 산위에 배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의 일이 되며, 모두를 구원합니다. 산위에서 배를 짓는 생명의 일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명령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이 명령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인간의 합리나, 논리 구조를 내려 놓으라는 것으로 읽어야하지 않나 십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극심한 가믐 속에서 엘리야를 만납니다. 사렙다 과부가 자기 아들과 남은 음식을 먹고 이제 죽으려하는데 왕상17:13에 보면 엘리야가 우선 나에게 먼저가지고 오라 합니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라 합니다. 사렙다 과부가 이 노인네가 정신나갔나 하며 돌아섰으면 세상일이 되었으며 그야말로 죽음의 일이 되었을텐데, 이 과부가 15절에 보면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그 음식 먹고 정신을 가다듬어 거짓 예언자들과 1당 백으로 싸워 하나님의 뜻을 세웁니다. 아마 사렙다 과부가 비아냥 거리며, 엘리야의 말씀을 거절했다면, 엘리야는 기운이 쇄하여 우상숭배자들과 싸울 수도 없었을 것이며,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우상 숭배의 적폐는 다시 쌓여 갔을 것입니다. 사렙다과부는 우선’, ‘먼저라고 제안한 엘리야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복음이요, 생명의 구원이 됩니다.

       연탄 가스에 중독이 되면 사람을 산소통을 통해 신선한 산소를 공급합니다. 노아는 마치 산소통 같은 사람입니다. 6:12에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있어, 하나님이 사람지으심을 후회하며 마음 아파하실 때에, 하나님을 위로한 사람은 노아입니다. 노아의 이름의 뜻이 위로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위로합니다. 폐여간 세상 속에서 노아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보리떡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실 때에도,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2백데나리온의 빵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논리입니다. 세상의 논리는 합리적입니다. 상식적이기도 합니다. 당연하고 맞습니다.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말씀입니다. 그냥 말씀이 아니라, ‘’, ‘먼저’, ‘오직이라는 말이 앞에 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먼저하세요, ‘하세요, ‘오직하세요 하지 않으면 윤리와 도덕이 되며, 공과가 되고, 적선이 됩니다. 그러나 먼저라는 말씀이 내 가슴을 치면, 그 때부터 복음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못할지 모르지만 주님이 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낙타가 바늘 귀를 지나갈 수 없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요, 복음입니다. 쪼잔하게 자기식으로 하지말고 하세요, ‘오직하세요, ‘먼저하세요. 그렇게 가정에 영적 호흡, 영적 산소통을 항상 준비시켜 놓아야 자녀가 세상에서 온갖 것들로 오염되고, 세상가치에 휘둘릴 때, 영적 호흡을 부모가 하나님을 향해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고 결국은 부모의 믿음 안에 머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아가 바닷가에서 배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산 위에서집을 짓는 생명의 일,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할 때, 아이들도 역시 바닷가에배를 짓지 않고, ‘산위에서배를 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위에집을 지라 하는데, 슬그머니 바닷가에집을 짓는 것을 자녀들은 다 알지요. 그러면 아이들도 역시 그렇게 세상의 일에 익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바닷가에 배를 지어도, 믿음의 아버지, 믿음의 어머니는 산위에집을 지어야 자녀들이 해 맑은 순도 높은 영적 호흡, 말씀을 온전히 받아 행하는 맑은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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