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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선물(위로․감사․평화/대강절세번째주일, 2017년12월17일)

하늘기차 | 2017.12.17 14:04 | 조회 1165


              기다림의 선물(위로감사평화)

20171217(대강절세번째주일)                                                       40:1-11;3:12-17

   지난주에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실 때 그 기다림에 우리가 참여하여 머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기다림안에 지속적으로머물 수 있을까요? 바로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위로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시므온은 2:30에서 아기 예수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다림 속에 머물면 하늘의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름받은 백성에게 꼭 위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 백성은 바로 그 위로로 힘을 얻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지나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를 쪼개어 베푸신 샘물,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또한 종려나무가 70그루나 있는 엘림 같은 오아시스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로이지 목적지가 아닙니다. 혼돈하여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영원한 순례자입니다.

     개척자들의 송강호 박사님이 지난 번에 오셨을 때 선배 한 분이 북경대교수직 내려놓고 중국에서 입양아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입양한 아이들이 모두 장애를 입고 태어난 아이들(콩팥 기형, 무항문증, 방광외번증, 골반기형으로 태어난 아이, 심장 이상, 다운증후군 등)이라고 하면서 그 곳에 찿아가 보겠다고 한 기억이 납니다. 북경을 떠나 2,000Km 떨어진 중국 남방 양삭에서 선배는 기술학교인 애심대학을 세워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에 27세 총각인 선배 아들이 중국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와 제빵분야에 첫 교수가 될 것이라고 했더랍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형제애가 눈물겹다고 합니다. 양양이라는 아이는 콩팥이 하나이어서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두어시간 걸리는 병원에 가서 하루 4시간 꼬박 누어 있어야 하는데, 그 아이가 지루하지 말라고 심장이 기형인 영은이가 늘 함께 같이 곁에 가서 말 벗이 되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지나친 결핍, 한 번 버림받은 고아의 아픔이 오히려 아이들을 타인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게 한다고 합니다. 선배 부부는 한 아이, 한 아이 그 특성에 따라 섬세하게 돌보며 키운다고 합니다. 더구나 사모님은 4년 전 임파선암으로 한국에서 진료를 받았을 뿐만아니라, 중국에 선교할 목적으로 들어가기 전 1990년 초기에 한 번, 그리고 중국에 들어가서 같은 수술을 죽을 고비를 넘기며 받았는데, 그 때 어린 처녀 시절 침상에서 비몽사몽 간에 고아들을 위해 일하겠다던 생각이 불현듯 지나가, 병이 나으면 꼭 고아들을 돌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지금까지 왔다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음 이야기입니다. 선배 부부는 다 키운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이제 여생을 편히 지낼법도 한 나이이지만, 27살 맏아들에서 노래 잘 부르는 여섯 살 막내 즈이에 이르기 까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매일 매일 부대끼며, 벅차고 숨가뿐 일들의 연속인데, 바로 그 고단함 뒤에 스며드는 위로가 그 가정을 감싸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위로는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기도 하고, 아래로 속 깊은 아이들로부터 오기도 할 것이라고 하는 글을 개척자들 서신에서 읽었습니다.

