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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타나시다(부활절세번째주, 2017년4월30일)

하늘기차 | 2017.04.30 15:11 | 조회 471


                    

                     다시 나타나시다

2017430(부활절세번째주)                                                                               21:1-14

   20장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리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20장의 내용으로도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히 전달이 되며, 그리고 30, 31절에서 요한은 왜 이 글을 기록하였는지에대한 이유로 요한복음을 마무리 하고 있는데, 21장에서 다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은 부활이 여전히 비젼이거나, 영이나, 이미지나, 환상으로 인식되는 것에대해, 부활은 실제라는 것, 먹고 마시며, 만져지며 죽음의 권세를 깨고 함께했던 사람들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부활을 보고도 믿지 못하여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3번째 나타난 부활입니다. 부활은 느낌이나, 생각,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요, 믿음이며, 성령입니다. 20:20에서 예수님께서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자 제자들은 주를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는데, 믿지는 않았습니다. A.I.라는 영화에서 인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희안하게 생각하며 인조인간이 눈물을 분석하는데,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H20 와 소금기 이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눈물에는 화학적 성분 외에 슬픔, 기쁨, 억울함, 통회함, 감사, 감격... 화학적 성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성과 체험이 있습니다. 생명도 그렇습니다. 생명은 심장, 허파, , 세포 등... 으로만 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다고 합니다. 믿음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옵니다. 생명의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부활도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되다고 하며, 부활이 믿음의 근원임을 말합니다. 부활은 단순히 썩어 문들어진 살이 다시 아물어 보송 보송해지고, 썩는 냄새가 사라지고, 혈관에 다시 혈액이 돌고, 심장이 박동하더니, 숨을 토하더라!는 설명이 아닙니다. 21장에서 베드로, 도마, 참 이스라엘이라 칭함을 받은 나다나엘도,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또 다른 두 제자, 모두 일곱제자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라는 베드로의 한 마디에 모두 동조하여 떠나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만지고, 보고, 들었는데도 믿지 못합니다. 단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말씀과 믿음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하는 부활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못 알아 봅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 유하여 떡을 땔 떼에야, 저희 눈이 밝아져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 예루살렘으로 가니, 제자들도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고 함으로, 자신들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는 중에 예수님이 그 곳에 찿아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친히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무서워하고, 놀라와 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지금 유령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자, 예수님께서 손과 발을 보이시며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라고 까지 말씀하시며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부활이 부활일 수 있을까요?

   24:16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31절에는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고 하며, 32절에서는 그가 성경을 풀이하여 줄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부활은 증언을 통해 알려지고 받아들여지는데, 그 생명의 운동 속에 성령이 함께하여 감동을 줍니다. 전하는 사람의 증언을 증언되게 합니다. 부활은 말씀이며, 믿음이며,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부활을 부활로 볼수도, 증언할수도 없습니다. 부활을 듣고, 보았는데도 제자들은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것은 부활신앙이 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활 없는 신앙은 패배주의이며, 사탄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며, 죽음에 묶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21:1에서 예수님은 또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교우여러분!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또 나타나셨습니다. 접두사 먼저’('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도 할 때 먼저가 아니고 나중이면 복음이 아닙니다)가, ‘오직’(시편 1:2에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라고 할 때 '오로지'가 복음입니다)이 은혜요 복음이듯이, 가 은혜입니다. 하나님 명령에 거역한 후에 숨어버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식없어 안타까워하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과 달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네 자손을 많게 하리라 한 것도 은혜입니다. 애굽의 바로에게 붙들려 400년 동안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을 건져 내어 40년 광야생활 이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모세에게 나타난 것도 은혜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께 3번이나 간절히 병고침을 구했지만 응답하지 않은 것도 은혜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였습니다. 18년 혈루병 앓던 여인이 병고침을 받고, 뽕나무의 삭개오가 죄사함을 받은것도 은혜입니다. 십자가 옆의 죄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구원받는 모습은 바로 은혜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뒤로하고 갈릴릴로 고기잡으러 간 제자들에게 다시 찿아가서 부활을 보이신 것도 은혜입니다.

   오늘 말씀에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지만, “못 잡았다는 말 속에 예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이전의 것, 옛 관행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합니다. 회귀본능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소망의 땅인 가나안으로 향하다가도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다시 노예 생활하던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이렇게 옛것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에게 다시 찿아오셔서 부활을 다시 보여주십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와 같은,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같은 모습,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불에 태워 버릴 수 밖에 없다는 말씀과 같이 아무것도 결실하지 못하고 실패한 베드로의 모습 속에 차라리 3년 동안 고기나 열심히 잡아 부모 처자를 돌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나고, 바로 그러한 때에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모든 우리의 두려움, 근심, 게으름과 거짓. . . 무수한 죽음의 냄새, 십자가를 향하려하는 우리를 마지막 까지 끌어 당겨 방해하려는 사탄의 권세와 궤계를 물리치는 것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요한은 베드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기치 못하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3번 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아마도 제자들 중에 가장 고통스러워하지 않았겠나, 요한은 고향 동료인 베드로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누구 보다 안타까워 했을 것입니다. 소꼽 친구로 함께 자라, 바닷가에서 어부 생활하다가 함께 예수님을 만나 3년을 쫓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는 서로 누가 더 높은지 다투기도 하였읍니다.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을텐데, 모두 스승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힘들어하던 때에, 또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 하며 괴로워하던 때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부활을 제일 부담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 다 잊고 정리하고, 이제 옛날 고기잡던 때로 돌아가려고, 아니 이미 예수님과의 관계 다 끊고 고기잡이로 돌아갔는데,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예수님이 찿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한 번, 두 번, 세 번. 이 건 사실 질문이 아니라, “그래,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어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동안 죄책감에 어디 한 군데 성한데 없이, 힘들어 하던 사랑하는 제자에게 찿아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것은 네가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사랑하는 줄 왜 몰라 알고 있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거기서 펑펑 울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알고 계신다고 답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이 없었다면 베드로는 무엇으로 나머지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부활이 없었다면, 베드로는 평생 죄를 가슴에 묻고 살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에대한 사랑은 모두 묻히고, 스승을 3번 부인한 것 만 드러났을텐데, 부활이 찿아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 알고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사랑 아닌 것을 사랑으로, 희망 아닌 것을 희망으로, 평하아닌 것을 평화로 회복시킵니다. 부활은 변화입니다. 본래의 모습으로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와 네가 처음 만났을 때, 고기잡는 어부가 되라고 하지 않았냐? 그것 지금도 계속이다. 내 양을 치라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전파되고, 확장되어 갑니다.

  저는 이 대화를 마지막에 기록한 사도 요한의 사랑도 또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스승의 사랑이 넘치는 대화를 따뜻하게 기록한것입니다. 부활은 이렇게 사랑을 타고 우리들 가까이에 다가옵니다. 이제 교회와 성도들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또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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