     송박사님은 위로에대해 가정을 감싼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송강호 박사가 가정을 감싼다고 할 때, 무슨 말인지를 알겠습니다. 작년 안식년 때 양평 개척자들 공동체에 찿아갔을 때, 정말 보잘 것 없는 조촐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날 주일 예배시간에 사모님께서 말씀묵상을 인도하였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형식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복음을 공동체로, 그리고 세계의 분쟁과 고통, 아픔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전하며, 평화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공동체입니다. 어찌보면 예배라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예배입니다. 애기들 왔다 갔다 하구, 빙 둘러 앉아서 찬송, 그렇게 절절하거나, 뜨겁지도 않은 기도, 성경본문을 읽고 느낀 감동을 담담하게 나누는 이야기들, , , 이미 말씀이 생활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아마도 샘터를 관리하며 베이스 캠프를 지켜내는 일을 하는 젊은 부부(쌍둥이를 포함 아이들 5, 모두 일곱식구) 잠시 쉬러 온 부부, 개척자들에 참여하는 백인여성, 사모님과, 한명훈군(지역아동센타 도우미 교사, 사랑방공동체),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위로를 받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산상 수훈에서 애통하는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였는데, 오늘 말씀은 위로를 받으라 하지 않고 너희는 위로하여라! 너희의 백성을 위로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 참 난감합니다. 그러나 개척자들과 중국의 장애아 공동체를 보면서 진짜 위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 고단함 뒤에 스며드는 위로가 그 가정을 감싸고 있다고 하면서 위로는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기도 하고, 아래로 속 깊은 아이들로부터 오기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 모두가 서로에게 위로가 됩니다. 교우여러분 우리 고기교회도 이렇게 눈빛 만 보아도 사랑이 느껴지는 그런 공동체, 위로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공동체 성도 각자 각자가 사랑으로 띠를 띠어 하늘의 위로를 맛 보아야할텐데, 위로는 어떻게 드러나며 공감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청룡영화상시상식이 있었는데 진선규라는 배우가 당대최고의 연기파배우들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남우조연상을 받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날 진선규는 수상자로 호명되자 눈물을 흘리며 무대에 올라 한동안 벅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12년 무명 배우 생활을 청산하는 자리였습니다. 눈물을 쏟는 진선규에게 관객 중 한 명이 "잘 생겼다!"고 외치자, 진선규는 "저 잘생긴 거 아니고요. 저 중국에서 온 조선족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며 "너무 떨려서 청심환을 먹고 왔는데 상을 받을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먹었어야 했나 봅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고백이 그 날은 싫지가 않았습니다. 그의 소박한 감정, 그동안의 무명의 기다림, 그리고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부인에대한 감사, 스텝들, 감독, 그리고 출연진들, 경상도 고향 친구들(코가 낮아서 안된다고 코 세워준다고 겟돈을 붓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함께 한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에대해서도, 그리고 말을 못한 분들은 순차적으로 전화를 돌리겠다고 하면서 수 도 없이 감사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로 받은 사람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위로가 감사의 마음을 통해 드러나는 구나 하는것을 느꼈습니다. 진선규님이 감사에 감사를 더 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습니다.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고생한 진선규님에게 위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니까 위로는 그것이 최종의 목표가 아니고, 중간 기지쯤 되는 것입니다. 배우 진선규는 맺는말로 저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엇 보다도 이 배우의 연기에서 참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연기를 청룡영화제에서 인정을 해준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자기 정체성, 자기 모습을 인정받는 것 아닌가요. 얼마만큼 자기를 최선을 다해 선하게 드러내고, 그래서 모두와의 관계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적인 것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위로를 받았고 하나님과 함께한 모두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지난 주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기다림 속에 머물며 하나님 신앙의 자리에 까지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신앙은 아들을 내어주는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분량을 넘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 놓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믿음에 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공과나 업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기다림 속에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을까요?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에 대해, 인정받은 것에대해 배우 진선규처럼 감사가 있는데, 이 감사가 왜 소중한가 하면 지난주에 평화의 실마리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감사로 기도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줍니다. 그런데 골로새서로 넘어 오면 사도 바울은 보다 더 강하게 평화에대해 말씀합니다.

     오늘 골3:15말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

                                     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단지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누리라, 즐기라고 합니다. 혼자서 누릴수 있나요? 혼자서 즐길 수 있나요? 사도 바울은 누리기 위해 부름을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

                                     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라고 합니다. 새로워져야합니다. 그래야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 습관, 판단과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야 평화의 한몸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며 계급, 인종, 종교 그 모두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우리끼리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이전부터 이 지구상의 온갖 피조물들, 공중을 나는 새, 들의 백합, 물속의 고기들, 그리고 가축들과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새로워져야 교회의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새사람으로 한 몸입니다. 그런데 또 끊임없이 새로워지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르는 사람들에대해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한 번 옆 사람과 앞 뒤의 사람을 보세요. 이 분들이 누구라구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으로 한 몸으로 평화이고, 감사이며,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허망한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의 기다림 안에 머물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으로 위로와 그래서 감사하며, 그래서 평화인 사랑의 교회, 가정, 직장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인데 그 기다림 속에 위로와 감사와 평화가 계속 순환합니다. 여기에 사탄의 역사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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